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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셔레이드 걸 Jul 23. 2023

방탄아줌마와 함께하는 방탄투어

저는 40대 중반의 직장인 아미입니다.

저 스스로를 아미라고 지칭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제 책상은 부산행 KTX 창밖으로 흘긋 보더라도 아, 저이는 방탄팬이로구나! 할 정도로 방탄 관련 굿즈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습니다.


2년 전,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봄이었습니다.

갑작스레 사무실이 폐쇄되고 저는 꼼짝없이 2주간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창문도 없는 좁은 방 안에서 먹고 자고 일하고를 반복하다 보니 시간감각도 없어지고 날이 갈수록 의식이 점점 몽롱해지더니 깊은 우울감이 들었습니다.


저는 원래 타고난 집순이였습니다.

약속이 취소되면 매번 쾌재를 부르고 슙기력으로 불리던 시절의 윤기와 승부해도 박빙일 정도로 바닥에 눕는 걸 좋아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집에 좀 갇혔다고 우울해질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오후 5시 반이면 근무를 마치고 노트북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곤 했습니다.

문득 이게 지금 사는 건가 싶었습니다.

밖은 벚꽃이 피는 분홍빛 계절이었지요.

눈물이 훌쩍훌쩍 흘러나왔습니다.

제 방에는 TV가 없어 노트북으로 유튜브를 보다가 잠들곤 했는데 어느 날, 신비한 힘에 이끌린 알고리즘이 저를 FAKE LOVE 뮤비로 데려다주었습니다.


노래는 TV 광고를 통해 몇 번인가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만 뮤뱅이니 엠카니 하는 요즘 친구들이 좋아하는 음악프로는 본 적도 없고 아이돌도 모르는 아줌마라 그냥 요즘 BTS가 외국에서 인기가 최고라지, 하는 정도로만 인지하고 있던 차였습니다.

그런데 왜였을까요? 몇 번이나 뮤비를 돌려보다가 하나하나 도장 깨기 하듯 다른 뮤비를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추천 재생목록에 ‘어딘가 이상한 김남준’ 같은 묘한 영상들이 뜨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운명처럼 ‘달려라 방탄’을 영접하게 되었지요.

달방 정주행 덕분에 멤버들의 활동명, 본명을 외우고 드디어 얼굴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종종 안무영상을 틀어놓고 삐걱대는 관절을 움직이며 운동도 했습니다.


드디어 격리가 끝나고 TV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직 모든 노래를 듣지 못했지만 온라인 콘서트를 결제하고 아는 노래가 나오면 열심히 따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BTS, 아니 방탄소년단에 대해 알아갔습니다.

아니 빠져들어 갔습니다.


처음에는 다 늦게 아이돌한테 빠져서 나잇값도 못한다는 수군거림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한결같은 모습에 누군가는 퇴근길에 봤다며 지민이의 생일광고를 찍어서 카톡으로 보내주고 또 누군가는 자판기에서 찾았다며 호비의 자일리톨껌을 건네주기도 했습니다.

한 번은 제가 붕경이(RM이 제작에 참여한 풍경)를 못 샀다며 침울해하고 있으니 한참을 꼬물꼬물 하더니 직접 풍경을 만들어 준 동료 때문에 너무나 감동한 적도 있습니다.

이렇게 모두가 방탄의 ㅂ, 아니 길을 걷다가 보라색 옷만 봐도 자연스레 저를 떠올리게 된 겁니다.

마치 아미의 연관검색어 1순위가 방탄인 것처럼요.


이런 저의 새로운 취미는 방탄투어입니다. 직장동료들을 이끌고 대항해시대의 해적 선장처럼 뱃머리에 의기양양하게 서서는 직장 근처의 이벤트 카페, 옥외 광고 등을 보러 가 음료를 사 마시거나 인증샷을 남기는 것입니다.

동료 중에는 저와 같은 아미도 있고 멤버의 이름을 전혀 모르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함께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면 모두가 진심으로 즐거워하고 있는 것이 느껴집니다.


다음 주에는 5명의 파티원들과 데뷔 10주년 이벤트 카페 투어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정식검사 3회 실시, ENFP 3관왕에 빛나는 저 역시 정국이처럼 J가 제로에 수렴하지만 방탄투어에서만큼은 동료들의 소중한 점심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도록 최적의 코스를 계획하고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동선으로 모두를 안내합니다. 당연하지만 만족도는 늘 최상입니다. 훗-


태형이가 멤버들의 행복전도사인 것처럼 저도 친구들과 지인들 사이에서는 방탄전도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제 저는 남들에게 저를 방탄(소년단을 엄청/무지/많이/찐찐 좋아하는)아줌마라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 닉네임을 참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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