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깝지만, 그럼에도 몰랐던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
새벽 두 시 알람이 울렸다. 사실 알람이 울리기 전에 잠이 깼다. 왜냐하면 바로 오늘이 엄마와 여동생과 함께 대만으로 출국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벌써 4~5개월 전에 예약한 여행이었다. 그러나 나와 동생 모두 바쁜 직장 생활로 비행기 표와 호텔만 예약하고 별다른 준비를 못한 여행이었다. 엄마를 위한 여행이었는데, 엄마는 우리만 믿고 있을 텐데 나와 동생은 매일매일의 삶에 치여 대만은 별로 생각하지도 못했다. 아이들과 함께 가는 여행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무리 바빴어도 아이들과 하는 여행이었다면 좀 더 세심하게 찾아보고 준비했을 것 같았다는 생각에 출발도 전에 엄마에게 미안해졌다.
이른 아침에 출발하는 비행기였기에 거의 첫차로 출발하는 리무진 버스에 탔다. 새벽 세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라 너무 피곤한 나머지 버스에 타자마자 이내 잠들었다. 사실 나보다는 동생이 더 바빴는데 여행 하루 전 동생네는 이사를 했다. 이사보다 여행 날짜를 먼저 예약했기에 얄궂은 시간 차로 고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내가 준비하마 했지만 사실 나 역시 이번 학기는 길고도 길었기에 여행 며칠 전 인기 많은 투어를 하나 예약했을 뿐 별다른 계획을 세우지는 못했다. 여행 후에 바로 출근해야 하는 동생의 스케줄 때문에 여행은 꽉 찬 2박 3일이었고, 입국과 출국일은 공항에서 시간을 한참 보내야 하기에 그냥 맛있는 음식이나 먹고 쉬다 오는 여행으로 콘셉트를 잡자며 토닥이는 마음으로 출발했다.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불경기라는 세간의 뉴스와는 다르게 여행을 떠나려는 인파로 붐볐다. 나는 얼마 전 유럽여행을 다녀왔고 동생도 아이들과 올해 봄 괌에 다녀왔지만 엄마는 코로나가 있기 전에 공항을 왔기에 오랜만의 공항 바이브에 설레하셨다.
갈 때의 비행기는 3 열이었기에 엄마를 창가석에 앉으시라고 했다. 사실 여행을 많이 다닌 것은 아니었지만 언제부턴가 창가보다는 통로 쪽 자리가 편한 나였다.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창가 쪽은 2 열이기에 쿨하게 4열이 있는 통로 쪽 3자리로 사전 좌석 지정을 해두었었다. 대만까지의 비행시간은 2시간이 조금 넘었기에 나는 ‘엘리멘탈’을 보다가 졸기를 반복하고 있었는데 엄마는 틈만 나면 창문 밖을 보시며 날씨가 너무 좋다고 연신 웃으셨다. 창가 자리를 저렇게 좋아하는 줄 알았다면 올 때도 창가를 예약해 둘걸 하는 후회가 스쳐갔다
대만은 참 깨끗하고 사람들은 친절한 나라였다. 거리나 지하철 역에 작은 쓰레기 하나 없을 정도로 청결했고 길을 묻거나 상점에서 물건을 살 때에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밝게 웃으며 우리를 도와줬다. 그러나 한 가지 대만의 건물들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이 많았기에 맛집을 가거나 카페에 가려해도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다. 건강한 우리야 계단 몇 개쯤은 문제가 아니었지만 엄마는 무릎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사실은 여행을 함께 다니기 전에는 엄마의 무릎을 그리 유심히 보질 않았었다. 엄마에게 이 여행이 무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겁이 났다. 그래서 여행 초반에는 대만의 대중교통을 이용하려 했지만, 엄마의 건강 상태를 고려해 후반부에는 주로 택시를 이용했다.
사실 결혼을 일찍 한 나 때문에, 엄마는 딸 둘을 두었지만 딸들과 여행을 자주 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틈나는 대로 가족여행을 챙겨 다니던 우리였다. 그런데 우리의 여행이나 나들이는 주로 아이들이나 사위들, 그리고 아빠와 함께였기에 그동안의 여행에서는 엄마가 우리의 먹거리 등을 준비해 왔었다. 여행 장소에 김치며 밑반찬을 빼곡히 싸 온 엄마에게 뭐 이런 걸 싸 오냐고 타박했지만 가장 맛있게 먹은 사람들은 엄마의 딸들과 손주들이었다. 그렇게 엄마의 희생으로 빚어진 여행들이 그동안 우리의 가족여행이었다.
해외로는 처음 떠나는 모녀여행이었는데, 엄마를 더 생각하지 못했다는 후회와 아쉬움이 남는다. 무릎이 아픈 엄마를 위해 처음부터 지하철이 아닌 택시를 탈 걸,, 센과 치히로를 본 적도 없는 엄마에게 유명한 곳이라고 폭우가 내리는 지우펀 골목을 갈 게 아니라, 근교의 한적한 온천마을에 다녀올걸. 엄마의 희생으로 채워졌던 과거의 여행에서 엄마를 해방시켜주고 싶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여행 역시 딸들의 여행 코스에 누가 되지 않으려는 엄마의 노력으로 채워졌다.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날 아빠에게 전화해 엄마의 안부를 물으니 엄마는 지금 자고 있다고 전하셨다. 삼일 내내 피곤했을 엄마가 이내 짠해졌고 힘듦을 감춘 채 너무 좋았다고 하는 엄마에게 또 미안했다. 엄마의 희생을 조금이나마 갚고 싶었는데 엄마에게 여지없이 빚지고 온 기분이 든다.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며 일상에서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느껴보고 알아가는 묘미가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새로운 세상일 때도 있고 나 자신이나 주변 사람에 대한 것일 때도 있다. 이번 모녀 여행에서는 나는 엄마를 더 많이 봤다. 엄마 손을 잡고 오래 걸었다. 어느새 투박하고 두꺼워진 엄마의 손을 잡는 내내 미안해졌다. 또 걸을 때 불편해 보이는 엄마의 무릎을 오래도록 봤다. 그동안 몰랐던 약해진 엄마의 모습을 알게 되어 슬프기고 다행스럽기도 했다. 이제 엄마와 두 딸인 우리에게 남은 시간들을 서로를 알아가는 데에 쓰고 싶다. 그렇게 우리들의 여행이 계속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