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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망나비 Oct 24. 2021

돼지가 다스리는 나라

동물농장 by 조지 오웰

락다운 기간 동안 먹고 자고 싸는 일차원적 인간형으로 굳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직원들에게 북클럽을 제안했다. 책을 한 권 정해 읽으면서 일주일에 한 번 줌으로 만나 한 시간가량 토론을 하는 것이다. 물론 의무 참여는 아니다. 원하는 사람만 했으면, 그리고 인원이 너무 많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었는데 아무래도 사장이 제안한 거라서 그런지 억지스럽게 참여한 인원 포함 일곱 명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첫 책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이번 북클럽을 포함하면 세 번째 읽는 셈이었는데, 그 이전과 확연히 달랐다.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이전과 달리 영어 원서로 읽었다는 점. 둘째, 공산국가라고 자처하는 베트남에 살면서 읽었다는 점. 두 가지 조건이 달라졌을 뿐인데 생전 처음 읽는 것처럼 새로웠다. 


<동물농장>은 베트남에서는 금서이다. 수입금지 책이고 서점에서 살 수 없다. 공식적으로는 그렇지만 마음만 먹으면 PDF 다운로드 가능하고, 종이책도 어찌어찌 구할 수는 있다. 우리는 모두 PDF를 다운로드하여 읽기로 했다. 


조지 오웰은 이 책을 2차 세계 대전 기간 중에 썼고 출판은 전쟁이 끝나는 해였던 1945년에 실현되었다. 책을 완성한 후 온갖 출판사에서 거절당한 일화는 유명하다. 책은 출간되자마자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고, 냉전의 시기를 거쳐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지는 그 순간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널리 읽히고 있다.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은 쉽게 오해를 산다. 어려울 것이라는 오해이다. 하지만 읽어본 사람은 안다. 하나도 안 어렵다. 동물들이 주인공이라는 점이 진입 장벽을 낮추는 가장 큰 요소일 것이다. 플롯도 굉장히 심플하다. 어려울 게 하나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책이 가벼운 것은 아니다. 각 챕터마다 해야 할 얘기가 산더미처럼 쌓인다. 


베트남인, 호주인, 아일랜드인, 한국인이 뒤섞인 다국적 멤버의 북클럽에서 어떤 얘기들이 오갔는지에 대해서 얘기하려고 한다. 


가장 특기할 만한 점은 베트남 직원들 모두가 동물농장에 깊이 공감했다는 것이었다. 공감의 수준을 넘어서서 현재 자신들의 나라에서 독재와 기만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얘기하느라고 목소리가 높았다. 사실 외국인으로 살면서 베트남 정부의 행태에 혀를 내두를 때가 많지만 비판은 표면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자국민으로서는 내부적인 것까지 실로 할 얘기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학교 교육, 언론 미디어, 국가 기관의 행정, 특히나 펜대믹 시대를 아우르는 의견들이 한데 모여서 듣는 나로서는 이루 말할 수없이 재미가 있었다. 북클럽의 멤버들은 어쩜 책이 현재 베트남의 현실을 거울처럼 똑같이 보여주느냐면서 작가가 천재가 아니냐고 하나같이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그런 목소리를 일상 속에서 낼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에는 다들 입을 다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행여나 SNS 등을 통해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기라도 하면 게시물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고 게시자들도 의문의 전화나 방문, 감시 등을 받는다고 했다. <동물농장>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현실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소름 돋는 지점이었다. 그런 탓인지 북클럽은 베트남 직원들의 성토의 장이 되었다. 정부 관료들의 행정 때문에 답답했던 속마음을 동물농장 토론 핑계를 대고 맘껏 분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국적을 불문하고 모두가 공감했던 부분이 있었다. 어떠한 이념, 신념이든 그것만이 옳다고 맹목적으로 믿고 따를 경우 수많은 모순이 생겨난다는 점이었다. 맹목적 신념만큼 무서운 것이 있을까. 한 가지 사상을 진리라고 단정하는 순간, 그로부터 발생하는 모순들을 덮기 위해 더한 모순이 생겨난다. 지배자든 피지배자든 자신의 신념에 대한 당위성 때문에 남과 자신을 동시에 속이는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동물농장에서 가장 성실한 노동자인 Boxer는 의심이 가는 많은 일들이 있음에도 '더 열심히 일할 거야' 라며 자신에게 암시를 건다. 동물농장의 지도자인 나폴레옹을 의심하는 것은 곧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폴레옹의 끔찍한 압제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강하게 믿을수록 논리적으로 사고할 수가 없다. 종교적 신념, 정치적 신념 등이 모두 그렇다. 믿음이란 강하면 강할수록..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 결국 몸이 부서져라 일한 Boxer는 부상을 입자 도살장에 팔린다. 팔려갈 때까지도 그는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죽는 순간에는 알았을지 모르겠다. 


