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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ce Choi Jun 05. 2020

두 달여의 재택근무를 마치며

꿀빠는 줄로 알았지, 이리 일을 열심히 할줄이야

오늘은 6월 첫 째주의 마지막 영업일, 금요일 저녁이다.

오늘이 특별한 이유는 지난 2달간의 재택근무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날이다.


코로나-19라는 살면서 어떻게 이런일이 발생할 수 있지?라는 전염병이 생기면서 금융권에 속해있던 회사는 바로 재택근무라는 새로운 업무환경을 빠르게 제공해주었다. 초반엔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누가 들어가고 누가 나와야하나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룰도 규정도 없이 헤메던 시간이 있었다. 확실히 기업이 규모가 있어야 안정적이구나라고 느끼게 한 것이, 바로 이런 체계들을 하루하루 잡아가고 수정하면서 직원들이 헤메지 않고 안내해줄 수 있는 추진력이지 않나 싶다. 핵심업무 부서만 분산근무를 하다가 날로 심해지는 확진자 수에 모든 부서가 10%, 20%, ... 그리고 필수적으로 50% 이상을 돌아가면서 시행하던 나날이 있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내 차례가 오길 바라며 팀원들과 사이좋게 요일별 차수를 정해가며 재택근무를 경험해봤던 것 같다.


로지스틱 모형의 누적분포 그래프 예시


일반적으로 확산을 예측하는 모형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로지스틱 모형(logistic model)'의 그래프를 보면 초반에 감염자 수가 급증하다가 어느 시점을 지나면 신규 감염자 수가 줄어들면서 누적 감염자수의 증가폭이 현저히 줄어드는 형태를 띈다. 신규 확진자 수가 증가폭이 크지 않고 일정하게 나오는 그 시기즈음에 나는 아기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사회적 거리는 필수적으로 실천하고 있으나 회사에서는 재택근무는 필수가 아닌 팀별 재량에 따라 선택적으로 진행하는 분위기였다.


아침에 따뜻한 라떼가 하루 시작의 큰 기쁨이었던 나에게, 임신이란 사실은 바로 따뜻한 우유(스팀라떼)로 메뉴를 바꾸게 한 계기가 되었다. (물론 라떼만큼 행복을 가져다 주진 못했지만...) 임신한 나에게 빈 속의 우유는 아무리 따뜻하더라도 속을 매우 비릿하고 울렁거리게 만들어주었다. 한껏 웅끄린 몸과 찌뿌린 인상으로 단번에 나의 컨디션이 팀에 공유되면서 바로 재택근무가 시작된 것이었다. 그 시작이 4월 둘째주 화요일 부터였다.




두 달여의 시간은 재택근무라는 것이 무엇인지 완벽하게 적응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에 대한 기억을 남기고 싶어 브런치에 공유하려 한다. (생각나면 계속 업데이트 해야겠다.)


1. 회사에서의 Up&Down이 없어진다.

회사에 들어가기 전까지 나의 20대는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차고 에너지 넘쳤다고 생각한다. 나만큼 놀기 좋아하고 마시기 좋아하고 체력도 받쳐주는 사람은 보기 힘들었으니까... 그래서 아직도 회사에서 맘이 맞는 사람들을 만나면 가끔 흥이 주체가 안될 때가 있다. 함께 힘들고 즐거운 회사 라이프를 공유하는 것도 꽤나 즐거운 일이었는데 이런 쏠쏠한 재미가 하루아침에 없어져서 처음엔 참 심심했다. '이 사람들 지금 시간이면 커피마시고 있겠구나... 오늘은 무슨 일들이 있었을까.. 지난번에 먹었다던 그 음식은 맛있었나..' 혼자 집에서 자리비움으로 떠있는 메신저를 보며 궁금해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다 어느날 팀장님이 과일 주스를 팀에 쏘신다는 카톡을 보고 벚꽃이(태명ㅋㅋ)가 과일주스에 꽃혔던 날이 있다. 그 날 바로 온라인에서 핸드믹서를 결제하여 돈만 쓰고 한번도 해먹지 않은 헤프닝도 있다.


반대로 일을 하다보면 꽤나 예민한 편인데 이럴 때 발생할 수 있는 사람과의 감정적인 마찰들이 참으로 줄어들었다. 사무실에서 내 자리는 외부 고객과 고객상담을 하시는 분들과 자리가 매우 가까워 한 시도 조용하지 않아 데이터work 집중이 참 힘들다. 이럴 때 옆 팀원과 업무 요건을 정리하다가 의견 불일치가 발생하거나 급한 수명업무 발생, 또는 일이 수월하게 진행이 되지 않을 때 등 다양한 downside적 요소들이 참 힘든데, 재택근무는 상대적으로 덜 민감하게 다가왔다. 몸이 멀리 떨어져있다보니 정말 간결하고 핵심적인 업무내용만 공유하면서 불필요한 감정적 요소들이 업무진행에서 배제된다. 이와 같은 상황들을 종합적으로 보았을 때, 재택근무를 하는 9-6시 동안은 참 고요하고 평온한 상태에서 감정의 기복없이 일을 했구나.. 그래서 특별한 재미는 없었으나 특별히 힘든 적도 없이 시간이 참 잘 갔다^^ 고로 행복했다.



2. 생각보다 놀 수 없다. 그리고 놀고 싶은 생각이 줄어든다.

