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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 여행자 Aug 14. 2021

이별했던 여동생과 다시 만나다.

나는 왜 엄마를 떠났나. 15


 밝음이와 오랜만에 친정에 갔던 3년전 그날, 사건이 터졌다. 엄마는 성난 사자처럼 날뛰었고 나 역시 그동안 참고 있던

를 폭발시켰다. 그동안은 엄마에게 화풀이를 당해도 자식

이니까 참아야 했고 부모에게 덤벼드는 패악질은 하지 말자

고 억눌렀지만 커가면서 나도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갔다.


 엄마와 새아빠는 '미안하다'는 말을 가벼운 인사 정도로 여

기는 듯싶었다. 인사하고 지나면 또 인사하듯, 미안하다는

말은 금방 그 효력을 잃었다. 내가 느끼기에 부모님은 우리

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한 적이 없었다. 진심과 반성

없는 사과가 무슨 소용이 있나.




 엄마와 싸우고 여동생과도 크게 싸웠다. 이쯤 되면 내가 이상한 사람이거나 싸움꾼일 수도 있었다. 내가 불화를 일으키는 원흉이라면 기꺼이 사라져 줘야지. 난 늘 나보다 가족을 생각했다. 그 배려가 오히려 독이 된 것은 아니었 을지....

 학교 폭력에서도 착하고 순한 아이가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독하고 사나운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쉽게 건드리지 못

한다. 건드리면 더러운 꼴 본다는 걸 아니까.


 그때 나는 '이제는 나도 이기적으로 못돼게 나만 생각하며

내 삶을 살자. 내게 가족은 남편과 아들뿐이다. 괜찮다'

라는 마음으로 엄마, 여동생, 남동생과 연락을 끊었다.

가족이라는 관계에 얽혀있는 피곤함 들을 털어버리고 싶었

다. 그만큼 나를 잃어가고 있었다.


 친정과 연을 끊었다 해도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병처럼 그놈에 '가족' 은 천륜이므로 끊어질 수가 없다. 일단은 몇 년 안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무슨 사건이 벌어져도 시간은 흐른다. 여동생으로부터 연락

이 온 그날은 나와 여동생의 연락이 끊긴 날로부터 1년 반쯤

이 지났을 때였다. 여동생의 카톡으로 온 연락을 읽으며 만감

이 교차했다. 슬프게 끝난 첫사랑의 문자가 와도 그렇게 떨리

고 이상한 기분이었을까?


 1년 반 동안 여동생이 보고 싶었지만 연락할 수 없었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과 가족이라는 이유로 함께 한다 는 건 괴롭고 힘들었다. 게다가 여동생과 연락하면 자연스 럽게 엄마까지 보게 될 것이고 그 후로 보게 될 새아빠와 친척들...

 가족이지만 남보다 힘들고 껄끄러운 존재들의 얼굴이 떠오

르자 여동생의 연락이 두려워졌다.


언니, 잘 지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연락했어.
진작에 연락하고 싶었는데 일과 육아로 바쁘고 정신없
다 보니 생각만 하고 미루다가 이제야 연락하네...
밝음이도 많이 컸겠네. 형부도 잘 계시지?(중략)

언니가 보고 싶어서 연락했는데 괜찮다면 언제라도 꼭 연락 줘.... 기다릴게.


 여동생이 보내온 글을 읽으며 가슴이 아프고 그리웠다.

같이 친아빠를 잃고 재혼 가정에서 온갖 역경을 함께 해온

여동생은 나에게 특별한 동생이었다. 그래서 여동생에게

서운함도 더 컸던 게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다. 서로를 안쓰

럽게 여기면서도 너무 다른 자매였기에 힘들 때도 많았다.

 한 배에서 나와도 천차만별의 형제자매들이 수두룩하다.


 여동생이 보고 싶어 눈물을 흘렸지만 선뜻 만나자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여동생이 어떤 절절한 마음으로 글을 써보냈

을지 그 마음이 느껴져서 몇십 번이고 답장을 쓰다가 지우기

를 반복했다. 결국 여동생에게 보고 싶으니 만나자는 답 문자를 보냈다. 하루 종일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처럼 빠른 답장이 왔다.


 여동생은 엄마가 시켜서 연락한 게 아니라 본인 스스로 내

가 보고 싶어서 연락했다며 안심시키는 말을 했다. 내 입장

에서 생각해주는 여동생이 고마웠다. 그 애도 그동안 수많은

밤을 보내며 아파하고 고민했겠지.




 우리 자매가 헤어져있던 1년 반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

았다. 말을 못 하던 밝음이가 말을 잘하게 되었고 각자의 가정에도 변화가 일어났던 시간들을 우리는 어떻게 나눠  까.

 볼 수 있다고 생각하자 더욱 그리워졌다. 여동생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할지 떨리고 설레어 만날 때까지 잠도 설쳤다.


 이제는 몇 년 전의 과거가 되었지만 지금도 여동생을 만나던

그날의 떨림과 이상한 기분이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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