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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망나비 Oct 11. 2021

양쪽 유방 다 제거해 주세요

닥치고 지지한다. 

T는 서른 살이다. 약 사 년 전쯤 내가 일하던 회사에 입사하면서 만났다. 영국에서 약학을 공부하고 돌아와서 국내 제약회사에서 이년 여 일하다가 젠장, 하는 마음으로 거길 관두고 우리 회사로 왔다. 전공과 관련 없는 일이었지만 숨이 턱턱 막히는 앞뒤 꽉 막힌 곳에서 일하느니 전공 버리는 게 낫다고 했다. 


같이 몇 년을 일해 보니 참으로 괜찮은 친구였다. 부지런하고 정확했다. 게다가 똑똑하기까지 했다. 가장 맘에 드는 부분은 뭔가 사리에 안 맞을 때 따박따박 질문을 한다는 것이었다. 정말 이해가 갈 때는 네네,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을 때는 내 방문을 노크했다. 그게 간혹 급여에 관한 것일 때도 있고 업무량에 관한 것일 때도 있지만 언제나 상식선을 넘어서지 않았다. 


2년 전에 그녀는 유방암 수술을 했다. 한쪽 유방을 암세포와 함께 제거한 것이다. 수술을 마치고 휴식기를 가진 뒤 돌아와서도 전과 다름없이 열심히 일했고 유방암 환자들과의 연대 활동도 열심히 했다. 재발이 되지는 않을까 하여 정기검진도 부지런히 받았다. 정기검진을 받는 동안 그녀는 나머지 한쪽 유방도 제거해 달라고 의사들을 졸랐지만 베트남 의사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미래의 남편을 위해 안된다는 것이었다. 미혼인 여자가 이유 없이 양쪽 유방을 다 제거한 일은 아직 없고(베트남에서는 전례 없는 일이라고 했다) 암세포가 있다는 게 확인이 되면 해 준다는 것이었다. 그 얘길 들으면서 쌍욕이 튀어나올 뻔 한 걸 참았다. 일 년 내내 졸랐지만 성사되지 않는 듯했다. (그들은 앤젤리나 졸리의 유방 제거술을 들었는가 못 들었는가!!!!!!!!!!!)


최근 검사에서 그녀의 한쪽 유방과 겨드랑이에서 세 개의 혹이 발견되었고 그중 하나는 제거를 해야 한다는 의사의 의견이 있었다. 그녀는 또 설득에 나섰다. 양 쪽 유방을 다 제거해 달라. 의사의 대답은 이번에도 No였다. 그녀는 결국 남편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 남편이 괜찮다고 했다고. 의사들이 그게 거짓이라는 걸 몰랐는지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결국 그녀는 유방을 절제하기 위해 이틀 있다가 입원을 한다. 


유방 달린 채로 결혼해서 남편을 만족시키는 게 암으로 죽는 것보다는 중헌 일이냐,라고 의사들에게 따져보아야 아무 의미 없는 일이다. 내가 당사자도 아니니 나는 그저 묵묵히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다. 나는 닥치고 그녀를 지지할 뿐이다. 


세상에 암환자가 많다는 건 알고 있다. 세상의 그 많은 암환자들 중 그녀가 나의 근거리에 있어서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내가 뭘 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한국에 가서 수술을 하련? 한국은 미래의 남편의 유방에 대한 취향 같은 건 안 물어볼 거야. 비용은 내가 보탤케. 물론 양국이 다 펜대믹으로 복잡한 상황인 데다가 보호자도 따라나서야 하고 비용도 훨씬 많이 든다. 그녀는 유방 제거술은 그렇게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수술이 아닌 데다 가족이 있는 곳이 편하다며 한국행은 거절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그녀가 없는 동안 그녀의 업무를 대신하는 것뿐이다. 


그녀는 병원에 있는 동안에도 직원들끼리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는 온라인 북클럽에 조인하겠다고 했다. 이번 달 책은 하필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이다. 진짜 참여할 수 있겠어? 내가 물었을 때 그녀는 '이 책 재밌어. 나 참여할 거야. 병원에 있는 동안 지루할 테니까.'라고 답했다. 그녀의 태연함에 마음속으로 경의를 표했다. 나는 그녀가 혼자 있을 때에는 어떤지, 잠은 잘 자는지, 혼자 울지는 않는지 잘 모른다. 그저 그녀가 병에 지지 않기 위해 고개를 치켜들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 정도만 알 뿐이다. 어쩔 수 없이, 나라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내가 징징 거리지 않으면서, 삶을 원망하지 않으면서 그녀처럼 쾌활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나는 그녀를 한껏 존경한다. 


그녀는 11월에 보자고 했다. 그래. 꼭 11월에 보자. 

그녀가 한 농담이 떠오른다. '양쪽 다 제거하면 수영장에서 브라 없이 수영할 수 있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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