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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Oct 05. 2023

시험이란 피할 수 없는데 즐길 수도 없는 것.

처음으로 아이의 시험기간을 맞이하며.

오늘부터 우리 학교는 시험기간이다. 긴 연휴 끝에 시험이라니 아이들에게는 이보다 더 잔혹한 스케줄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교사인 나는 시험기간이 평소보다 약간 더 편안한 편이다. 물론 시험 기간 2-3주 전에는 시험 문제를 출제해야 하는 부담감에 오히려 마음이 불편하다. 매분기 시험문제를 내지만 나에게 시험 문제 만들기란 늘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집이나 전년도 문제에서는 출제할 수 없기 때문에 문제의 형식에도 고민이 많고 수업한 내용 가운데 문제를 만들어야 하기에 문제 제작에 심혈을 기울여야만 한다. 또 수업을 열심히 듣지 않는 친구들에게 수업 시간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 적당한 난도도 필요하다. 그러면서 절대 오류 없는 문제. 이런 여러 조건을 갖춘 문제를 만든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시험 출제 한 번 할 때마다 수명이 주는 느낌이라고 말할 정도이다.


고민의 시간을 넘어 시험 문제 출제를 마무리하고, 함께 출제하는 선생님들과 검토를 마친 후 시험지를 평가계에 넘겨 인쇄가 들어가고 나면 한바탕 폭풍우가 지나간 마을처럼 약간의 고요한 시간이 찾아온다. 물론 몸과 마음은 지쳐 황폐해진 상태이지만.

보통 그 시기에는 시험 범위에 해당하는 진도도 마무리되었을 시점이라, 수업 시간에 간단한 교과활동이나 아이들이 원하는 자습을 주며 운영한다. 아이들에게 자습을 주고 나면 나 역시 함께 책을 읽는 편인데, 그래서 이번 주에만 벌써 두 권의 책을 읽었다. 문제 출제로 황폐해진 나의 상태를 재건하는 시간이랄까.  


그래서 보통 우리 가족은 시험이 시작되기 전 주말에 여행을 다니는 편이었다. 열심히 한 분기 수업을 하고, 며칠 밤을 고민해 시험 문제를 만든 나에게 주는 작은 포상휴가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나의 큰 애도 시험을 보는 중학생이 되었기 때문이다. 첫 시험인 데다가 몇 년간 자유학년제로 중1은 시험을 보지 않았기에 기출문제도 없어 시험에 대한 감도 잡지 못한 상태인 큰 애는 부쩍 긴장을 했다. 중학교에서 보는 시험은 연습일 뿐이라고, 나에게 맞는 공부방법을 찾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라고 해도 아이의 마음은 편해지지 않는 듯했다. 사실 힘들 때 힘내라는 말이 큰 도움이 안 되는 것처럼 나의 격려나 지지는 어쩌면 아이에겐 부담스러운 잔소리였을지도 모른다.


연휴 기간에도 사실 같은 지역의 양가 할머니 댁에서 푹 쉬어도 될 것 같았지만, 그건 엄마 생각이고 아이는 그래도 자기 책상에 있고 싶어 했다. 그래서 양가 부모님의 양해를 구해 아이가 원하는 대로 최대한 집에 머물며 공부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멀리서 보면 약간 저효율의 공부를 하는 것 같았지만, 공부에 대한 잔소리를 더하면 이내 차가워지는 예민한 상태였기에 모르는 척 아이가 공부할 때 곁을 지켜만 주었다.


공부하는 아이의 뒷모습에서 나의 첫 시험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초등학교에서는 공부를 전혀 안 해도 수업 시간에 이해만 했다면 누구나 백점 맞는 행복한 시기였기에 준비 없이 만난 중학교 첫 시험에서 한문, 도덕과 같은 공부의 필요성을 몰랐던 과목들에 처참하게 비가 내렸었다. 사실 우리 엄마는 시험 기간 공부하다가 졸리다고 말하면 그냥 자라고 불을 꺼주던 엄마였기에 그런 점수들에 놀라긴 했어도 크게 스트레스받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도 스트레스 주는 엄마이기는 싫은데,,, 그래서 며칠 전 큰애가 공부하다 침대에서 책 보는 내 곁에 잠시 누워 졸려했는데, 예전에 우리 엄마는 이럴 때 나보고 그냥 자라고 했었다고 그러니까 너도 졸리면 그냥 자라고 얘기하니 할머니는 그랬을 거 같다며 웃고 조금 쉬다 일어난다. 피곤한데도 일어나는 아이를 보는 것도 참 짠하다.


그런데 그 모든 준비 기간을 거쳐 오늘 시험 첫날이다. 나 역시 1교시부터 감독이 있었는데 나는 늘 하던 감독임에도 몹시 긴장이 되었다. 그리고 교실 안에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잔뜩 긴장한 얼굴과 피로가 깃든 표정. 집에서 본 내 아들의 모습이다.

