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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파이 Jan 13. 2024

안전한 공간 = 상처받지 않는 공간?

임금비

 최근 학교에서 ‘안전한 공간'에 관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건강한', ‘상처받지 않는', ‘존중하는' 등 그 표현은 다를 수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안전함을 느끼는 공간을 만들자는 취지로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학교에서 개개인의 의견을 보다 편하게 발화하고, 논의할 수 있게끔 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하지만 이 중 ‘상처받지 않는 것'에 대한 개인적인 의문점이 존재한다. 대게 이야기 과정에서의 상처는 대게 비난과 비판으로부터 발생하는데, ‘상처를 받지 않겠다'라고 선언하겠다는 것은 비판조차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정말 ‘안전함 = 상처받지 않는'이 맞기는 한 걸까?


 우선 ‘비난'과 ‘비판'의 차이부터 알아보자.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비난은 ‘남의 잘못이나 결점을 책잡아서 나쁘게 말함', 비판은 ‘현상이나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밝히거나 잘못된 점을 지적함’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결국 비난은 어떠한 행위나 대상의 옳고 그름을 떠나 결점 그 자체를 근거로 헐뜯거나 나쁘게 말하기 위해 공격을 하는 것을, 비판은 잘못된 점을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지적하는 데에 있어서 차이를 가지고 있다. 예컨대 어떠한 주체가 하는 활동에 대해 그저 활동이 싫어서 ‘이런 거 왜 하냐'라는 식의 발언은 비난이, ‘예민한 주제를 다루는 만큼 홍보의 방식에서 조금 더 주의했다면 좋았을 텐데'와 같이 구체적이고 이성적으로 잘못을 지적하는 발언은 비판이 될 수 있다. 


 이 중 비난은 그 목적이 당사자를 헐뜯는 데에 있다. 더 나은 발전이나 성장을 위해서가 아니기에 논리와 근거 없이, 무지성적으로 행해지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상황과 관계없이 그것을 행하는 주체가 싫어서 발생할 수도 있고, 사실 관계와 상관없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행해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비난을 받은 이는 개선점을 알지 못한 채로 그저 좌절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비판은 비방이 아닌 개선을 목표로 하고 있다. 어떠한 단체나 개인의 의견이나 행동에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 파악하고, 왜 그것이 문제가 되는지를 밝히며 자신의 의견을 표현한다. 비난과는 그 목적부터가 다르다. 더불어 비판을 받는 사람은 잠시 상처를 받을지언정, 자신이 생각할 때에 잘못되었다고 느껴지는 부분에 대해서는 정당한 근거를 들어 반박할 수 있고, 수용해야 할 부분은 겸허히 받아들여 자신의 의견이나 행동을 개선시킬 수 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비난과 비판 모두 상처를 유발한다. 하지만 큰 차이점은 비난으로부터 오는 상처는 ‘불쾌'에 있으며, 비판으로부터 오는 상처는 ‘불편'에 있다는 점이다. 이유 없이 욕먹었으니 ‘불쾌'하고, 정곡을 찔렸으니 ‘불편'한 것은 다르다. 하지만 현재 우리 안에서는 불쾌와 불편이 혼동되고 있다. 모두 ‘불쾌'로 인식하고 피하기만 하려고 한다. 정당한 비판마저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하지도, 듣지도 않는다. 


 안전한 공간에 대한 정의는 개개인마다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다들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고 누구나 나눌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에 안전한 공간이란 ‘비판 또한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든 그 비판을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곳'이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비판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안전하다는 것이며, 그것을 수용할 줄 아는 건강한 개인들이 모였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더 나은 우리, 더 발전한 공동체를 위해서 비판은 필수불가결한 존재이다. 느슨했던 공간에 긴장감을 불어 일으키고, 스스로 경각하게 만들며, 결국 더욱 성숙한 공간을 생성해 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상처받는 이'는 당연하게도 발생할 수밖에 없다. 안전한 공간과 상처받지 않는 공간과 동의어가 될 때 우리는 개인과 공동체를 향한 정당한 비판 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난받지 않는 공간'이지 ‘상처받지 않는 공간'이 아니다.


이우학교가 더욱 건강한 비판을 할 수 있는, 그리고 수용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으로 바뀌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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