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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 여행자 Sep 01. 2021

서로를 위한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나는 왜 엄마를 떠났나. 16

 

 여동생과 연락이 닿은 것은 1년 반만이었다. 처음부터

기간을 정해놓지 않은 이별이었고 만나지 않은 시간 동안

나와 동생은 각자의 삶에 집중했었다. 그러면서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고 타인의 마음도 가늠했으리라....


 동생과 만나기로 약속한 종로의 오후는 눈부셨다. 날씨가

화창했던지, 동생을 보는 내 마음이 설렘으로 반짝였던지.




 약속한 장소에 서서 동생을 기다렸고 머지않아 여동생의

모습이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게 보였다. 아주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은 동생의 머리를 길게 늘어뜨렸다. 아주 잠시 낯선

기분이 드는가 싶었는데 동생이 뛰어와 나를 안았다. 그리고

기쁘게 울었다.

 " 언니, 많이 보고 싶었어! 언니는 나 보고 싶지 않았어?"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나를 보며 웃는 여동생을 데리고

음식점으로 갔다. 처음부터 카페에 가서 울고 불고 낯부끄

러운 장면을 연출하기 싫어서였을까?

 

식당에낙지 비빔밥을 먹으며 정답게 이야기를 나눴다. 역시나 자매는 자매인지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 사이처 럼 낯선 감정이 금방 녹아드는 것 같았다.




 여동생은 달라져있었다. 외모도 달라졌지만 두드러지게

변한 점은 태도였다. 예전의 긴장되고 예민해 보이는 모습은

완화되고 전보다 여유롭고 너그러운 모습이 보였다.

 동생도 나를 못 보는 동안 혼자서 많은 생각을 하고 고민을

했던 것이다.


 언니, 그때 언니가 많이 힘들었지? 많이 괴롭고 외로
워서 나한테 털어놓고 기댔을 텐데 그때는 나도 여러가 지로 힘든 상황이었어. 선아가 어려서 손이 많이 갈 시기였고 시댁도 일도 모든 게 날 힘들게 하는데 언니까지 날 힘들게 한다는 생각뿐이었어.
언니랑 연락이 끊기고 시간이 지나니까 후회가 되더라.
내가 언니 마음을 이해 못하고 못 받아줘서 언니가 혼자
튕겨 나가 버린 게 아닌가 싶어서 마음이 너무 아팠어...
 그때는 언니가 엄마를 끊기까지 하는 게 심하다는 생각 도 들었는데 언니가 오죽했으면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싶더라.... 그래서 엄마한테 몇 번이나 난리 쳤었어. 언니에게 화풀이하고 채근해서 괴롭게 만든 엄마가 잘못이라고, 원망스러워서 소리도 지르고 언니 입장에 서 많이 얘기했었어.
그때 언니를 받아주지 못해서 미안했어.
 언니가 내 카톡 보고도 답을 안 해서 나까지 아예 안 볼
작정인가 무서웠는데 이렇게 나와줘서 고마워.



 나와 동생이 각자 보낸 시간은 서로를 위한 약이 되었다.

고통의 시간을 딛고 일어서면 한 단계 성숙해진다더니

나는 동생을, 동생은 나를 이해하고 받아주는 여유로운 마음

을 갖게 된 것 같다.


 다만, 나를 괴롭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은 당연히 엄마였다.

여동생과 만났으니 엄마도 만나자는 압박이 들어올 텐데.

 동생은 그런 나의 걱정을 눈치챘는지 엄마 얘기가 나오자

자신과 엄마는 별개라며 언니가 엄마를 만나고 싶어 할

때까지 만나라고 강요하지 않겠다고 얘기해줬다. 자기는

엄마와 언니의 입장 둘 다 충분히 이해한다며....

 엄마에게도 언니가 보고 싶어 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맞는 것 같다고 의견을 강하게 표현했으니 걱정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내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고려해주는 동생이 사뭇 다르게 보이고 마음이 편해졌었다.




 나를 치유하는 일이 세상을 치유하는 일이라더니, 나와 동

생은 자신을 치유하며 상대방도 이해하는 태도를 지니게

되었나 보다. 우리가 떨어져 있던 시간은 결코 아픈 시간이 아니다. 서로를 더 이해하고 공감해주기 위한 시간이었음 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세상 누구보다 가까운 가족이 오히려 배신감을 안겨주고

실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우리는 서로의 민감한 부

분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각자의 생활, 사고를

존중하며 좋은 마음을 나누는 삶으로 함께 나아가기로 했다.




 재회한 지 일 년으로 향하는 여동생과의 재회는, 나라는 한 인간에게 적지 않은 화를 가져다주었다. 우리의 관계도 재설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각자 싫어하는 게 어떤 건지 파악하는 계기가 된 이별은, 아팠지만 필요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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