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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Dec 24. 2023

올해의 실패

나의 시간으로 채우는 나의 저녁시간을 또 내년으로 미루며.

저녁을 다 먹고 나면 다 먹은 그릇들과 남은 음식들은 식탁에 둔 채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또는 핸드폰을 보며 식탁에 앉아만 있는 시간이 계속되었다. 모르는 이가 본다면, 게으르게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그 시간 속의 내가 가장 많이 하는 것은 ‘내적갈등’이다.


춥다는데, 산책을 갈까? 가지 말까?

이불 밖은 위험하니, 요가를 좀 할까?

독서 모임 책도 아직 다 못 읽었는데 책을 읽어야 하나.

글쓰기 모임 전에 글도 좀 써야 할 텐데.

사실, 생기부도 다 못썼잖아.


이러저러한 생각들로 내적 갈등일 때, 핸드폰에서 새로운 알림이 온다.


‘하다 보면 어느새 영어가 술술 나올걸요?’

이쯤이면 저녁 먹고 먹은 것을 다 치웠겠지? 하며 설정해 둔 영어 공부 어플이 보내는 알림이다.

그러나 나는 그때까지 여전히 식탁 앞이고 사실 저녁 먹은 음식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상태일 때가 태반이다.

그러니 우선은 일어나서 식탁 정리부터 해야겠지 하며 일어나 식탁을 정리하면 내 몸은 저절로 침대에 이끌리고 그 뒤로는 책을 조금 읽거나, 영어 공부 어플을 열어 아주 조금 영어 공부를 할 뿐이다. 고민한 시간에 비해 성과는 미약한 나날이다.  


그러니 내가 생각했던 효율적인 저녁은 이게 아닌데. 하는 후회와 번민이 밤마다 나에게 찾아오지만, 에이 오늘 못한 것을 내일 또 하면 되지.라고 생각하며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휴식을 취하면서도 뭔가 빚진 이 기분. 나는 대체 누구에게 변명하고 있는가.


얼마 전 우연히 서점에서 만난 분이 그림책을 고르는 중에 아이가 매일 똑같은 책을 여러 번 읽어달라고 하여 힘들다는 말을 하셨다. 그런데 그 순간 내가

“그 시기가 길지 않더라고요. 더 누려요.”라고 말했다. 힘들다는 푸념 앞에 더 누리라니. 그런데 정말이다. 나에게도 그때가 더 누려야 하는 소중한 저녁시간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아이들을 챙기고 살림에 나의 일까지 해야 했던 시기를 사실 나도 그리 누리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시기에는 빨리 아이들이 자라 내 시간으로 채우는 저녁시간을 꿈꿨었다. 그때가 되면, 더 이상 아이들을 챙기지 않아도 되는 때가 되면, 책도 더 많이 읽고 글도 쓰고, 운동도 하고 나를 채우는 시간으로 써야지 하며 굳은 다짐을 했더랬다. 그래서일까. 더 이상 아이들이 내 저녁시간을 방해하지 않는 지금, 나는 계속 무엇인가에 빚을 진 기분이다. 나는 과거의 나의 다짐에게, 아이 육아가 내 시간을 다 빼앗아 갔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의 시간에게 쫓기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저녁 시간 중 아이들과의 시간을 쏟았던  과거 그 시기가 가장 열심히 살았던 나의 저녁시간이었던 것만 같다. 그러니 더 이상 아이들이 나를 찾지 않는 저녁 시간에 공허함을 느끼고 이렇게 내적 갈등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기다렸던 나만의 저녁시간이 되었는데 나는 휴식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시간을 죽이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문득 한심한 생각도 들고, 바쁘게 뛰었으니 잉여로운 시간도 필요하다며 항변도 하고, 있지만 실은 갑자기 찾아든 이런 시간들에 방황하고 있는 것 같다. 아이 중심의 삶에서 이제 나를 중심으로 하는 삶으로의 이사가 쉽지는 않다.

올해의 저녁 시간은 나만의 시간으로 채울 수 있을 것 같았으나, 실은 방황하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지난 글쓰기 모임에서 이번 글쓰기 글감으로 ‘올해의 실패’를 정했다. 그 이후 올해의 실패가 무엇이었을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하나 같이 다 실패처럼 느껴진다. 영어 공부도 꾸준히 못했고, 책도 읽다 말다 읽다 말다 하기도 했으며, 다리 다친 이후로 가늘게 하던 운동마저 놓아버렸다. 모두 다 내가 저녁 시간에 하려 했던 것들인데, 하는 생각이 드니 나의 그동안의 저녁이 다 실패였던 것만 같아진다. 이대로 무력하게 실패감에 휩싸일 수 없으니 나의 성공도 생각해 본다. 성공이라고 단정 짓기에 성과가 너무 미약한 것 같아 망설여지는 것들 뿐이다. 그래도 그중에 글쓰기를 시작한 것! 은 성공이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물론 글쓰기도 간헐적으로 하고 있긴 합니다만.)

함께 서로에게 손카드를 쓰고 올해의 글감을 골랐더랬다. 이슬로 작가는 마음에 60프로만 들어도 작업을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60프로라는 말이 참 위안이 되었다.

글쓰기를 시작한 것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다정한 글쓰기 모임 때문이다. 글을 쓰고 서로 나누고 격려해 주는 다정함이 나를 계속 쓰게 했다. 나의 성공을 가져오는 열쇠는 다정함이었던 것인가. 내년에 나의 저녁 시간들을 생각했을 때 후회나 아쉬움이 아닌 뿌듯함으로 채우려면, 나의 저녁에 다정함이 필요할 것 같다. 이를테면 이렇게 말이다.

 

아이 손을 잡고 산책하던 길을 이젠 혼자도 씩씩하게 나가 걸어야지. 내가 다정한 나의 운동 파트너가 되어주리라.

아이에게 읽어주려, 먼저 읽고 발음도 찾아보고 했던 영어책을 이젠 나를 위해 읽어줘야지.

아이들 책이 아니라 내가 읽고 싶은 책으로 서가를 채워가고 있다. 더불어 잉여로운 저녁 시간에 함께 방황하는 아빠새와 소소한 독서 대화도 해야지.

영어 어플아. 매일 같이 같은 시간에 알림도 보내주고, 반응이 없으면 메시지도 바꿔서 나를 깨우려 하는데, 내년엔 좀 더 많이 길게 만나 다정한 시간을 만들자.


다정하기로 결심하니 올해의 실패도 실패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여전히 영어는 숙제이지만, 그래도 놓지는 않았으니까. 운동을 많이는 못했지만 계절의 변화를 산에서 보기는 했다. 또 책은 꾸역꾸역 놓지 않았잖아. 다정한 칭찬을 곁들이니 실패의 시간들도 따스하게 바라봐진다. 부디 내년은 스마트 폰을 내려놓고 공허나 허무가 아닌 나를 찾아가는 시간으로 저녁을 채우고 싶다. 올해의 나의 실패는 이것이지만, 내년의 나의 성공은 나를 찾아가는 여정으로 채우는 저녁시간이 되길 바라며 나의 일 년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다.  


<@표지사진은 눈이 온 날, 설경을 보기 위해 아이젠을 끼고 올라간 뒷산. 이 날은 막내도 따라와 줬다. 아직은 함께 하는 시간과 혼자 하는 시간의 공존이다. 이 공존도 누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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