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에게 바치는 사랑 고백
몇 년 전 아들과 성당에서 하는 모자 교육 같은 것을 했는데 그중 ‘서로에 대한 퀴즈 맞히기‘같은 프로그램이 있었다. 다른 문제는 서로 거의 맞혔는데, 아들이 나에 대한 문제 중 좋아하는 음식을 쓰지 못했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들이 급하게 묻는다.
“엄마,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이 뭐야? 나는 삼겹살이라고 썼단 말이야.”
하하, 삼겹살도 좋아하지. 좋아하지만 엄마의 영혼까지 채워주는 좋아하는 음식은 바로 떡볶이거든?!?!
어렸을 때, 학교가 끝나면 초등학교 앞에 으레 있을만한 조그마한 분식점에서 컵떡볶이를 먹었더랬다. 당시 가격은 100원이었던 것 같은데 굉장히 저렴했음에도 매일 먹지는 못하고 일주일에 한두 번, 주머니에서 챙겨 왔던 용돈을 꺼내 먹었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중학교 때에는 시험이 끝나는 등 일찍 끝나는 그런 날에 친구들과 삼삼 오오 모여 즉석 떡볶이를 먹었더랬다. 바로 앞의 버너에서 보글보글 끓던 떡볶이. 라면 사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었다. 어른이 되어도 떡볶이에 대한 사랑은 식지 않아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갈 때도,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할 때도 떡볶이는 단골 메뉴였다. 이처럼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고 나서도 떡볶이는 내 삶에서 자주 등장했다.
사실 떡, 라면, 튀김, 순대 등 각종 탄수화물의 총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분식인데 사실 그중에 최고봉은 떡볶이인 것 같다. 왜냐하면 별 맛없는 튀김도 순대도 떡볶이 국물에 풍덩 하는 순간 떡볶이 못지않은 맛의 감각으로 보답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서글픈 건 이제 탄수화물의 소화력이 과거 같지 않아서 요즘은 떡볶이를 조금 과식하면 한동안 소화가 안 되는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존재다.
떡볶이가 생각나는 순간이 있다. 매콤하면서도 달콤한 중독적이고 자극적인 양념이 필요한 때에 떡볶이는 순식간에 행복감을 선사해 준다. 힘들고 지친 순간, 에너지가 고갈되어 충전이 필요한 순간, 먹을 음식이 별로 없는데 배가 몹시 고픈 순간. 바로 떡볶이가 나를 부르는 순간이다. 떡볶이에 대한 사랑은 나뿐은 아닌 것 같다. 예전에 서점에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책을 발견하고 누가 이런 완벽한 제목을 지었는지 홀린 듯이 구입해 읽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가족과 함께 강원도 여행 중이다. 오늘은 벼르던 설악산 등산을 다녀왔는데, 등산이라는 것이 보통 아침 일찍 시작하고 산 위에서 점심 식사를 해야 하기에 아침도 점심도 대충 때우게 된다. 오늘도 그랬는데, 그래서인지 무사히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데 허기가 느껴진다. 그냥 숙소로 들어가면 힘들어 못 나오게 될 것 같아 먹을거리를 사러 갔다. 시장 쪽으로 가던 중에, 친한 선생님이 추천해 준 동아서점에 들렀다. 나와 문구 덕후인 큰애가 서점에서 내려 책 산책과 쇼핑을 하고, 남편과 막내가 시장 투어를 해서 맛있는 음식을 사 오기로 하는데, 유리창 너머의 서점 건너편 떡볶이집이 손님으로 가득 찬 것이다. 즉석 떡볶이 집인지, 버너에서 끓여대는 연기로 떡볶이집의 유리창이 뿌옇다. 책이고 뭐고 저 떡볶이를 사 먹어야겠다. 먹을 게 많은 강원도인데, 내 위 사이즈를 내가 아는데, 지금 이 허기, 등산을 무사히 마쳤다는 이 기분은 역시 떡볶이지. 마침 서점에서 골라 내 손에 들려 있는 책도 떡볶이 책이었다.
@표지사진은 서점에서 구입한 책을 들고 바라본 떡볶이집. 인심 좋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부지런히 장사하고 계셨다. 그리고 연휴 첫 날인 오늘, 나를 마지막으로 떡볶이는 sold out! 역시 떡볶이도 나를 알아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