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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 여행자 Sep 08. 2021

부끄러웠던 과거의 흉터


 지금 떠올리면 얼굴을 감추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운 경험

이지만 나는 자해를 했었다.

 7살. 지금 내 조카인 선아의 나이에 재혼 가정이라는 낯설

고도 두려운 세상속으로 들어선 이후부터 나는 내 영혼의

일부를 박탈당한 채 살아냈던 것 같다.




 네살때 친아빠의 죽음, 엄마의 재혼과 동시에 생긴 새아빠

와 의붓오빠, 의붓언니. 그리고 의붓오빠의 성추행과 엄마

의 학대에 가까운 감정쓰레기통이 되었던 어린 나의 시간

들.... 그것들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여린 영혼과 육체를

이리저리 끌고 다녔고 나는 나무인형처럼 끌려다녔다.


 내 반항의 방법은 단 한번의 자해로 나타났다. 별다른 반항 없이 지내던 내 속에는 어두운 덩어리들이 자라났고 그게 터지려고 할 때 타인을 향해 발산하는 방법 대신 나를 해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말없고 조용하고 그늘진 얼굴을 한 내가

그 누구보다도 미웠나보다. 누군가를 원망하는 것은 할 수 없어서 나를 어떻게도 해버리고 싶었다. 죽는건 두려웠지 만 나를 해침으로서 엄마와 새아빠에게 복수하고 싶었는 지도 모른다. 나를 혼란속으로 몰아넣은 거대한 환경에게

맞서고 싶었지만 내가 아는건 없었다.


 애어른이 되가던 나는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인생의 즐거움과 기쁨보다는 괴로움, 고통, 우울에 길들여진

나를 힘겹게 짊어지고 살아내는게 익숙했다. 그러면서도

그 원인이 뭔지 정확히 알지못한 채 뾰족한 화살을 내게 들이

미는 것 밖에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엄마의 끔찍한 화풀이,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부모님의 싸움, 의붓오빠의 성추행, 가족들과 반강제로 살며 받는

스트레스. 그것들중에 어느 한가지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

는 요소는 없었다. 나를 버리고 현실을 살아내는 것 밖에는.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사막을 홀로 걷는 불쌍한 낙타처

럼, 주기적으로 채찍을 맞으며 우리에 갇힌 당나귀처럼

나는 무기력한 존재일뿐,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 팔을 새아빠의 면도날로 그었다.

 '나는 심장이 아파. 마음이 괴로워서 지쳤어. 죽고 싶은데

두려워. 아니, 난 살고 싶어. 어두운 내가, 말없고 표정 없는

내가 싫어. 나는 죽어가고 있어. 숨 쉬고 움직이지만 내게는

의미가 없어. 내가 왜 살아야하나요.... '




 이악물고 여러번 그으며 피가 흐르고 살점이 뜯기기도 했지만 울면서도 그었다. 내게 남은 흔적은 내 마음의 상처를 대신 해줄테니까. 지금까지 팔에 흉터가 남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후회하는 것보다 부끄러운게 나은 그때였으니까.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똑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다. 그 정도 의 상처는 마음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므로....

바보같은 짓이 나를 진짜로 죽이는 것보다는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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