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고 쓰고 회피형 인간이라고 읽기
이번 여름은 정말 더웠다. 덥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뜨겁고 습하고 무덥고 더위가 할 수 있는 지독한 것들은 모두 다 한 여름이었다. 그런데 그 여름의 지독함은 심지어 길기도 했다. 추석의 추는 가을 추자인데, 가을이라기엔 너무나 무더운 추석이었다. 추석까지 덥다니. 구월의 중순인데 이렇게 덥다니 이런 말이 내내 오가던 9월이었다. 지독했던 더위는 물러갈 때도 그냥 물러가지 않았다. 요 며칠 엄청난 폭우를 내리며 번쩍이는 번개와 우르르 쾅하는 천둥을 쏟아내고 사라졌다.
지난했던 더위는 이렇게 폭우와 함께 사라졌다. 하루 만에도 날씨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를 실감하며 내내 더워했던 날들이 무색해졌다. 창 밖으로 들어오는 선선한 바람이 이제 가을임을 몸소 느끼게 했다.
선선한 바람과 기운은 종종 쓸쓸한 기분을 가져와 사실 나는 가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한정원 시인의 에세이 중 '내가 네 번째로 사랑하는 계절'이라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은 여름을 소재로 쓰인 책이다. 여름을 가장 싫어하는 시인이 싫어한다는 표현대신 네 번째로 사랑한다는 말을 쓴 거다. 그렇다면 내게 네 번째로 사랑하는 계절은 가을이겠다. 일교차가 커서 감기에 곧잘 걸리게 하고, 문득문득 쓸쓸함이 느껴지는 시기.
그래서일까. 가을이 되면 넘어갈 수 있을 법한 작은 일에도 쉬이 마음이 상하고 실망이 더해진다.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이 들게 되면 나는 그 감정을 일으킨 사람에게 실망하고 서운해 마음속에서 그 사람에 대한 애정을 지워 버리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일 년 중 유독 이맘 때면 내 마음속에서 지워지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된다.
혹자는 이런 나를 보고, 내게 생채기를 내는 사람들을 스스로 멀리하고 지워내니 인간관계의 스트레스가 적겠다고 부러워하기도 하고, 혹자는 별 것 아닌 일에도 삼진 아웃을 시켜버려 인간관계를 정리하니 차갑다고 평하기도 한다. 나 역시 때로는 내가 정이 없고 차가운 것 같기도 하고, 인간관계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이 종종 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이러한 나의 성향이 단점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일터에서 만나는 이들은 성인도 있지만 중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의 미숙함과 재기 발랄함은 종종 내게 생채기를 남기지만 그렇다고 그네들을 다 쳐낼 수는 없는 법. 끌어안고 끙끙대며 일 년을 버티는 일이 어쩌면 교사로서 나에게 가장 어려운 일일 수 있겠다.
요즘은 학교에서 힘든 업무를 맡아 고군분투하는 나날인데 힘듦이 더해질수록 작은 사건에도 쉬이 마음이 상한다.
'내가 얼마나 힘든 일을 하고 있는데 저렇게 말하지?'
'아니 내가 이렇게 일을 많이 하는데도 이 정도 배려도 안 해준다고?'
세상에서 힘들지 않게 일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 모두가 내 중심적인 생각임을 알면서도 서운해하고 분해한다. 아이들은 마음에서 쉽게 정리해 낼 수 없지만 성인이라면 내가 굳이 상처받고 스트레스받을 필요가 있나 하며 그 사람에 대한 애정과 배려를 거둬야겠다고 다짐한다.
이러다 보니 다른 정리에는 별로 소질이 없는 내가 인간관계는 잘 정리된다. 내게는 불편한 모임이 그래서 별로 없고, 내 주변에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편이다. 그런 사람들이 생기면 나는 마음속에서 정리하고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기에 나에게 다들 쉬이 다시 다가오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나 정말 괜찮은 걸까? 그리고 이건 정말 쿨한 걸까? 문득, 이런 나의 성향이 내 안의 실망이나 서운함과 같은 부정적 감정에 대한 회피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편하고 서운한 감정을 조곤조곤 말해 볼 수도 있고, 우르르르 화를 낼 수도 있는데, 참을 수 있을 만큼 참아보고 아니다 싶으면 회피해 버리는 나는 어쩌면 부정적 감정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 비겁해진 것은 아닐까.
무더웠던 여름은 요란하게 사라졌다. 여름이 떠나면서 무자비한 인사를 보낸 것처럼 내가 진심으로 보냈던 애정이 무시당한 기분이 들었다면 진심으로 화를 내보는 것은 어떨까. 아니라면 그네들을 이해해 보는 시도를 해보는 것은? 타인이 내게 보내온 실망과 서운함을 잘 포장해 낼 방법을 찾아보고 싶다. 화낸 뒤의 어색함을 두려워하지 말고, 내게 상처 주는 것을 무서워하지 말고 부정적 감정이 주는 상처도 나의 내일로 건너가는 다리를 만들어주는 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렇게 나아가보고 싶다. 지난했던 무더위는 선선한 바람으로 놀랍게도 잊혔다. 그렇다면 나의 부정적 감정을 읽고 내가 도망치지 않고 맞선다면, 새로운 계절로 나아갈 수도 있을 것 같다.
무더위에도 쓰러지지 않고 열매를 맺으려 노력했던 각종 채소들은 무더위 덕에 못난 모양이 되어 상품가치가 많이 떨어졌다는 뉴스를 봤다. 하지만 가치란 모양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닐 거다. 씩씩하고 담대하게 더위와 싸워왔던 그네들처럼 이번 가을엔 나도 그런 노력을 해보고 싶다. 그런 노력이 쌓여 이번 가을엔 나에게 어떤 열매가 찾아올지 기대해보고 싶다.
<@ 표지사진은 도서관 갤러리에 있던 그림.
우리,지금 여기 oil canvas.2024.
수국과 고슴도치 나비라니 안 어울리는 생명체들의 조화가 문득 아름답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