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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쟁이 Jun 13. 2023

나를 찾아줘


  잘 하던 대화를 멈추고 혼자가 된 순간. 정말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었는데 그 웃음은 온데간데없고 힘 없이 휴대폰 화면만 매만질 때. 그러다 갑자기 머리를 비집고 불안한 생각이 자리 잡혀서는 거기에 몰두하다가 가지를 뻗는 그 생각에 잡아먹힐 때. 아무도, 아무것도 곁에 없어서 어디로 손을 뻗어서 무엇을 잡아야 할지도 모르겠을 때. 이게 우울인가? 싶은 생각도 안 들게 이미 너는 우울해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고, 기지개를 켜고, 밖에 나가 좀 걷다가 이제 괜찮나? 싶어서 집에 들어와서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우면 또 시작. 그렇게 하면 나아진다고 해서 그렇게 했는데, 달라지는 건 오직 그 순간뿐이라 도대체가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모르게 되겠지. 진즉에 표정을 잃은 얼굴 대신에 머릿속이 잔뜩 찌그러져서 뭐든 다 귀찮고, 무감각하고, 그래서 네가 나빴고, 다 너 잘못이고,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싫다가 애꿎은 부모님에게 화를 내거나, 미친 듯이 뭘 먹거나 할지도 모르겠다.



  멈출 줄 아는 사람만 멈출 수 있는 이 굴레에 빠졌다면, 일단은 그 마음과 생각들을 모아두자. 그리고 나에게, 어제 사실 이랬다고, 너무 힘들었다고 말해줘. 우린 어제도 똑같은 주제, 똑같은 단어, 똑같은 기분으로 대화했지만 너는 늘 기분이 새로울 거고, 나는 그런 네가 늘 안쓰러울 거고. 그러니까 누구 하나 그 대화를 지루해하지 않을 거야. 꼭 집 밖을 나서야만 우울에서 벗어나는 것도 아니잖아. 우울이 안팎 따지고 들어온 적 있던?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서 나를 불러. 혹시 아니, 내가 너의 도라에몽일지도. 내 하루도 참 다사다난해서 말이야. 이야기 주머니에서 뭐라도 꺼내 읊어줄게. 그리고 또 내가 한 유머 하잖아? 재미없는 것도 재미있게 만들어줄게. 그니까 나 없는 동안은 그런 감정이나 생각들 잘 쌓아두고 있어. 혹시 유독 어떤 하루는 우울이 파도 같으면 앞에 대고 딱 그래. “나 이따가 OOO이랑 전화할 거거든..! 하면서 다 풀어버릴 거야!”라고.



  이제 다 됐다. 다 적은 것 같긴 한데... 뭐가 더 남았다면 이따 또 말해줘. 어제처럼 오늘도, 내일도 또 봐 우리. 어느 순간부터 날 찾지 않게 되면, 그런데 종종 너의 밝은 소식이 들리면 난 그때 안심할게. 근데 그렇다고 아예 안 찾으면 좀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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