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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담군 May 11. 2024

이것도 못 버티면, 그건 어떻게 버티겠냐는 말에 대하여

"선생님, 학교에 못 나가겠다고 하니까요. 아빠가 그랬어요. 지금 하고 있는 이 학교생활도 못 버티면 더 나아가 사회생활은 어떻게 하겠냐구요. 그건 아빠 말이 맞는거 같은데 학교 나오기가 너무 힘들어요."


상담교사가 되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은, 고등학생에게 학교에 꼬박꼬박 나가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과업이라는 것이다. 버스를 타기 위해 아침마다 무거운 눈을 억지로 뜨는 노력, 하루 최대 8시간까지 머리 아픈 주지과목을 상대하는 버거움, 수행평가와 지필고사를 치를 때의 두려움,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정해진 사람과 함께 좁은 공간에 하루 종일 있어야 하는 인내를 해야 한다. 주말과 방학을 뺀 일년 192일동안 꾸준히 도망갈 곳도 없이 말이다.


신기하게도 대한민국 청소년 대다수가 이걸 해내고 있으므로 모두가 학교 나가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이 장애물 경주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낙오한다. 사람들이 무서워서, 수업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아침 일곱시 전 기상이 힘들어서, 8시간 앉아있기엔 좀이 쑤셔서 이제 학교를 그만 나가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상담실에 와서 자퇴를 의논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고는 진학과 취업이라는 다음 과제가 더 어려워진다는 것을 알고 다시 무한 인내의 오르막길로 돌아온다.


가족들과는 자퇴에 관해서 무슨 의논을 했을까 하고 물어본다. 그러면 그들이 어른들에게 수도 없이 들었던 그 마법의 말. '이것도 못 버티면 그건 어떻게 버틸래?'를 들려준다. 이 결론은 그들이 했을 대화에 관해서도, 우리 인생 전반에 대해서도 예상된 스포일러이다. 비교적 쉬운 학교생활을 이겨낼 수 없다면 당연히 사회생활도 버틸 수 없다. 사회생활을 못 참아내면 정상적인 사람으로 살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 흉내를 내고 살려면 일단 참고 견뎌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인내라는 표현도 이 맥락에서는 적절하지 않은게, 인생의 끔찍함과 비교하면 학교는 너무 시시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너무 정답 같다. 갑자기 상담자인 나 마저도 막막함 속에 빠져든다. 인생 과업에는 난이도의 위계가 있을까? 학교는 쉽고, 사회는 어렵다는 이 명쾌한 이분법은 단순히 둘 만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다. 대학교는 대학원보다 쉬울 것이며 학점 걱정을 하는 나는 나약하다. 군대는? 체력장이 힘들다고 징징대면 나중에 유격훈련은 어떻게 뛸래? 연애보다는 결혼이 어려운데 아직 여자친구도 없으면 되겠어? 주사가 아프면 나중에 수술은 받을 수 있겠어? 자기계발 문구도 아닌 정체불명의 어떤 채찍질에 나는 하나와 또 다른 하나를 견주는 무수히 많은 명제들을 복사해낸다.


아마도 한때 나는 이 말을 마술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만병통치 동기부여의 절대주장으로, 어디선가 더 큰 고난을 상상해낼 수 있다면 지금의 어려움을 잠재울 수 있다고 말이다. 앞날에 대한 공포를 증폭시키면 현실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강인하고 씩씩한 사람이 될 거라고 믿었다. 무한히 파이팅 하는 스포츠만화 주인공처럼 살기 위해 노력했다. 쉬운 과업들을 포기할 때마다 이제 삶은 다 끝났다고 믿었고 그러다 어려운 것들을 성공한 탓에 아직 인생 망하지 않고 지낼 수 있게 되었다.


학교생활은 사회생활보다 쉬울까? 두 영역의 요구조건은 유사할까? 지금 참지 않으면 영원히 낙오할까?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 어느것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게 너무 분명하다. 사람을 유독 불편해하던 예술가들은, 책상앞은 답답하지만 뛰는건 누구보다 잘했던 사람들은 학교 생활을 엉망으로 하거나 그만두었어도 하고 싶은거 하면서 지내겠지. 혹여 두드러진 장점은 없고 그저 못 참기만 했던 사람들도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성장해 늦게나마 자기 몫은 하는 사람으로 크지 않았을까. 사회생활에 필요한 능력과 성격은 이처럼 다양하고 특정한 형태의 참을성은 그 중 하나일 뿐이라고 믿는다.


타인의 현실에 발 닫지 않고 우월한 위치에서 내려다보며 하는 선언. 그것은 누구에게나 너무 익숙한 조언이다. 아무런 감정 비용을 지출하지 않고 공짜로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충고는 너무나 유혹적이다. 하지만 '이것도 못 버티면 저건 어떻게 해내겠냐'는 그 말을 믿는 피조언자에게 영구적으로 수치심과 죄책감을 남긴다. 무사히 고등학교를 졸업하더라도 이 논리는 유령처럼 따라다니며 막연히 힘든 미래와 그걸 해내는 타인과 한없이 나약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연출한다. 많은 과제들이 해보지도 않고 못할 일로 여겨진다. 그리고 삶이 실제 그 이상의 고난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이 주장이 사실이 아님에도 여전히 힘을 발휘하며 이 세상에 남아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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