나의 작업공간은 서재가 아닌 부엌 내 6인용 식탁 위였다. 서재는 3분할이 가능한 슈퍼 와이드 모니터가 있었지만 나는 거실 베란다를 통해 파란 하늘과 산이 내려다보이는 환한 부엌이 더 좋았다. 부엌에 작업공간을 만드니 얼마나 업무 효율이 좋은지 아는가? 먼저 잔잔한 화이트 노이즈가 업무 집중에 효과적이며 지루할 때는 블루투스 스피커를 활용한 나만의 카페로 변신할 수 있었다. 출출하거나 목마를 때마다 언제든지 꺼내먹을 수 있는 간식들과 과일, 물과 음료들이 가득하여 하루종일 배가 고프거나 당이 떨어지는 일이 없었다. 딱 한번 점심을 너무 간단히 때우다가 배가 고팠던 오후엔 냉동실에서 감자튀김을 즉석에서 튀겨 케첩과 찍어먹으면서 업무 메일을 쓴 적이 있었는데 아직도 참 즐거운 기억이었다.


이런 업무환경은 오히려 내 스스로 집중과 효율을 더 높이게 되면서 데이터 분석을 하거나 공식적인 문서(품의서)를 작성하는데 있어 매우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었다. 실제로 그 사이에 모형도 1개 개발을 하였고, 몇 억짜리 규모가 큰 예산품의도 4개정도 작성하여 부서합의와 감시/감사실도 통과하였다. 사무실이었으면 한 문서당 초안작업만 2~3일정도 소요되었을 텐데, 재택근무는 하루를 온전히 집중하여 끝낼 수 있었으니 그 마저도 참 즐거운 작업이었다고 기억한다. 그 동안 다른 팀원이나 부서, 외부직원분들과 함께 의사소통하는 일들이 많았는데 회의 참석을 못하다보니 메신저나 휴대폰 전화를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결코 자리를 비울 수 없었고, 비우지도 못했다. 왜냐면 누가 날 자꾸 찾으니까!!! 그래도 뒤돌아보면 그만큼 내 존재가 없진 않다는 것에 감사하기도 했고(ㅎㅎㅎ) 일이 없어서 심심한 것보다는 훨씬 알찬 시간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퇴근 후에 사람들을 만나려면 만날 수도 있었겠으나, 자택이 서울의 약간 서쪽에 치우쳐있는 상황에서 임신 초기의 상태로 코로나 사태에 밖에 나갈 수가 없었다. 놀고는 싶었으나 모두가 잘~ 놀지는 못하는 시기였으니 어떻게 보면 임신 초기에 덜 억울했던 시간이었다고 본다. 세상의 재미로부터 다같이 멀어지면서 놀고싶은 생각이 줄었다. 정말 집이랑 동네만 있었다.



3. 사람이 더 업무에 자신감이 생기고 나이스해진다.

"네~ 안녕하세요, ㅇㅇ팀 ㅇㅇㅇ입니다."

같은 문장이지만 오픈된 사무실에서 하는 한 마디와 자택에서 휴대폰으로 받는 한 마디에서 나의 자신감과 굳은 의지가 달라졌다. 재택근무는 나의 근태를 직접적으로 관리하는 상대가 없다보니 더욱 상대의 문의를 꼭 해결해주어야 겠다는 불타는 의지가 샘솟는다. 그리고 직접 만나서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미안함에 설명을 더 친절하게 하거나 메일을 공유하면서 더 알아보기 쉽고 명확한 말투로 전달하려 노력했다. 혹시나 타이핑한 말투가 딱딱하거나 기분나쁘게 들리지 않을까 싶어 ^^, :), ..., ~~! 와 같은 특수문자 사용이 좀 늘은 것 같다. 이런 변한 나의 모습은 나의 업무에도 더욱 자신감이 생기면서 한번 더 꼼꼼하게 챙겨보게 되고 주변 팀원들을 더 챙기게 되는 것 같다. 가끔은 '나 여기 회사 밖이지만 근무중이에요~~'를 알리고 싶어 괜한 전체쪽지를 돌려 안부를 묻기도 했다. 스스로 나이스한 사람이 되가는 기분이었다.



4. 건강을 더 챙기는 시간이었다.

재택근무의 하루 일과는 다음과 같다.


  - 8시 좀 넘어서 기상 : 임산부에게 충분한 휴식은 필수다!

  - 8시 40분부터 컴퓨터 부팅 시작 : 사과와 요구르트로 아침을 먹으며 출근이 동시에 가능하다!

  - 9시 ~ 12시 : 오전에 하기 좋은 근무로 하루 시작!

  - 12시 ~ 13시 : 집 근처 또는 가까운 동네에서 그날 먹고싶은 점심메뉴를 먹고 아파트 한바퀴 꼭 산책!

  - 13시 ~ 18시 20분 : 오후에 하기 좋은 근무로 하루 마무리!

  - 18시 30분 ~ 19시 30분 : 집에서 건강하고 따끈한 밥을 직접 해먹는 시간!

  - 19시 30분 이후 : 저녁 아파트 한 바퀴 산책 한번 더! 그리고 나만의 개인시간.

  - 11시 30분 : 남편과 서로에 대해 하루 중 고마운 일에 대해 공유하고 꿈나라로!


규칙적인 시간 스케줄로 업무와 식사, 산책을 하게 되었고 이는 몸뿐만 아니라 나의 정신적 건강에도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위 스케줄은 2달 평일동안 단 하루도 어기지 않고 진행된 나의 타임라인이다. 참으로 임신 초기를 잘~ 지내지 않았나 싶다.



5. 남편과 가족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재택근무를 마치며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업무 시간 중 남는 시간에 내 공부를 더 해볼걸 하는 아쉬움이 든다. 사무실에서는 짬이 나면 인터넷으로 논문 등을 찾아보거나 시장 규제 확인이나 코딩공부 등을 했었는데. 사실 이번 재택근무가 앞으로 회사에 어떻게 자리를 잡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참으로 나에게 유익하고 건강하고 기회가 된다면 더 잘해보고 싶은 기회다.


재택근무 더 하고싶다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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