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월남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까망나비 Nov 03. 2022

요즘 나는, 에세이

1. 7월에 골프를 시작한 이후로 글쓰기를 거의 하지 못했다. 이렇게 시간이 많이 소비되는 운동인 줄 모르기도 했고, 이렇게 재미있을 줄도 미처 몰랐다. 골프를 시작하라고 귀가 너덜거리도록 들었어도 한 귀로 흘렸던 이유는 첫째, 운동이 안될 것이라는 판단. 둘째, 조그만 공을 쳐서 멀리 보내는 게 재미있을 리가 없다는 생각. 셋째, 몰려다니면서 하는 운동은 나에게 맞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건 여전히 유효). 넷째,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는 운동이라는 점(이것도 유효). 

연습장에서 한 시간가량 숨을 헐떡거리며 땀에 흠뻑 젖어 스윙을 하는 동안, 골프가 운동이 안될 것이라는 판단은 일단 유보했다. 스크린 골프나 필드 플레이는 아직 뭐라고 단정하기 힘들다. 후반으로 갈수록 엄청난 피로를 느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걸 수영이나 달리기와 동급의 운동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당분간은 연습장을 매일 갈 테니 그걸 일단 운동이라고 부르자. 

그리고 조그만 공을 쳐서 멀리 보내는 건 생각보다 신나는 행위였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구기종목은 시도해 볼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이번에 골프공과 씨름을 해 보면서 공, 이라는 물건 자체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클럽의 작은 헤드와 골프공의 접촉면을 탐구하면서 이게 뭐길래 이렇게 집착이 되나 싶었지만 말이다. 잘 맞으면 좋다. 

여전히 탐탁지 않은 부분은 혼자 할 수 없는 운동이라는 점이다. 필드에 나가려면 같이 플레이할 버디가 있어야 한다. 모르는 사람과도 팀을 이루어 플레이를 한다는데, 나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성정과 실력이 안된다. 게다가 시간도 지독히 잡아먹는다. 빨리 잘하고 싶은 마음에 연습도 매일 하고, 필드에 나가려면 하루를 완전히 빼야 하니 달리기나 수영에 비해서 얼마나 소모적인가 말이다. 돈이 많이 든다는 점은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여하간 시작한 이상 무르기는 힘들어졌다. 손가락에 굳은살이 생겼고, 새끼손가락의 고통도 대강 아물어가고 있다. 등과 옆구리 통증도 이제는 견딜만하고 말이다. 고통을 견뎌내 가며 운동을 하게 되다니 별일은 별일이다. 



2. 그러한 와중에 시간은 흘러 11월이 닥쳤다. 믿을 수가 없다. 올 한 해가 끝나간다는 것이. 팬데믹이 지나가면 대강 좀 순조로워지리라는 기대는 그냥 기대에서 그치고 말 것인가. 온 세계가 뒤숭숭한 느낌이다. 뉴스를 워낙 보고 듣지 않는 탓에 구체적으로 아는 건 없지만 뭔가 전 세계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있는 느낌이랄까. 남의 나라 살고 있으니 사실 대부분의 이슈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는데도.. 그렇다. 세계 평화는 도래할 것인가. 인류는 평안을 누리게 될 것인가. 내년에 대한 희망은 가져도 될 것인가. 


3. 혼자 있는 시간에 책을 읽는 일은 점점 줄고 있다. 매일 책을 읽는 일이 업무에 포함되어 있어 그렇기도 하지만 골프, 팟빵, 넷플릭스에 밀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Penguin books에서 출판한 단편들 중 Yoshida Kenko의 'The Cup of Sake Beneath the Cherry Trees'라는 책을 발견했다. 나름 유명했던가 본데 나는 몰랐다. 찾아보니 일본의 불교 승려라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700년도 더 전에 살던 사람인데, 무릎을 치게 하는 대목들이 있어서 뭉클했다. 한 부분은 발췌해서 오랫동안 연락 안고 지내는 지인에게 보내고 싶어졌다. 그러면서 우리 다시 만나면 안 돼요?라고 묻고 싶다. 아직 보내지는 않았고 아마 안 보내고 말겠지만 말이다. 내게 진짜 친구란 이런 사람인데... 찾기 힘들다. 없다.


What happiness to sit in intimate conversation with someone of like mind, warmed by candid discussion of the amusing and fleeting ways of this world... but such a friend is hard to find, and instead you sit there doing your best to fit in with whatever the other is saying, feeling deeply alone. 

   There is some pleasure to be had from agreeing with the other in general talk that interests you both, but it's better if he takes a slightly different position from yours. 'No, I can't agree with that, ' you'll say to each other combatively, and you'll fall into arguing the matter out. This sort of lively discussion is a pleasant way to pass the idle hours, but in fact most people tend to grumble about things different from oneself, and though you can put up with the usual broing platitudes, such men are far indeed from the true friend after your own heart, and leave you feeling quite forlorn. 



4. 오랜만에 20살 막 넘은 직원들이랑 밥도 먹고 술도 마셨는데, 새삼, 내가 진짜 늙긴 하는가 보다 싶었다. 어이, 어이 그건 네가 어려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고...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서 입을 틀어막아야 하는 심정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들이 뭐라고 했건 나 너무 못됐다. 나 스무 살 때 확신의 화신이 있다면 그게 나였다. 모든 게 너무 명확해 보였고, 그 순간의 감정과 판단은 영원히 유효할 것 같았다. 고통도 환희도 그 자리에 영원히 머물 것 같았다. 내가 제일 지혜롭다고 느꼈더랬다. 누군가 나를 '어려서 그렇다'라고 지적질했다면 틀림없이 손톱으로 얼굴을 할퀴었으리라. 그러니 다시 기회가 오면 이 스무 살 사람들의 얘기를 평가하는 마음 없이 제대로 한 번 들어보고 싶다...라고 하지만 잘 안될 게 뻔하다. 수련이 필요하다. 수련이. 요즘 책을 안 읽어서 그래. 팟캐스트, 유튜브 등에 너무 노출되어 있다. 겸허한 마음으로 책으로 돌아가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새로운 운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