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것도 집중이 필요하다
12월이 되었다. 12월을 손꼽아 기다렸다. 왜냐하면 11월 마지막 날까지 제출해야 할 보고서가 두 편이었다. 보고서를 쓰려 수집해 둔 자료를 책상 위에 산적해 두고, 넘겨야 할 보고서를 모두 넘긴 여유로운 12월을 상상했다. 물론 학교에서 일하는 내 경우에, 12월은 절대 여유로웠던 적이 없었지만 말이다.
무튼 그렇게 11월 마지막이 되기 하루 전 두 편의 보고서를 발송하고, 12월을 맞았다. 손꼽아 기다리던 12월의 첫 주말! 주말만 되면 늘어지게 늦잠도 자고, 책도 많이 읽고, 영화도 한 편 볼까 하며 실컷 즐거운 상상을 했고 이런 상상만으로도 여유로워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현실과 이상은 괴리가 있기 마련인 것인가. 우선 토요일 늘어지는 늦잠은 실패했다. 남편이 금토 집을 비우기에 토요일 아침 9시에 아이를 방과 후 수업에 보내야 하는 임무가 있었다.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둘째 아이를 깨워 밥을 먹여야 했기에 늦잠은 우선 포기했다. 늦잠은 무슨, 못 일어날까 봐 새벽 5시부터 한 시간에 한 번씩 깼다 (우리 집은 남편이 아침 알람이다. 가족 구성원 모두를 깨우는 역할을 담당하는 그가 없는 아침은 언제나 긴장된다. 못 일어날까 봐........ 실제로 못 일어난 적이 몇 번 있어서,, 하하)
아침에 커피를 한 잔 내려 부엌에 앉아 책을 좀 보려 하니 큰 애가 일어난다. 그렇지 주말은 시간차 기상이지. 큰 애의 아침을 준비하려 냉장고를 보니, 지저분한 냉장고가 눈에 들어온다. 일주일간 마구마구 넣어 둔 냉장고의 식재료 칸. 버려야 할 반찬들과 조그마한 도막 난 야채들. 먹다 남은 주스들. 못 본 체를 하려다 이내 마음을 바꾼다. 오늘은 겨우 토요일이고 이번 주말은 별다른 스케줄 없이 휴식만 하면 되니까, 까짓 거 정리해 준다. 냉장고를 정리하고 아이들이 먹은 아침 그릇을 정리하고 나니, 오전이 얼추 지나가고 있다.
시간이 더 흐르기 전에, 요가라도 해야겠다. 요가매트를 편다. 내가 좋아하는 유튜브의 요가 선생님의 명상 음악을 들으며 아침에 하기 좋은 요가 동작을 따라 하다 보니, 바닥에 먼지가 눈에 띈다. 요가라는 운동의 특성상 몸이 매트 위에서만 움직이지 않기에, 발도 나가고 때로는 이마가 나가기도 하기에 먼지 구덩이에서는 더 이상 할 수 없지. 무선 청소기를 켠다. 윙윙 돌리다 보니 어느덧 안방도 들어가고 들어가지 말았어야 했던 아이들 방까지 들어갔고 이내 나오긴 힘들어졌다.
애들 방까지 대충 정리하고 나오니, 어느새 점심 때다. 점심을 먹으면 아이를 데리고 어린이 미사를 보러 성당에 가야 한다. 아직 씻지도 못했는데, 급하게 바지락을 넣은 봉골레 파스타를 해 먹고, 성당을 바쁘게 다녀왔다. 성당에 다녀오니, 남편이 저녁엔 맛있는 것을 해 먹자며 장을 보러 가자고 한다. 그래 토요일은 특식이니까. 남편과 장을 보고 저녁 미사를 가야 하는 큰애와 남편을 내보내고, 둘째도 마침 성당 봉사가 있어 세 명을 내보내고 드디어 다시 휴식시간이다.
"모두들 빨리 나가줘."라고 말하고 책을 펴고 조금 읽으려는 순간 큰 애에게 카톡이 온다.
"엄마 내 도덕 문제집 샀어요?" 지난 중간고사에 도덕 시험을 망쳤던 아들이 내게 구입을 부탁했던 도덕 문제집. 아 잊었다. 다시 일어나서 점퍼를 입고 집 근처 서점으로 바삐 걷는다.
다시 집에 돌아와 거실에 앉으니 하루가 너무 바빴어서 웃음이 난다. 나 참 내가 원했던 휴가는 이게 아니었던 것 같은데, 또 말끔한 거실과 부엌을 보니 편안한 생각도 드는 이 아이러니란. 일하는 것뿐만 아니라 쉬는 것도 집중! 이 필요한 것 같다.
일요일마저 이렇게 보낼 수는 없어서 일요일엔 책을 싸들고 근처 카페라도 나가야겠다. 집에 책상이 세 개나 있고 거실에만 테이블이 두 개지만, 주말 일거리와 책거리를 싸들고 카페 마실을 나가야만 쉴 수 있는 아이러니. 어쩔 수 없겠지. 휴식도, 쉼도 일상의 먼지가 안 보이는 곳에서 집중이 필요한 것을.
(@대문사진은 저번에 카페 마실 갔다가 발견한 책풍경! 먼 훗날은 이런 무심한 배치로 내 서재를 꾸며야지하고 상상하며 찍어온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