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K가족의 평범한 하루
생일이었다.
점심에 부모님을 모시고 집 근처 프랜차이즈 뷔페에 갔다.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차로 픽업해 예약 10분 전, 식당에 도착했다.
주말이라 100분 이용제한 시간이 걸렸었는데, 약속을 깜빡 잊은 엄마가 무려 30분을 지각했다.
엄마는 홀을 한번 휘- 둘러보더니 육회 같은 건 없네. 하며 메밀국수를 말아왔다.
전복철인지 관련 메뉴가 많았지만 나는 조용히 미역국과 잡채를 가져와 먹었다.
후식으로 부모님께 셔벗과 과일을 챙겨드렸고, 나는 크로플에 생크림을 얹어 메이플+초코시럽을 뿌려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작은 옷가게가 있었고 마침 행거 매대가 나와있었다.
홀린 듯 가게로 향하는 엄마를 보며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한 나는 살짝 한숨을 쉬었다.
그래- 에어컨도 없던 시절, 중복에 애를 낳느라 고생하셨으니 보세 옷 한 벌 정도는 사드릴 수 있지. 하며 잠자코 따라갔다.
엄마는 오랜 고민 끝에 짙은 에메랄드색 니트 반팔과 방수 소재의 검은색 고무줄 치마를 골랐다.
4만 원이었다.
계좌이체를 하고 있는데 기분이 좋아진 엄마가 생면부지의 옷가게 사장님을 붙들고 얘가 오늘 생일이에요. 벌써 40대 후반인데 아직도 시집을 못 갔어요. 하며 개인정보를 마구 흘리기 시작했다.
으레 돌아온 대답은 뻔했다.
어머, 따님 동안인데 왜 여태껏 결혼을 안 했을까?
나는 무표정하게 대꾸했다.
그러게요. 그런데 언제까지 시집가란 소리를 들어야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곧 쉰이 되어가는데. 설마 60살, 70살이 되어도 계속 들어야 하나? 엄마, 이제 누가 결혼했냐고 물어보면 사별했다고 해야겠어.
농담이 아니었지만 사장님은 내 팔을 통통 치며 어머! 하고 웃었고, 농담이 아님을 눈치챈 엄마는 그럼 누가 재혼 안 하냐고 물어보면 어떡해?라고 한술 더 떴다.
그럴 땐 너무 힘들게 보내서 생각 없다고 하면 되지.
나의 대답이 마음에 든 나는 짐짓 고개를 끄덕였고, 엄마는 입을 꾹 다문 채 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엄마는 가을에 수확할 배가 어마어마하게 많다며 벌써 택배 주문을 받고 있다는 자랑을 늘어놓았다.
나는 그것 참 잘된 일이네. 송장은 내가 써줄게. 포장도 거들고. 라며 착한 아이처럼 굴었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없었지만 식사를 마칠 즈음 챙겨드린 소화제 덕분에 속이 편해지신 것 같았다.
엄마는 차에서 내리기 전, 미처 봉투를 준비하지 못했다며 5만 원권 두 장을 내밀었다.
극구 사양했지만 일단(?) 받으라는 말과 함께 막무가내로 떠넘기는 데에는 당할 재간이 없었다.
나는 퇴사할 때 챙겨 온, 전 직장의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힌 낡은 에코백에 지폐를 고이 접어 넣었다.
모두가 만족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