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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망나비 Jan 08. 2022

꼰대란 무엇인가

꼰대에 대한 소소한 연구

오래 동안 알고 지낸 친구 A가 (나보다 열두 살 어린 띠동갑) 최근에 아들 둘을 연년생으로 낳았다. 결혼한 지 2년도 안된 사이 일어난 일이었다. 결혼하기 전에는 아이 없이 살겠다는 의견을 피력하다가 남편 될 이와  실랑이를 하기도 했었는데, 그게 계획대로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계획에 없었던 아이라도 막상 낳고 보니 최선을 다해야 했던지 그녀는 당장 몬테소리 공부를 시작했고 자격증까지 땄다. 인스타그램에는 매일이 멀다 하고 '촉감놀이', '색깔놀이' 등을 하고 있는 한 돌도 안된 아들의 동영상들이 올라왔다. 직장 다닐 때 일도 지독하게 하더니 육아도 참으로 일처럼 한다 싶게 촘촘해 보였다.


그녀와 알게 된 지 10년째가 돼가니, 그녀도 내가 무자녀 결혼생활을 20년 넘게 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어쩌면 그 영향으로 그녀도 무자녀 결혼 생활을 해 볼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결혼 전 부터 남편 될 이가 아이는 세 명은 있어야 된다는 둥의 소리를 해대서 어떻게 그를 설득해야 하냐며 막막해하곤 했었다.


그녀와 내가 공통으로 알고 있는 지인 C가 있는데, 그녀는 이미 초등 자녀를 둘이나 둔 베테랑 엄마였다. 셋째를 낳을까 말까 고민이라면서 나에게 하는 말이

'우리 같이 애 낳으면 어때요? 내가 셋째를 낳을 때 같이 낳아서 길러요. 그렇게 안된다고만 하지 말고. 내 유전자를 받은 2세가 어떻게 생겼는지 너무 궁금하지 않아요? 나는 둘째를 낳으니까 이제 셋째도 낳아보고 싶어 지더라고요. 애를 낳아 보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니까요! 진짜 달라요, 진짜. '  

처음 몇 번을 웃어넘기니, 같이 식사를 하거나 와인을 한 잔 할 때마다 그 소리를 반복했다. 정색을 하지 않으면 멈추지 않을 것 같아서 하루는 부러 화를 냈다. '왜 무자녀로 살겠다는 내 선택에 대해서 그렇게 과소평가해요?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도 선택이듯 그렇게 하지 않는 것도 선택인데, 내가 그냥 재미로 이러고 있는 것 같아요? 다시 한 번만 애를 같이 낳자는 둥 하면 다시는 못 만나요.'


그게 벌써 몇 해 전 일이라, 당시 그 얘기를 A에게 해 주었을 때 결혼 전이었던 A는 혀를 끌끌 찼다. '진짜 애 낳으면 남들 사정에 그렇게 무신경해지나?' 그녀와 나는  C를 있는 힘껏 비웃었었다. 이후로도 그 얘기는 종종 우리 화제에 올라오곤 했었는데 그 기억을 환기할 일이 며칠 전에 A와 전화 통화를 하는 중에 생겼다. 이건 몇 년 전에 C를 비웃었던 A의 말을 거의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A: 그게요, 첫째를 낳아놓고는 이게 이쁜 건지 안 이쁜 건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어떤 엄마들은 'OO야, 사랑한다'라고 막 인스타에 쓰고 그러는데 나는 그게 너무 간지럽고 잘 안 나오더라고요. 근데 근데 근데, 그거 알아요? 날이 갈수록 너무 사랑스러운 거예요. 더구나 둘째가 태어나니까 얘는 나오자마자 너무너무너무 사랑스러운 거예요. 세상에. 나한테서 이렇게 끔찍하게 사랑스러운 게 나오다니. 그런 감정은 느껴본 적이 없어요..... 아, 진짜. 이 감정을 언니도 느꼈음 좋겠다. 아직 모르죠, 이게 뭔지? 아 진짜 안타깝네. 어떻게 설명하지? 이건 진짜 낳아봐야 아는 건데. 한 번 낳아보는 건 어때요? 애를 낳아 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그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있다니까요!! 그럼 내가 무슨 얘기하는 건지 단박에 알아들을 수 있어요!


A의 워딩은 C의 쌍둥이 자매라도 되는 것처럼 판박이여서 팔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그녀의 말이 머릿속에서 며칠을 맴돌았다. C를 비웃었던 일을 애를 낳으면서 다 까먹었나? 진짜 애 낳은 여자의 감정이라는 게 너무 압도적이어서 뇌가 무신경해지는 걸까? 진정으로 유자녀 인생이 무자녀 인생보다 우월하다고 믿고 있는 거겠지? 처음에는 짜증이 났다가 나중에는 진심으로 그 심리가 궁금해졌다. 어딘가에는 여성의 출산 전과 후의 심리와 행태를 비교 분석한 연구논문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건 실로 드라마틱한 변화이기 때문에 반드시 누군가가 연구를 했어야 한다.


