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거하게 차려먹은 날이었다.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바로 매트에 몸을 눕혔다. 밥을 먹고 바로 눕게 되면 꼭 떠오르는 게 있다. 역류성 식도염. 그 병명이 머리에 맴도니 괜히 목구멍 안 깊숙한 곳이 쓰려오는 것 같다. 하지만 늘 그렇듯 몸은 이미 침구와 한 몸이다. 누워서 떡 먹기의 속뜻처럼, 이 과정은 당장이라도 체할 것 같은 게 아니라 무척이나 쉬운 것이었다.
손가락으로 하릴없이 유튜브를 새로고침했다. 최근에 생긴 숏츠(1분 정도 되는 짧은 영상 콘텐츠)의 위력은 강력했다. 짧고 간결하면서 충분히 자극적인 영상. 만약 이번 게 재미없더라도 바로 다음 영상을 보면 되기 때문에 소비 속도도 빠르다. 이 때문에 취미생활이 뭐냐고 묻는 질문을 받으면 요즘은 누워서 유튜브 보는 거라 말한다.
그런데 알고리즘의 바다라고 표현하지만 매번 비슷한 종류의 영상들뿐인, 실은 집 앞 우물 정도밖에 안되는 그 작고 협소한 영역에서 파도에 휩쓸리듯 이리저리 떠다니는 것이 과연 나만의 취미생활이려나. 그렇다면 내가 주도하는 취미란 과연 무엇일까. 충격적이게도 나는 이런 심도 있는 고민마저 숏츠를 보면서 하고 있었다.
밥 먹고 매트에 누워있으니 등 따시고 배부른, 숙면의 조건이 완성됐다. 제아무리 유튜브라도 수면욕을 이길 순 없다. 곧이어 두 눈이 스르륵 감겨왔다. 이대로 잠들면 베개를 침바다로 만들 만큼 달콤한 잠은 저절로 확정이다. 천천히 눈꺼풀로 커튼을 치려는데 그 순간 귀 옆에서 전화 알림이 크게 울렸다. 반쯤 감긴 눈을 뜰 때 특유의 눈가 고통이 느껴졌다. ‘엄마인가.’ 하지만 우리 모자에겐 아침과 저녁마다 안부를 묻는 대신 밤 열시 언저리에는 전화를 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 그런데 그 시간에 전화가 온 것이다.
전화를 받으니 대뜸 웬 소녀의 음성이 들렸다. 자기가 얼마 전에 뭘 샀는데 그게 무엇인지 맞춰보란다. 당황스럽다. 이 소녀는 누구고 게다가 뜬금없이 자신이 산 물건을 맞춰보라니. 얘야, 너희 부모님 좀 바꿔줄래?라는 물음이 아직 머리에 머물러 있을 때 소녀는 그 틈을 이용해 또다시 맞춰보라며 재차 물어왔다. 나는 다른 상황 파악은 안 돼도 질문 사이마다 들뜬 웃음이 섞여 있는 걸 보니 소녀가 그 무언가를 꽤 마음에 들어 하고 있다는 건 잘 알 수 있었다. 순수한 소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지만 괜히 사랑스러웠다.
소녀의 순수함에 부응하고 싶었다. 질문하려던 걸 접어두고 나는 잠시 고민하는 척 “음…” 하다가 이내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러자 소녀는 자신이 디지털 피아노를 샀다며 손을 뒤로해 숨긴 것을 자랑하듯이 정답을 공개했다. 생각보다 값이 나가는 물건이라 놀랐다. 하지만 그런 게 뭐가 중요한가 싶어 왜 피아노를 샀는지 묻자 예전부터 피아노가 그렇게 치고 싶었단다. 지금은 비록 젓가락 행진곡 밖에 칠 수 없지만 신경 쓰지 않고 매일매일 조금씩 즐기면서 할 거라는 포부도 함께 전했다.
자기만의 취미를 가진 사람은 그렇게 웃었다. 누구나 소녀가 될 수 있고, 누구나 순수하게 웃을 수 있다. 피아노 흰색과 검은색 건반 위를 서툰 스탭으로 옮겨 다니며 춤을 추는 소녀. 빛이 나는 그 모습에 내가 반사되어 보였다. 여태까지 취미를 챙길 때 내 얼굴과 그 위에 서린 웃음을 거울로 보지도, 옆에 서서 소리로 듣지도 못했기에 모르고 살아왔다. 잔잔하고 평온하다 여겼지만 사실 무표정에 가까웠을 표정. 자연스럽지 않은, 단순한 자극에 끌려올려진 입꼬리. 그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무덤까지 모르고 갈 것을 소녀가 내게 알려주었다.
한참 자랑을 하던 소녀는 피아노에 헤드셋 연결이 가능해서 밤에도 칠 수 있으니 몇 곡 연주하고 자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자랑의 정석이다. 자고로 자랑이란 남들이 무슨 말을 하든 내가 이만큼이나 좋아한다고 동네방네 소리치는 재미 아닌가. 그 탓에 나는 결국 고맙다는 말도 전하지 못한 채로 전화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