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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넷둥파파 Mar 27. 2023

중환자실에서 깨어난 네쌍둥이 엄마

아내가 깨어난 후...

아내가 깨어난 후..


그렇게 아내가 요청한 얼음음 사 오고

아이들 사진과 영상을 보여주며

아내와 수다를 떨었다.


아내는 아이들이 태어난 순간은 기억이 나고

그 후엔 잠이 들었고 

일어나 보니 여기라고 했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직전 아내는

많이 부어있었다.

(정말 많이..)


몸무게도

평소 몸무게보다

30킬로 이상 늘었고

몸에 탄성이 거의 없었다.

(라텍스 베개 느낌: 피부를 누르면 돌아오는데 오랜 시간이 걸림)


하지만 중환자실에 누워있던 아내는 

뼈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물론 배는 조금 나와있었다.


아내의 상태는 호전되어

그다음 날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회전 온 교수님께서

그렇게 심각한 상황이 될지 몰랐다며

아내에게 사과했다.


아내의 난소가 많이 부어

크기가 농구공만 했다고

아내에게 사진을 보여줬다고 한다.

(나는 못 봤다)


아내는 수술 후 휴식이 필요했다.

제왕절개를 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수술 후엔

일어나는 것만도 매우 고통스럽다.


우리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아내는 아이들 면회를 갈 수가 없었다.

내가 혼자 면회를 하면서

찍어온 영상과 사진을 보여줬다.


그렇게 며칠을 못 가겠구나 생각했지만

어머니의 힘은 대단했다.


첫날은 너무 아파 실패했지만

꼭 가야겠다는 의지로

그다음 날 바로 휠체어를 타고

면회를 갈 수 있었다.


서울대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은

하루 2번 면회가 가능하다.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번

(지금은 어떨지 모름)

그리고 그 당시에는

부모와 조부모만 면회가 가능했다.


그리고 규정상

입장을 할 땐

손을 씻고

마스크, 비닐옷, 라텍스 장갑을 껴야 하고

장갑을 낀 상태에서

소독까지 해야 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는

내가 봐야 할 아이는 4명이고

아이 모두가 한방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한 방에 머무르고 

다른 방에 입장할 때도


손을 씻고 마스크, 비닐옷, 라텍스 장갑을 끼고

소독을 해야 한다.


어떤 날은

2명씩 2방에 있었다.

이런 경우 속으로 

만세를 부르고 방에 들어간다.


어떤 날은

1명씩 2방에, 2명이 한방에 있었다.

그래도 이정돈 할만하다.


어떤 날은 

모두 다른 방에 있었다.

오.. 마이.. 갓..


처음엔 계속 갈아입고

아이 넷을 모두 보고 왔는데

나중엔… 아이에게 양해를 구하고

오전에 2명,

오후엔 다른 2명을 보고 왔다.


‘좀 천천히 하면 되잖아?’


면회 시간이 1시간이다.

물론 1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매정하게 나가라곤 하지 않았다.


정말 감사하게도

암묵적으로 우리의 상황을 

이해해 주신 것 같다.


인큐베이터에서 아이를 보다 보면

어떻게 저렇게 작은 아이가

우는 소리는 이렇게 클까 하는 생각들 정도로

아기 우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그리고 적은 양이지만

분유를 먹고

소변도 보고

대변도 보고

생떼도 부린다.

정말 신기하고 대견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약 한 달간 입원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고 보람찼던 건..

아내와 조금 더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우린 더 끈끈한 유대감(?)이 생겼다.


수술 후 거동조차 힘든 아내를

간호(?)하고 도와주었다.


필요할 땐 아내의

대소변을 받아주기도 했다.


그때 문득 생각했다.

‘아.. 이게 진짜 가족이구나..

내가 만약 같은 상황이라면

내걸 받아주는 건 이 사람이겠구나…’


아무튼 그렇게

아내의 상태는 많이 회복되었고

점점 평소 모습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몸에 모든 근육이

빠지고

부기가 빠져

상당히 홀쭉한 상태가 되어

조금 걱정되었는데

아내는 날씬해 보인다며 좋아했다…(?)


여자의 예쁘고 싶은 욕구의 정도를 조금

체감할 수 있었다


병원에선

아이들이 자가호흡을 하기 시작하고

밥도 잘 먹게 되면서

분유 먹이기,

기저귀 갈기 등을 해볼 기회를 주어졌다.


나는 행여나 아이를

떨어뜨리면 어쩌나.. 

조금이라도 세게 잡으면

부러지는 거 아닌가 무서웠다.


하지만 엄마는 달랐다.


엄마는 직접 해보겠다며

아이 분유도 먹여보고

기저귀도 갈아봤다.

나도 결국 해보긴 했지만

내심

‘이거 집 가면 매일 할 텐데… 꼭 벌써부터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을 했다.


역시 부성애는 

10개월 아이를 품은 엄마의

모성애를 따라가긴 힘든 것 같다.

(지금은 비슷할 듯?)


소아과 교수님은 아내에게

캥거루 케어를 하는 게 좋다며

해보라고 추천해 주셨고

아내는 오전 면회에 한 명, 오후 면회에 한 명으로

매일 2명씩 캥거루 케어를 했다.


어느 날 문득

나도 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간호사님께

용기 내어 말했다.

“저도 캥거루 케어 해도 될까요?”

“아…. 하셔도 되긴 하는데… 아빠는 효과가 없어요…”

“아…. 그래도 어떻게 한 번만… 해보면 안 될까요..?”


간호사님의 만류에도

굴하지 않고 캥거루 케어를 해봤다.


당시 몸무게가 가장 많이 나가는

하준이와 처음으로

몸으로 교감했다.


아무튼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내는 퇴원을 하게 되었고


퇴원 후 우린

산후 조리원에 입소했다.


산후 조리원을

천국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린 산후 조리원에 있는 게 더 힘들었다..


힘든 이유는

다음 편에서 공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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