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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망나비 May 07. 2022

한국 방문기

병원 편

2020년 2월에 하와이에서 돌아오느라 잠깐 인천 공항을 밟았으니 2년 3개월 만의 방문이었다. 그동안 팬데믹으로 7일 격리니 14일 격리니 하는 바람에 한국을 가는 일은 엄두를 내지 않고 있었다. 드디어 격리 없이 오고 갈 수 있다기에 일주일의 휴가를 한국 방문으로 쓰기로 했다. 


1. 병원 방문기(내시경/보톡스/PCR과 항원검사)

굳이 한국을 가려고 했던 건 위/대장 내시경 때문이었다. 이 나이가 되도록 한 번도 내시경을 받아 본 적이 없다고 하자, 다들 히엑! 하는 숨소리를 내면서 '얼른 받아요!' 라기에 내시경을 해 보기로 마음먹은 지는 오래되었다. 베트남에서도 알아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비용을 보고 마음을 접었다. 나 같은 외국인을 호구로 생각하는 이 나라 병원에서 몇백만 원씩 내고 내시경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한국에 도착한 이튿날, 개인 내과병원을 찾아가 설명을 듣고 속을 비우는 물약을 타 왔다. 대장내시경을 준비하는 과정을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그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항문에서 바람이 나올 때까지 모든 내용물을 빼내야 한다는 것. 그건 참 귀찮은 일이라는 것 정도. 아프거나 견딜 수 없거나 하진 않지만 귀찮고 번거로운 일인 것은 맞다. 검사 결과, 다행히 위나 대장이나 별 문제가 없었지만 대장에서 용종 두 개 떼는 바람에 검사가 끝나고도 하루를 금식해야 했다. 총비용 23만 원 들었다. 호찌민에 있는 외국인 상대하는 병원에 비하면 공짜다. 


보톡스도 한국에서 맞아보기로 했다. 베트남에서 몇 번 해 봤는데 병원마다 비용도 과정도 천차만별. 마포에 있는 피부과를 찾아갔다. 양 턱과 미간에 몇 바늘을 쑤셔 넣었는지 모르겠다. 마취크림 말고 얼음찜질을 선택했다. 바늘에 찔리면 아프긴 매한가지다. 보톡스 약은 가장 저렴한 국산을 선택했다. 독일제와 미제가 있었지만 나는 국산을 믿는다. 슈링크인지 쉬링크 인지도 하면 어떠냐는 제안이 있었지만 시간에 쫓기고 있어서 거절했다. 총비용 15만 원. 호찌민보다 역시 싸다. 젠장. 물론 같이 갔던 친한 언니는, 더 싼데도 많아라고 했음은 물론이다. 


한국에 도착해서 24시간 이내에 해야 하는 PCR은 마포에 있는 선별 검사소에서 했다. 여러 개의 천막으로 구성된 임시 검사소였다. 흰 가운을 입은 여성분이 콧구멍으로 면봉을 밀어 넣고 뇌까지 찌르는 바람에 악, 소리를 내면서 뒤로 물러섰다. 욕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뇌까지 찌르면 어떡해요!'라고 빽 소리를 질렀던가. 덕분에 한 번 더 해야 했다. 이번에는 더 깊이 찌르는 것 같았다. 비용은 공짜. 결과는 음성. 

출국 전에는 간이 항원검사만 하면 돼서 마포의 내과를 찾았다. 영문증명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역시 흰 가운을 입은 남성분이 내 코 깊숙이 면봉을 밀어 넣었다. '이건 콧물 채취하는 검사 아닙니다. 깊이 넣을 거예요.'라는 설명과 함께. 결과는 역시 음성. 비용은 3만 8천 원. 뭘 하든 병원은 호찌민보다 싸다. 


굳이 병원 얘기를 길게 쓰는 이유는 병원의 서비스에 대해 할 말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방문했던 병원들이 죄다 겁나 잘 나가는 곳이었던 걸까? 웬만하면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특히 내과가 그랬는데 덕분에 의사 간호사가 모두 바빴다. 그들의 특징은 거의 랩을 하는 수준으로 말을 빨리 한다는 것이었다. 빨리 끝내고 다음 환자 받아야 하기 때문이리라. 여유 있게 생각해 보고 질문을 하고 싶어도 그럴 짬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불친절했던 것은 아니다. 목소리는 무서우리만치 친절을 가장하고 있었고 심지어 서로 비슷해서 같은 기관에서 이런 식으로 말하라고 교육받은 느낌이었다. 말꼬리를 살짝 올리는 애교스러운 말투인데 톤은 너무 차가워서 '나에게 더 이상 말 걸지 마. 이 정도면 친절하잖아?'라는 뉘앙스가 깔려 있는 듯했다. 사실 이 말투는 어딜 가도 비슷했다. 서점이나 카페에 가도 다들 비슷한 말투를 사용하더라. '이 일을 하는데 내 개인적인 감정을 최대한 사용하지 않겠다'라는 선언처럼 들렸다. 오늘 날씨 좋지 않아요?라는 인사도 건넬 수가 없는 섬찟함이 공기 중에 흘렀다. 로봇하고 마주해도 이보다는 따뜻할 것 같았다. 나라고 별다르랴. 볼일을 마치고 잰걸음으로 다음 행선지로 총총. 


사실 내시경에 대해서는 더 에피소드가 있는데 누가 그런 걸 궁금해하랴 싶어 마무리를 하기로 하고, 다음에는 거의 3년 만에 만난 내 부모님에 대해 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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