그녀들은 어떤 반응을 기대하면서 나에게 출산을 권유했던 것일까? 실제로 그들의 감격스러운 경험에 감화받은 내가 갑자기 임신을 결심하고 애를 낳기를 바랐던 걸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폐경이 언제 올까를 기다리고 있는 나이에 접어들었다는 걸 내 주변의 모두가 알고 있다. 가임기가 끝나가고 있거나 끝난 것이다. 그럼 뭐지? 정말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시간이 지나자 결론은 아무래도 이런 쪽으로 흘러갔다. 내가 그들을 부러워해 주기를 바랐던 건 아닐까 하는 쪽 말이다.


내 조건이라는 건 어쩌면 그런 우월적 감정을 자랑하기에 몹시 타당해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22년째 자발적 무자녀 결혼생활/가임기 지나가고 있음/비벼도 되는 친한 사이. 무자녀 인생이 자발적이 아니라거나 아직 가임기라거나 충분히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그런 얘기를 했다가는 손절당하기 십상이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들은 내가 '어머어머, 너무 부럽다, 증말!'이라고 말해주기를 기대했던 것일 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남들이 자신을 부러워해 주기 바라는 마음이란 굉장히 보편적인 인간 본성이고 나도 심심찮게 그런 경우가 있지 않겠나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그 출산과 육아의 경험이라는 것이 개인적으로 경이로울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을 달고 싶지 않다. 경이로운 마음은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본인에게 좋은 경험이었기 때문에 상대도 무조건 경험해야 한다고 믿어버리는 마음이 새삼 무섭게 느껴졌다. 내가 좋았으니 당신에게도 무조건 좋을 것이다, 라는 생각은 폭력적이다. 그게 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면 실제로 폭력이 된다. 그래서 생기는 갈등이 이 세상천지에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연인, 부모 자녀, 직장동료, 친구 사이에서 종종 생길 수 있는 일들. 그런 일들 때문에 우리는 꼰대 소리만 들어도 재채기가 나올 지경이 되지 않았는가 말이다.


나 말고는 다 꼰대인 것 같지만 생각해 보면 나도 꼰대다. 나랑 같이 일하는 직원들 중 하나는 생선을 안 먹고 다른 하나는 야채를 안 먹는다.

'생선과 야채가 얼매나 맛있는데! 그걸 먹게 되면 먹는 즐거움이 배가 될 텐데! 먹어봐, 먹어봐. 안 먹어 봐서 그래. 먹어보면 생각이 바뀔 거야. 정말 맛있는데 참 안타깝다.'  

그랬더니 생선 안 먹는 그 직원이 입을 틀어막고 말했다.

'I don't envy you.'

그거다! 그렇게 말하면 되는 거였다!


식성 따위를 어찌 출생과 육아에 비교하겠는가마는 폭력적인 생각은 방식이 똑같다. 무릎을 쳤다. 결국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는 일정 정도 꼰대이다. 경험치가 쌓이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 꼰대 성이 짙어지는 것일 뿐일 게다. 그러니 '라떼는 말이야'가 넘치고 넘친다. 경험이 쌓이면 우월감이 같이 쌓이니 어떻게든 표현해야 하는 그 마음 일견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당신의 그 라떼가 하나도 부럽지가 않단 말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각자 도생합시다.


여하간 A와 인연을 끊을 생각은 없다. 종종 연락을 하고 만나기도 할 테다. 틀림없이 아이 얘기만 늘어놓을 테니, 어쩌면 점점 뜸하게 지내게 될 것 같기도 하다. 좀 덜 만나면 될 뿐이지 너는 애 낳더니 왜 그렇게 변했느냐고 타박을 할 생각도 없다. 애가 사춘기에 접어 들어 속을 뒤집어 놓으면 내 속에서 저런 악마가 나왔냐며 하소연할 지도 모르니 그저 세월 가기 기다리면 어떨까 생각도 들고(주변에 저 새끼는 내 새끼 아니라는 사춘기자녀 둔 엄마들도 꽤 있다). C도 지금은 연락 없이 지내지만 언젠가는 다시 수다 한 판 떨 날 오지 않겠나 싶기도 하다. 여전히 타박할 생각은 없다. 다들 자신 인생에 충실하다 보니 그런 것일 뿐. 경험치와 나이가 쌓여가니 자연스레 꼰대가 되어가는 것일 뿐. 그걸 탓하는 건 물이 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냐고 타박하는 것과 무에 다를까 말이다.


그래도 혹시나,  누군가 나한테 자기처럼  낳으라고 하면 대답은 준비되어 있다.

'I don't envy you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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