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업무를 종료합니다.
1월 1일 자로 나는 또 무직자가 되었다.
이전 직장은 햇수로 6년, 5년 하고도 3개월을 꽉 채워 근무했지만 놀라울 정도로 덤덤하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목표가 생기면 최선을 다하고, 무시당하면 발끈하고, 성공하기 위해 악착같이 발버둥 치는 성정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곳에서는 나름 성실하게 지냈다고 생각했는지 후회도 미련도 없었나 보다.
사람도 그렇고 일도 그렇고 뛰어나게 잘한 거 같진 않은데 그렇다고 잘하려고, 아니 최소한 망치지 않으려는 노력을 안 했냐 하면 또 그건 아니었으므로.
나는 원래 노력보다는 요행과 임기응변에 기대 살아가는 자였다. (그래서 무속을 좋아하는지도)
특히나 환승이직은 성격에 맞지 않아서 늘 먼저 일을 그만두고 다음 구직처를 찾아다니는 무계획자이므로 이번에도 그럴 작정이었으나 역대 최악의 불황에 그저 웃음만 나올 뿐이다.
그래도 뭐 어떻게든 되겠지- 허허...
신은 나에게서 끈기를 모조리 거두어간 대신 얼마간의 낙관을 남겨두셨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그렇게 일을 쉰 지도 벌써 두 달을 지나 석 달 째를 향해 가고 있다.
퇴사 후 계획했던 일들을 모두 집안사정으로 엎어버린 탓에 무기력증에 빠진 것도 있지만 나는 태생이 게으른 사람이다.
조요한 밤에 혼자 깨어있기를 좋아하고 느지막이 일어나는 걸 즐기는 밤도깨비 타입이다.
문득 지난 두 달간 나의 일과를 떠올려본다.
아버지가 장기입원해 계셔서 버스로 왕복 2시간 걸리는 재활병원에 다녀오고 이따금 개인용무를 보기 위해 외출하는 것을 제외하고 경기도를 벗어난 것은 딱 두 번 뿐이었다.
점심을 먹기 전 수많은 일을 동시에 처리했던 지난날이 마치 꿈인가 싶을 정도로 나는 하루에 많아야 고작 두 가지의 일 외에는 수행할 수가 없다.
하루는 차량 정비를 하고 도서관에 다녀오기,
또 하루는 부모님 댁에 비데를 설치하고 세탁물 돌리기, 뭐 이런 식인 거다.
오늘은 엄마가 부탁한 양파장아찌를 담그고, 교양지에서 주최하는 에세이 공모전에 가벼운 마음으로 투고했다. (기존에 썼던 글을 조금 각색해 제출했다)
어느 날은 심지어 동네 복권방에 로또를 사러 가는 것도 할 일로 쳤다.
그렇게 하루에 많아야 2~3개 내외의 일들만 처리하다보니 뭔가 사람이 점점 맹해진다는 느낌은 들어도 솔직히 이렇게 여유로울 수가 없다.
나만 혼자 이렇게 느긋하게 살아도 되나 싶은 죄책감에 이전 직장 동료들이 출연해 업무 고충을 토로하는 악몽을 꾼 적도 있다.
작고 귀여운 봉급이었지만 고정 수입을 포기한다는 것이 이렇게 자유로운 일이었구나, 이미 잘 알고 있는 웃기지만 슬픈 사실이다.
사실 집안 내 이런저런 자잘한 일들을 도맡아 처리하긴 하지만 예전이라면 회사일을 병행하면서 시간을 쪼개어했을 (통근버스 안에서 잠을 쫓으며, 점심식사를 주먹밥으로 때우면서, 자기 전 누워 휴대폰을 놓지 못한 채로) 것을 떠올리면 감히 불평할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앞으로 영영 일을 하지 않을 것도 아니고 어떻게든 다음 직장을 찾아서 또 신성한 노동을 제공해야 할 텐데...
지금은 다른 사람들은 한참 움직이고 있을 오전 시간,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멍하니 햇빛을 쪼이며 잠을 쫓는 것만으로도 마냥 행복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