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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셔레이드 걸 Jul 21. 2024

보리가 없는 일주일

지난 금요일은 엄마의 생일이었다.


저녁 9시 반, 가족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보리는 엄마의 품에서 잠자듯 스르르 눈을 감았다.

심장이 멈췄어.

엄마의 말에 나와 동생은 눈물을 쏟았고 아버지는 보리를 꼭 안아주셨다.

눈을 꼭 감은 보리는 그저 평소처럼 잠을 자는 것만 같았다.

곁에 누워 하룻밤을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실감이 나지 않아 코에 손가락을 대보았다.

생각보다 사후경직이 일어나지 않았는지 아직 몸이 말랑했다.

발바닥도 폭신폭신 그대로였다.


자정 전에 겨우 예약해 둔 장례식장의 상담 카톡으로 보리의 사진 다섯 장을 보냈다.

추모관 모니터에서 틀어준다고 했다.

오전 10시 예약이고 30여분이면 갈 수 있는데 8시쯤 출발했다.

9시 전에 도착했지만 중요한 짐을 놓고 온 것을 알고 나들이 행렬로 차가 막히기 전에 얼른 집으로 향했다.

왕복 한 시간 반이 걸렸지만 추모시간을 넉넉히 주기 때문에 사실 부족하진 않았다.

덕분에 가족들은 대기실에서 아주 천천히 보리와 인사를 나누었다.


염을 한 보리는 새하얀 이불을 덮고 베개를 베고 앙증맞은 레이스 모자를 쓰고 리본과 꽃으로 꾸며진 요람에 누워있었다.

여전히 깊은 잠을 자는 것 같았다.

엄마가 끝내 어린애처럼 울음을 터뜨렸고 화장절차는 나와 동생만 참관했다.


우리 보리 혼자 둔 적 없는데...

정말로 마지막일 모습이 유리창 너머로 보이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보자기로 곱게 싼 유골함을 조심스레 안고 나오는데 동생이 말했다.

언니, 지금 보리 안고 있는 줄 알았어.


장마라고 했지만 해가 몹시 뜨거운 날이었다.

오후 3시가 되도록 먹은 것은 고작 커피와 초콜릿뿐이었다.

집에 주차를 하고 인근 식당가로 향했다.

한 식당 앞에서 메뉴판을 보는데 사장님으로 보이는 분이 브레이크 타임이지만 들어오시라고 했다.

아마 눈이 퉁퉁 부어있는 얼굴들을 보고 그러셨겠지 싶어 죄송하고 감사했다.


식사를 마치고 부모님을 배웅하고 동생과 집에 들어왔다.

고생했어 보리야 이제 쉬어.

테이블에 유골함을 올려두고 애착인형과 액자 등을 주변에 꾸며두었다.

씻고 잠이 들었다.

꿈도 없는 침잠이었다.


일요일은 오롯이 정리의 연속이었다.

끝도 없이 나오는 짐 때문에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보관할 것, 버릴 것, 나눔할 것 등등 나누고 닦았다.

일요일은 여느 때처럼 밤늦게 잠들었다.


월요일 아침이 되자 물먹은 솜처럼 무거운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늘 그랬듯 보리가 없는 평범한 한 주의 시작이었다.

다만 새로운 사진이 올라오거나 안부를 묻거나 배변, 투약 일정에 대한 공유 같은 메시지들이 부재했을 뿐.


금요일이 가까워질수록 초조하고 불안해졌다.

빨리 집에 가서 차를 가지고 보리를 데리러 가야 하는데... 아, 보리는 이미 집에 있지.

금요일은 끔찍이도 길이 막힌다.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늦을 귀가 시간, 동생을 만나 저녁을 먹고 느긋하게 버스를 탔다.


토요일은 일부러 친구와 약속을 잡아두었다.

지하철 안에서 잠시 눈물이 쏟아져 코를 풀었다.

맛있는 것을 먹고 수다를 떨고 억수 같은 비를 피해 다시 귀갓길에 올랐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더라?


서른 살 봄 이후로 보리는 언제나 함께였다.

주중에는 부모님이 돌보시고 출장이나 여행으로 잠시 못 본 날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내 손이 닿는 곳, 눈길이 닿는 곳에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꿈에서밖에 볼 수 없는 우리 강아지.


아직은 명치 부근에 꽉 막힌 수채구멍처럼 슬픔이 찰랑찰랑 고여있지만 살짝 물을 퍼내고 하루를 시작한다.

시간이 흐르면 조금씩 배수가 되고 언젠가는 바짝 마르는 날이 오겠지 기대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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