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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Jan 07. 2024

[에세이] 내 일로 건너가는 법

성장이라는 점을 찍고 나아가는 직장인의 꿈.

 학기 말은 교사에게 생기부라는 세 글자로 점철되는 것 같다. 특히 담임교사는 생기부에 기록해야 할 부분이 정말 많은데 미션을 깨는 것처럼 한 항목 항목 쓰다 보면, 올 것 같지 않은 학기의 끝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는 아직 그 끝과 만나지 못했다. 우리 학교는 급식실 현대화 공사로 여름방학을 평소보다 길게 했기에 겨울 방학이 짧기 때문이다. 여름 방학이 길어 긴 여름휴가를 다녀왔음에도 과거는 쉽게 망각되는 게 인간의 본성 아니겠냐며 볼멘소리를 해본다. 무튼 하루하루 아이들의 생기부를 쓰는 일은 벅차긴 하지만 아이들의 일 년이 세심하게 기록되어야 하기에 대충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기록하다 보면 나 역시도 일 년을 정리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애들에 대해 더 알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니 힘들기만 한 여정은 아닌 것 같다. 여전히 끝은 멉니다만요.


 생활 기록부에는 진로 희망 사항을 적게 되어 있는데 이 부분은 아이들에게 직접 물어보고 적어주는 편이다. 그러나 아직 중학생이다 보니 자신의 진로를 명확하게 정하지 못한 친구들이 많다. 그런 친구들은 ‘진로탐색 중’이라는 문구를 안내한다. 그런데 어떤 아이들은 ‘건물주’, ‘프로게이머’등의 직업을 (건물주도 직업인가요,,,? 임대사업자라고 하자.) 거침없이 적어 낸다. 중학교 생기부야 어디에도 쓸 데가 없지만 교사 입장에서는 너무 생각 없이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자신의 미래를 상상해서 약간 미래에 쓰는 일기처럼 써보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몇몇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어쩜 하나같이 시작은 달라도 끝은 비슷해진다. 어떤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다가 결국은 돈을 많이 벌어 놀고먹는다는 이야기. 얼마 전 읽은 ’ 2000년 생이 온다 ‘라는 책에서 새로운 2000년 생들은 근속이 아닌 퇴사를 추구하는 세대라고 했던가. 이들에게 회사라는 곳, 직업이라는 이미지는 고되고 힘든데 월급은 별로 많지 않아 힘든 여정처럼 느껴지나 보다. 기성세대로서, 또 직업인으로서, 지쳐있고 피곤한 모습을 너무 자주 보여줬던가. 하는 생각에 이내 미안해진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게 직업은, 학교는(나에게는 학교가 회사이니) 힘든 여정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데 억울한 이 직업의 누명을 어찌 벗겨주어야 할까.  


그러던 중에 김민철 작가의 ‘내 일로 건너가는 법’이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한 회사에서 18년, 7년 차 팀장인 그녀가 직업인으로서 일을 계속하면서 내일(tomorrow)로 건너가는 자기만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나 역시 어느덧 15년 차 직장인이다. 이렇게 오래 직장인으로 살았나 싶어 새삼 대견하기도 하고 앞으로의 날들이 조금 무겁게 다가오기도 하는 때이다. 공립학교 교사는 보통 한 학교에서 최대 5년가량 근무하게 되는데 나는 그렇게 벌써 세 번째 학교에 있고 그리고 24년에는 네 번째 학교로의 이동을 준비하고 있다. 나에게 지나온 시간만큼의 경력과 지혜가 쌓여 있나 자문하니 이내 구석에 숨고 싶어지기도 한다. 아이들은 항상 달라서 해마다 노하우라고 생각해 두었던 나만의 무기들이 적용되지 않을 때가 많고 그래서 해마다 노하우 갱신을 해도 여전히 부족한 모습에 스스로 자책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결국 모두는 스스로를 위해 먼 곳에 점을 찍고 그쪽을 향해 노를 저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대신 노를 저어줄 사람도 없다. 꼼수도 통하지 않는다. 다만 일 속에서도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으며 노젓기에 최선을 다한다면 때로는 바람이, 물결이 쪽배를 슬쩍 떠 밀어줄 거라 믿는다. 닮고 싶지 않은 누군가의 모습에서 멀어지도록. 기어이 닮고 싶은 누군가의 모습 쪽에 ‘나’라는 쪽배를 정박할 수 있도록. <@내 일로 건너가는 법, 김민철>



그런데 책에서 스스로 먼 곳에 점을 찍고 나아가 보라고 한다. 점을 찍는 사람이라는 그 말이 참 좋았다. 생각해 보니 나는 더 나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고 앞을 보기보다는 지금 현재의 나의 빈 곳을 바라보며 부족함에 동동거리는 날이 많았던 것 같다. 충분히 수업을 준비했음에도 내 생각대로 수업이 나아가지 않을 때, 믿었던 아이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얻게 될 때, 딴에는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업무상 실수가 연발될 때. 그럴 때 나는 나 자신의 앞날을 믿어주기보다, 자책하고 의기소침해지지 않았나. 그런데 그런 과정 중에도 먼 미래에 점을 찍고 열심히 노를 젓다 보면 나라는 배도 어느 순간에는 그 점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에 희망을 품어 본다. 김민철 작가는 그러기 위해서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꾸준히 자신을 성장시키는 딴짓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뜨개질하는 스키 선수, 운동하는 개그우먼, 주말마다 캠핑을 떠나는 광고 감독, 새벽마다 글 쓰는 직장인, 전국 맛집 기행을 다니는 조율사, 틈틈이 만화를 그리는 신입사원, 아침마다 텃밭 농사하는 팀장, 랩 하는 농구선수, 마술 하는 축구선수, 틈틈이 배를 만드는 사장님, 요리에 너무 진심인 의사, 소설 쓰는 차장님, 술 만드는 선생님, 축구하는 국악인 등등. 실제로 본업을 하면서 딴짓을 하는 사람들을 조금만 나열해 봐도 이토록이나 다채롭다. 열심히 딴짓을 하는 사람들이 본업에서 얼마나 빛나는 성취를 거둘 수 있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내 일로 건너가는 법, 김민철>


나를 위해 먼 곳에 점을 찍고 내가 할 수 있는 딴짓들을 모색해 본다. 나는 직업인으로 학교에 출근해서 아이들을 가르치지만, 그 여정 속에서 나라는 사람을 잃고 좌초되고 싶지 않다. 아니 오히려 더 나아가고 싶다.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에 점을 찍고 어쩌면 모두가 지지해주지 않는 여정일지라도 나를 믿고 꿋꿋하게 나아가 보겠다. 24년 새해가 되었고 어느덧 7일, 딱 일주일이 지났다. 새해 내 앞에 놓여 있는 많은 과제에 기죽지 않고 천천히 나만의 방식으로 딴짓하며 내일로 나아가겠다. 그런 나의 다짐을 단단해지게 하는 책이었다.  


<@표지사진. 얼마 전 찾아온 제자와 저녁을 마시며 가볍게 맥주를 마셨다.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제자를 위해 건배했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나의 일 년에게도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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