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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망나비 Oct 05. 2021

락다운이 끝나고

갑자기 강력 봉쇄가 끝났다. 그 사이에 그럴지도 모른다는 얘기들이 돌긴 했지만 하도 손바닥 뒤집듯 하는 벳남 정부의 정책 때문에 다들 믿지 않는 눈치였었다. 그런데 정말 끝났다. 개 산책도, 식료품 쇼핑도 못하게 해서 몇 날 며칠이고 집에 처박혀 있다가 감개무량하게도 출근을 하게 된 것이다.


베트남 정부의 락다운 정책이 전혀 들어 먹히지 않았음은 몇 달 동안 모두에게 증명이 되었다. 쌍욕이 잇새로 흘러나왔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도대체 누굴 욕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고. 그러는 와중에도 나와 남편은 백신 2차 접종을 마쳤다. 백신앱인가 하는 것을 다운로드하고 초록색이 뜨는 것을 보자 남편은 콧노래가 나오는 모양이었다. 나는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비즈니스가 정상화되지 않는 한 하루하루가 노심초사다. 그나마 요식업, 제조업, 미용업에 종사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말이다. 사업을 완전히 접어야 하는 사정에 봉착한 사람들도 많은 듯하다.


강력 봉쇄가 끝나면서 몇 가지 감회가 있었는데, 첫 번째는, 갑자기 내일부터 출근을 하게 된다니까 한편으로는 개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동안의 루틴이 깨지는 것이 언짢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사람이란 무엇에든 적응하는 동물이다. 그동안 석 달 넘게 갇혀 지내면서 나름의 루틴을 만든 것이다. 6시 30분 기상. 그림 그리고(연필화에 꽂혔다) 아침 식사. 윌라 오디오북 들으며 집안 청소. 윌라 오디오북 들으며 주차장 걷거나 계단 오르기. 샤워. 재택 업무 준비. 점심 식사.. 근무 시작... 등으로 정말 평범하기 그지없는 하루 일과인데 그 사이 습관이 되어 버린 것이다. 출근을 하게 되면 새로운 루틴을 쌓아야 한다.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는 것뿐인데도 뭔가 얇은 막을 찢고 나가야 할 것 같은 압박이 느껴졌다. 나도 이럴진대 직원들은 어떻겠나. 직원들은 자기가 알아서 선택할 수 있다. 재택을 하든 출근을 하든 거기에 의무는 없다. 결과적으로 나를 포함 세명이 상시 출근을 하게 되었다. 시집살이를 하고 있는 여직원 한 명과 수다 떨기를 좋아하는 남자 직원 한 명. 오손도손 좋은 조합이다.


 번째는 당연히 운동에 관련된 것이다. 락다운 기간 동안 아파트 계단을 오르다가 아파트 주차장으로 범위를 넓혔다. 꽃분홍 운동복을 입고 나갔더니 경비들이 쫓아와 말렸다. 주차장을 어슬렁 거리면  된다는 것이다. 다음날부터  운동복을 입고 나갔다. 아무도 쫓아오지 않았다. 봉쇄가 풀린  아침 6. 당장 자전거를 끌고 근처로 나갔다. 싱그러운 아침 공기와 함께 자유를 만끽하는 사람들로 이미 거리가 분주했다. 조깅을 하는 사람, 걷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 체조를 하는 사람. 다들 이렇게들 운동을 좋아했었단 말인가. 그동안 어떻게들 참았나. 가여운 사람들. 나도 그들 중에 하나가 되어 자전거를 달렸다. 벌써 며칠  일이라 가물거리지만 틀림없이 나는 기분 짱이었을 것이다.


세 번째는 책 읽기와 글쓰기에 관한 것이다. 책을 쌓아두었지만 쉽게 읽을 수 없었다. 나는 놀랍도록 자주 우울해질 수 있었다. 우울하도록 놔두었다면 말이다. 어느 날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의 거의 마지막 부분을 읽는데 눈물이 쏟아졌다. 늙음과 죽음에 관한 저자의 단상이 소름 끼치게 나를 옭아매었고 갑자기 모든 게 두려워졌다. 그게 아마 코로나 블루일 것이다. 책을 덮었다. 틀림없이 내게 닥칠 현실일 테지만 적어도 지금 이 상황에서는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될 수 있으면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들을 접하면서 현실을 잊고 싶었다. '몸의 일기'라는 책도 첫 페이지를 열었다가 '너는 지금 나의 장례식에서 돌아오고 있겠지...'라던가 하는 문장을  읽자마나 얼른 덮었다. 죽음과 관련된 건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 그러니 글쓰기도 마찬가지였다. 노트북을 열고 문장을 써봤댔자 현재의 심정을 토로하는 우울한 일기가 될 게 뻔했다. 늙어가는 얼굴을 마주하기 싫어 거울보기를 피하듯 책 읽기와 글쓰기는 되도록 멀리 두었다. 대신 윌라 오디오북을 들었다. 히사이시 게이고의 미스터리물을 주로 들었다. 역시 살인과 살인자가 나오지만 포커스는 사건을 풀어가는 데 있다. 범인 잡는 데 치중하느라 잠시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락다운이 풀린 지 채 일주일이 안되었지만 놀랍도록 빠르게 일상으로 복귀했다. 그래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나 힘들었었다고. 힘든 상황에서는 힘들다고 말할 수가 없다. 욕지기부터 쏟아지고 잘못하다간 눈물바람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모든 게 정상화되려면 멀었다. 그래도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훨씬 낫다.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하나도 감사하지 않다. 이런 상황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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