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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Used To Be My Playground

그들만의 리그(1992)

by 셔레이드 걸

당연한 이야기지만, 여성에게도 손가락과 팔과 다리가 있으므로 공을 단단하게 쥐고, 던지고, 배트를 휘두르고, 점프하고, 홈을 향해 달릴 수 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던 1940년대에는 여자가 프로야구선수가 된다는 것은 마치 캉캉춤을 추는 푸들의 이야기만큼이나 신기한 구경거리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고 건장한 남성들이 모두 전쟁터로 소환되어 버리는 바람에 공장을 비롯한 모든 곳에서 노동력을 잃게 된 국가에서는 고육지책으로 2등 시민인 여성에게 눈을 돌린다.

그녀들은 생각보다 일을 잘했고 쓸만했다.

남성들보다 적은 급여로도 감사하며 열심히 일할 줄 알았다.

그러나 얼핏 모두에게 윈윈 같았던 이벤트는 토사구팽의 비극으로 종결된다.


전쟁이 끝나고 남성들이 집으로 돌아오자 여성은 다시 그들이 있어야 할 자리, 부엌으로 돌아갈 것을 명 받았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상완이두근을 뽐내며 그 유명한 ‘우리도 할 수 있다!’의 프로파간다로 꾀어낼 때와는 다르게 연장을 빼앗더니 대신 프라이팬을 쥐어주고는 가족을 위해 에그 스크램블을 만드는 게 여성의 진정한 행복 아니겠냐고 등을 떠민 것이다.

분통이 터지겠지만 잠시 접어두고.


종전 80여 년이 지난 2025년의 대한민국은 어떨까.

여성 임금근로자 1천만 명을 돌파했으나 남녀 임금격차는 OECD 1위에 빛나고 있다.

우리 주변의 수많은 여초직장을 떠올려 보라.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의 헤드와 관리자는 높은 확률로 모두 남성이 차지하고 있다.

내 전 직장 역시 그랬다.

서른 명의 직원 중 스무 명 이상이 여성으로 구성되었으나 조직의 장, 부서장, 팀장 등 정직원급의 주요 요직을 차지한 것은 대부분 남성이었다.

그게 당연시되는 조직문화였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 보자.

입단 테스트를 받기 위해 전국각지에서 선발된 야구소녀들.

좋아하는 야구를, 심지어 프로리그에서 선수로 뛸 일생일대의 기회였다.

그렇기에 호객을 위한 짧은 스커트와 챠밍스쿨 수업 이수 굴욕을 기꺼이 감수했던 그녀들이다.

돌봐줄 사람이 없어 투어에 어린 아들을 데리고 다니며 짬짬이 뜨개질을 하고 문맹인 동료를 위해 글을 가르쳐주던 다정한 여초집단이었다. (물론 의견이 맞지 않으면 주먹다짐도 불사했지만)

그러나 그런 그들의 팀의 감독은 왕년에 잘 나가던 홈런왕이자 현재는 알코올중독의 남성이다.

그리고 과거의 영광에 짓눌려 자포자기 상태로 살던 그 남성은 그녀들의 열정에 감화되어 종국엔 갱생된다.

선수 겸 감독이었던 포수 도티는 작중 최강자로 묘사되지만 참전 군인인 남편의 귀환 소식에 은퇴를 선언한다.

여성의 특별한 치유의 힘, 모성.

솔직히 그런 것은 어찌 되었던 좋다.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유능한 요원인 블랙 위도우가 왠지 모두의 엄마 역할을 떠맡고 캡틴 아메리카가 고지식한 아빠 역할을 하는 것도 썩 나쁘진 않았지만 속 깊은 사고뭉치 아이언맨과 모성? 그딴 거 모르겠고 그냥 내가 우주 킹왕짱이니까 다 꿇으셈, 하는 위풍당당 캡틴 마블에게 더 마음이 가는 오타쿠여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 내가 마돈나의 발라드곡 중 ‘Take a bow’와 더불어 가장 좋아하는 영화의 주제가인 ‘This Used To Be My Playground’는 불안한 10대, 혼란한 20대, 분주한 30대, 허무한 40대에 이른 지금까지도 들을 때마다 눈물버튼이 되는 묘한 노래다.

유독 겨울밤에 어울리는 이 노래를 유튜브로 검색해 들어본다.

3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먹먹한 그런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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