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이의 이력서에서 나의 미래를 찾는 법
내가 지겨운 취준 지옥에서 살아남은 지도 벌써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 시대의 모든 문과생들이 그렇듯, 나 또한 100개 넘는 이력서들(물론 복사 붙여 넣기 식이 대부분이었지만)을 회사들에 뿌렸고, 결국 감사하게도(?) 지금 직장에 안착하여 웬일로 7년 넘게 이직 한번 없이 잘 다니고 있다. 하지만 지금 다시 그때의 이력서를 끄집어내서 볼 때면, 참 없는 경험 짜내서 열심히도 써냈구나 하는 생각에 뭔가 안타깝기도 하다. 만약 지금의 내가 다시 이력서를 쓰게 된다면 그때보다는 훨씬 많은 페이지를 채울 수 있겠지만, 결국 나의 경험을 부풀려서 적어내는 행태에는 변함이 없을 것 같다.
이렇게, 우리는 모두 사회에서 보이는 우리의 이력을 언제나 실제보다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보여주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다. 나뿐만 아니라 쟤도 다 그렇기 때문에 별로 죄책감도 없다. 모두가 감안해서 보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 보는 사이에서 보게 되는 “인생의 이력서”에서 우리가 바라는 내용은 이와 조금 다르다. 물론, 소위 말하는 ‘1차 서류전형’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이뤄놓은 인생의 결과(학벌, 직업, 경제적인 성취 등)를 보게 되는 보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에 우리가 오랫동안 함께하고자 하는 친구를 찾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있기까지 그의 삶이 어떠한 흐름을 가졌는지를 보여주는 “인생의 이력서”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 이력‘이라는 단어의 한자를 나눠보면, 신발 혹은 발걸음 이 , 그리고 지나온 자리를 뜻하는 력(역)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 신발을 신고 지나온 발걸음이 만든 자리라는 의미이다. 뭔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뜻풀이다. 나는 이력서의 핵심은 지금까지 이뤄낸 일들에 대한 결과를 증명하기 위한 증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나온 발걸음이 만든 자리라니, 어쩌면 이력서의 핵심은 그 사람의 결괏값이 아닌 과정을 보고자 하는 증명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SNS의 파도 속에서 우연찮게(그리고 굉장히 흔치 않게) 보석과도 같은 메시지를 얻은 적이 있다. 그 메시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중요한 건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느냐가 아니라 나와 비슷한 노력을 하는 사람을 만나는가 중요한 것“이라는 문구였다. 머리가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사실, 나와 같은 신발을 신고 있는 사람은 만나기 쉽지 않다. 나를 마주한 낯선 이는 나와 신발의 사이즈와 종류, 스리고 그 스타일이 다른 사람일 확률이 높다. 하지만 그 신발을 신고 나아갈 발걸음의 속도와 방향이 합의될 수 있다면, 그 조건 만으로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시인이 쓴 산문집에서 “입고픈 사람이 귀고픈 사람을 만나는 순간”(오은, 다독임)이라는 구절에 마음을 담은 적이 있다. “입고프다”는 “자유롭고 숨길 수 없이 말을 하고 싶다”라는 뜻이고, “귀 고프다”는 “실컷 듣고 싶다”는 우리말이라고 한다.
서로의 삶을 몇 줄의 이력으로 판단하는 세상이다. 이곳에서 우리 서로 입 고프고 쉬고픈 관계가 되어 상대방의 지난 발걸음을 따스히 대하고 미래를 향해 발맞춰서 나아가는 노력을 할 수 있기를, 나 또한 그러한 이력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노력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