이 부분에서 우리 모두는 질문이 생겼다. Boxer가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이 과연 Boxer에게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진실이란 고통스러운 것이다.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진실을 택하는 순간 죽을 고생을 하게 된다. 우리는 진실을 추구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지만 그동안의 노력과 수고가 거짓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때의 정신적 고통과 번민을 피할 수만 있다면 좋은 것이 아닐까? 추악한 면은 보지 않고 좋은 면만 본 채로 신념을 유지한다면 같은 크기의 죽을 고생이라도 정신적으로는 안위를 받지 않겠는가? Boxer가 추악한 진실을 알게 돼서 나폴레옹과 싸웠다고 해 보자. 그는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을까? 부지했더라도 과연 나폴레옹을 몰아내고 더 나은 지도자를 세웠을까? 그래서 우리의 토론은 자연스럽게 최악의 진실을 선택할 것인가 최선의 거짓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옮겨갔다. 


대답은 한결같이 고통이 따르더라도 진실을 탐구하겠다는 것이었다.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러나 나는 의문에 잠겼다. 과연 그럴까. 우리는 일상에서도 사소한 진실과 거짓의 경계에서 고민하다가 내가 보고 싶은 부분만 보고 안도할 때가 있다. 그것이 정신건강에 좋다는 이유에서이다. 정신 건강을 위해서는 인생의 밝은 면만 보려고 노력하고 긍정적이어야 하며 부정적인 생각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여긴다. 진실이 무엇인가 보다는 내게 유리한 것이 무엇인가가 우선인 것이다. 자꾸 질문하고 의심하고 이면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하면 냉소적이고 음울한 사람이라고 낙인찍히기 쉽다. 그런 캐릭터가 이 책에도 있다. 늙은 당나귀 벤자민이다. 그는 경험이 많은 탓에 나폴레옹을 위시한 압제자들의 술수를 파악하고 있다. 그는 뜨끔할 만큼 현실적인 발언을 하지만 실제로는 나서봐야 득 될 게 없다고 판단한 때문인지 입을 다물고 따라가는 시늉을 하며 산다.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다는 현실도 알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살아있는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동물농장>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을 위협하는 새로운 세력이었던 소비에트 연방을 겨냥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사실은 지금의 현실에 빗대어도 뼈를 때리는 내용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배자들의 행태야 어떠한 이념 체제에서도 같은 식으로 타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 민중이 아둔하면 그들의 타락을 가속화한다는 것을 명확히 한다. 그리고 이래도 저래도 같은 양의 고통을 당해야 한다면 눈을 뜨고 진실을 목도하겠는가 아니면 눈을 감아 외면하겠는가를 묻는다. 나는 여전히 대답하지 못하겠다. 어쩌면 벤자민처럼 알고는 있지만 자포자기한 채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직원들과의 북클럽은 너무 재미가 있었다. 그 이후에 두 명이 떨어져 나가서 다섯 명이 남아 세 번째 책을 읽고 있는 중이다.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건 예상했던 일이다. 사장이 제안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정말로 독서와 토론을 즐기지 않는다면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 Never Let Me Go>이다. 사랑 얘기로 포장되었지만 사실은 쿵쿵거리며 심장을 두드리는 묵직한 이야기이다. 이 책은 서서히 진행되다가 마음이 무너지는 결말로 끝나기 때문에 다 읽고 나면 어떤 속 깊은 얘기들을 나누게 될지 벌써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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