“준비하느라고 얼마나 고생들 했니. ”

나도 모르게 진심 어린 말이 나왔다. 교실 안에 있던 아이들은 시험지를 들고 있는 나를 빤히 쳐다본다.

“오늘 푸는 거, 찍는 거 다 맞을 수 있도록 내가 시험지 나눠 주는 동안 눈감고 각자 조상님들께 기도하자!”

며 농담을 했지만, 아이들의 웃음은 희미했다. 내 아들도 아마 그 어떤 농담에도 웃지 못하는 상태일 거다.  


하루가 길었다. 아이가 끝났을 시간이 되었는데 전화가 오지도 않고 끝났냐고 묻는 카톡도 읽지 않아 초조해진다. 잘 봤냐고 물어보면 너무 속보이나? 어려웠어? 괜찮았어? 는 어떨까. 고민을 하다가 점심에 뭐 먹을래?를 보냈는데도 답이 오지 않는다.

뒤늦게 초밥을 먹는다는 아이의 응답에 초밥을 주문하고 집에 잠깐 들러 아이 얼굴을 보았다. 아이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오늘 시험 본 과목들의 점수를 읊는다. 백점 맞은 과목도 있지만 80점대 과목도 있다. 그런데 그 80점대 과목이 무려 수학이라는 사실. 아니 하루 종일 수학만 풀더니 왜 80점대냐는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벌써 내뱉었다. 아이는 시험이 진짜 어려웠다고, 어려운 거 먼저 푸느라고 시간이 부족했다고 , 자기뿐 아니라 친구들도 다 못 봤다고 누구는 70점대고 누구도 80점대라고 자기가 못 본 편은 아니라고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이의 말을 듣던 나는 오후에 연수가 있어 초밥을 꺼내주고 다시 학교로 들어가며 이따 더 얘기하자고 했다. 연수를 듣는 내내 아이의 말을 생각해 본다. 사실 백점 맞은 과목도 있었는데 그 과목 점수는 칭찬 한 마디 못했다는 늦은 후회가 든다. 그리고 자신이 노력한 거에 비해 점수가 만족스럽지 않아 가장 속상한 사람은 아마도 아이일 텐데, 왜 내가 실망한 기색을 보였을까 그리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첫 시험치고 그리 못 본 것 같지도 않다. 나는 대체 아이에게 몇 점을 기대한 걸까. 미안해진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나도 시험기간에 우리 반 아이들에게 많이도 했다. 그러나 시험을 준비하는 아이를 보며, 시험 준비를 즐기며 하는 아이는 많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나 역시 시험을 즐기지 못했던 사람 중 한 사람이면서 그런 공연한 소리를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라는 사람은 자신이 직접 경험해 본 것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류의 사람인가 보다. 아이에게 또 이렇게 배우게 된다.


집에 돌아와 아이와 함께 시험지를 보았는데, 아이가 계산 실수한 문제를 자꾸 곱씹는다. 이거만 맞았어도. 이거 먼저 풀걸. 절절한 아쉬움이 내게도 전해진다.

시험 기간 아이와 부딪히지 않기 위해 일부러 아이를 기특이라고 불렀다. 기특아. 아이고 공부하는구나. 기특아 밥먹자! 이렇게 말이다.

틀린 문제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큰애에게

“기특아. 잘했어. 엄마가 대충봐도 너무 어렵네. 선생님이 공부 더 열심히 하라고 어렵게 내셨나 봐. 중학교 만만하게 보면 안 되겠지? 열심히 준비해서 다음에 잘 보면 되니까 너무 아쉬워하지 마. 그리고 영어 문법 문제 어려웠을 텐데 백점이라니 역시 기특해! ”

갑작스레 칭찬하는 나를 어색해하기도 했지만, 아이의 굳은 표정이 조금 풀린다. 중학교 시험 그거 진짜 별 거 아닌데, 시험 점수보다 공부 방법 찾는 게 더 중요한 건데. 잘 알면서도 아이에게 서툰 서운함을 내비친 게 못내 미안해진다.

이제 앞으로의 시험기간은 더 이상 편안한 휴식의 시간이 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도 공부하는 아이 곁을 지키며 더 많이 읽고 쓰는 시간이 생겼으니 아이나 나나 더 성장하게 되는 시간임에는 분명하다. 이 시간을 잘 채우고 웃으며 오늘의 일을 이야기하는 때가 오기를 바란다. 그나저나 내일은 실수 좀 덜 했으면….. 하하하


@표지사진은 작년 이맘때 함께 갔던 설악산. 아들아 시험 빨리 마치고 산에 가자! 너를 기다리는 산이 있어. 왜 아들이 더 절망하는 거 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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