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셔레이드 걸 Aug 18. 2024

Give me a hug

언제부턴가 안기는 것을 좋아하게 된 보리였다.

떠나기 몇 달 전부터는 거의 안고 지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덕분에 왼쪽 어깨 회전근개가 나갔는지도...)


원래 보리는 안기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던 강아지였다.

잠깐이라도 안고 있으면 그 불편한 기색이 온몸으로 느껴졌고 이내 호흡이 가빠지면서 뒷발로 세게 명치를 치고는 서둘러 품에서 빠져나가곤 했다.


지금에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보리의 입장에서 '안긴다'는 행위는 별로 좋은 시그널이 아니었던 것 같다.

안기고 난 다음에는 으레 병원에 간다든가, 천둥번개가 친다든가, 약을 먹인다든가, 귀를 청소한다든가, 발털을 자른다든가, 발톱을 깎는다든가, 양치를 한다든가 뭐 그런 지독한 일을 당하는 것이 다반사였으므로.


사정이 이러하니 귀여워서 좀 안아줄라치면 극도의 공포와 경계로 인한 비극적인 결말-발길질 또는 입질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나 보리를 안아주고 싶었고 일본 애니메이션 '세계명작극장'에 나올법한 장면을 떠올리면서 매일 보리와 미소를 머금은 채 마주 보며 잠들고 싶었다.

그리고 그 소망은 끝내 성취되고 말았다.


열다섯 살넘어가면서 보리는 눈과 귀의 기능을 거의 상실해 나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서글픈 시기를 맞이하던 참이었다.

나는 결국 내 사심을 마음껏 채웠지만 그와 동시에 큰 구멍이 생긴 그곳엔 이따금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슬픔이 흘러넘치게 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반드시 기브 앤 테이크로 돌아가는 곳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게 내 지론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