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까망나비 Feb 25. 2022

이른살에 쓴 첫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

카야는 습지의 오두막에서 혼자 사는 소녀입니다. 카야가 여섯 살때 엄마는 집을 나가 버립니다. 이어서 그녀의 언니 오빠들도 차례로 자기 살 길 찾아 떠나갑니다. 그 모두를 떠나게 한 술주정뱅이 아버지마저도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자 그녀는 완전히 혼자가 되었죠. 습지는 마을로부터도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카야를 도와 줄 친구나 마을 어른들도 없었어요. 어쩌다 마을로 나가는 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카야를 습지소녀라고 부르면서 멸시하곤 했죠. 카야는 배를 타고 나가 낚시를 하거나 조개를 잡아서 혼자 먹고 사는 법을 터득해 나갔어요. 그렇지만 항상 숫자 29 다음에는 뭐가 오는지, 혹시 편지를 받게 되면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까막눈이었어요. 그 때 테이트라는 소년이 나타나요. 사실은 그 소년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카야는 어떻게 해야 친해질수 있는지 몰라서 모른 척 하고 있었는데요 둘 다 습지 생태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라 결국은 친구가 됩니다. 테이트는 카야를 많이 도와주었는데 무엇보다도 글 읽는 법을 가르쳐 주었어요. 과학과 자연에 관한 책도 많이 빌려주었고요. 그들은 말 그대로 솔메이트가 되었고 세월이 흐르면서 우정이 사랑이 되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어요. 그러던 중 테이트는 대학입학을 위해 카야를 떠나 다른 도시로 가게 돼요. 테이트가 돌아올 날을 학수고대했던 카야는 깜깜무소식에 실망합니다. 병을 날 정도로 마음의 상처가 깊어진 카야에게 마침 체이스 앤드류라는 새로운 청년이 다가옵니다. 그는 백인마을에서 최고로 잘 나가는 남자였지요. 카야는 체이스가 자신과 여러 면에서 다르다는 것을 알았지만 너무 외로웠기 때문에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상당히 삼류연애 소설처럼 보이네요. 그건 제 글솜씨가 부족하기 때문일테고요 사실 이 책은 자연과 인간 심리에 대한 묘사가 뛰어나답니다. 무엇보다 소설이 가질수 있는 모든 재미 요소가 다 들어있어요. 자연 예찬, 사랑과 배신, 계급에 대한 질문, 콩가루 가족사, 자수성가, 살인사건, 심장이 쫄깃해지는 법정 공방 등이 다 이 한권안에 들어있다니까요. 게다가 이 복잡해 보이는 요소들이 얼마나 잘 버무려져 있는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된답니다. 300 쪽이 넘는 긴 책인데 몇 페이지 안남은 걸 알게 됐을 때 '벌써? 조금 더 길었으면 좋겠다'라면서 아쉬워 하게 되더라고요. 


놀랐던 건 저자가 이 책을 이른살이 다 되어서 출간을 했고 심지어 본인의 저작 중 첫번째로 쓴 소설이라는 사실이었어요. 그 이상한 사실이 슬프면서도 위로가 되었어요. 저는 박완서 작가님이 마흔살에 처녀작을 출간했다는 걸 위로로 삼았다가 마흔살을 그냥 지나쳐 버리고 말았어요. 소설을 써보고 싶었지만 보통 그러려면 쓸 이야기가 마음에 넘실거리고 있다가 넘쳐 흘러야 한다고들 하던데 저는 그 증상이 없었거든요. 그렇다면 증상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보다가 쉰살을 노려보자고 했었지요. 그마저도 얼마 남지 않자, 이렇게 이른 살에 첫 소설을 썼다는 작가에게서 위안을 얻는 것이지요. 안됐어요. 참 안됐어요. 


이른 살에 첫 소설을 썼다는 이 작가의 이름은 델리아 오웬스인데요, 읽다 보면 느끼게 됩니다. 오웬스 여사는 실로 이 얘기를 오래동안 쌓아 올려서 마침내 쏟아 놓은 것이었겠구나. 이 책 안의 인물들이 마음속에 살아 있어서 자기 얘기를 써달라고 아우성을 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돼요. 서사가 이 정도로는 쌓여 있어야 좋은 책을 쓸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도대체 제 안에는 어떤 이야기가 쌓이고 있는 걸까요?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요, 카야처럼 사는 인생은 어떤 걸까 생각해 봐요. 도시와 떨어져 자연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얘기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통해 보게 되잖아요. 보통은 도시살이에 정나미가 떨어져서 자연에 숨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어요. 카야는 조금 달라요. 습지에서 태어나서 버려졌고 혼자 살아 남아야 했어요. 야생에서 들짐승으로 사는 것과 많이 다르지 않아요. 다르게 사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어요. 저는 세상으로 나가서 더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라고 끊임없이 듣고 배워서인지 갖혀 사는 것에 공포감이 있어요. 제가 아는 사람이 카야처럼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면 혀를 끌끌 찼을 거에요. 문명의 혜택이 없는 곳에서 산다는 것은 뒤쳐진다는 의미이니까요. 실제로 만난다면 그녀는 말도 어눌할테고 상대의 눈도 마주치지 못할거에요. 무례해 보일수도 있고요. 이상해 보일 거에요. 며칠이고 몇 달이고 도무지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는 곳에서 산다는 건 그런 것일테지요. 그 정도의 고독을 감당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하지만 결국 그녀는 습지가 가진 끔찍한 외로움과 아름다움을 다 끌어안고 그걸 자기 일로 만들어요. 습지생태 전문가가 되지요.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습지를 찾아가 그녀를 만납니다. 그녀를 불러내지 않아요. 그럴수 없다는 걸 아니까요. 


저는 카야가 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카야 같은 인물을 만들어낸 오웬스 여사는 되어보고 싶어요. 살아 숨쉬는 설득력 있는 인간을 창조해 낸다는 건 정말 재밌는 일일 것 같아요.  제 살과 뼈와 영혼을 다 불어넣은 분신같은 존재. 그걸 만들게 될 날이 올까요? 그건 매력적인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것과 비슷한 걸까요? 나와 그의 대화는 어떤 내용으로 채워질까요?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나아지고 있어요. 아직까지 소설 비슷한 것도 써보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빠져서 이 글을 시작했던 것에 비하면 매우 건강한 결말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책을 읽으면 좌절과 의욕이 동시에 생겨나니 참 이상한 일입니다. 좌절은 잠시 밀어두고 의욕감을 조금 더 길게 즐겨볼까 해요. 이 생각 저 생각 해 보면서요. 올 해 만큼은 그냥 보내지 말아야겠어요. 항상 이렇다니까요. 많이 늦돼요. 새해 지난지가 한참인데 이제서야 다짐이라니요. 그래도 아직 2월이니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죽음을 생각하는 돼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