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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파이 Jun 19. 2024

한국정치는 왜 혐오하는가

박겸도

 요즘 정치판이 혐오와 비난으로 얼룩져있다. 특정사람을 저격하는 듯 한 법이나 말을 한다던가, 나와 당이 다르거나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폭력을 자행하는 그러한 일이 자주 발생한다. 요즘 유독 더 심한 느낌도 없지 않아 있다. 이로 인해 정치를 기피하던 사람들을 더 밀어내고 정치를 참여하는 사람에게 눈을 가리고 서로들을 비난하게만 만든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 정치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한 명의 민주시민으로서 이러한 사태가 왜 발생하였으며, 어떻게 되어가고 있고 이러한 상황에 대한 나의 생각을 말해보고자 한다. 부디 잘 읽어주길 바란다.



혐오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혐오란 어떤 것에 대한 것에 대해 병적으로 싫어하고 기피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생리적인 혐오에 관한 정의인데, 나는 혐오의 종류 중 사회적 혐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생리적 혐오는 몸의 본능적인 생존을 위한 자기 방어의 수단으로 작용하는 것인 반면, 사회적 혐오는 인간의 도덕성이나 논리성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다. 그에 대한 예시로 마녀사냥이 있는 데, 지금 현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너무나 비인간적이고 비도덕적이지만, 그때는 마녀사냥이 일반적인 행위였다. 이처럼 사회적 혐오는 어떠한 것에 대해 원초적인 본능이 아니라 잘 교육받지 못하고 사회적 흐름에 따라 발생하는 감정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감정이 왜 정치에서 나오는 것일까

 앞서 말했듯,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사회적 혐오는 교육받지 못하고 사회적 흐름에 따라 발생하는 감정이라고 했는 데, 이를 현 정치 판에 대입시켜 보면 일단 정치인들이 교육을 받지 못해서 이러한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정치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모든 국민들은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을 보장하는 나라이기에 교육을 받지 못해서는 아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더라도 ‘상대방을 욕하는 것은 나쁜 것이야’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 문제는 ‘사회적 흐름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사회적 흐름은 왜 일어난 것이고 누가 일으키는 것일까.

 아까 언급했던 마녀사냥을 예시로 들어보자면, 14세기 중반 페스트로 인해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는 일이 일어났는 데, 이때 사람들은 이 불행의 원인을 ‘무엇 때문이다’라고 구체적인 모습을 찾고 그것을 없애 해소하고 싶어 했다. 그것에 대한 해결책으로 낸 것이 바로 마녀사냥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사회적 흐름이란 어떠한 것을 위해서 일부러 혐오를 일으킨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 대한민국 정치는 무엇을 위해 혐오를 일으키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전에 한국 정치의 혐오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데, 한국 정치의 가장 중심이 되는 혐오는 지역갈등에 의한 혐오이다. 그 이유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때, 경제 개발 5개년을 진행하며 호남지역 즉 경상도 지역의 특혜를 받았는 데 이러한 것 시작으로 영남 지역 사람들 즉 전라도 지역 사람들에게 불만을 가지게 했고,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의 민주공화당이 ‘빨갱이들에게 정권을 내줄 수 없다’라는 말을 시작으로 김대중의 신민당이 ‘경상도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며 이전까지 한국 정치판에 없었던 정치 혐오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현재 대한민국 정치 혐오는 지역갈등에 의해서 왔고, 이제 원래 질문이었던 ‘현재 대한민국 정치는 무엇을 위해 혐오를 일으키는 것일까’ 이 질문을 이렇게 바꾸어 볼 수 있는데, 


바로 ‘현재 대한민국 지역갈등은 무엇을 위해 일어나는 것일까’이다. 


 그럼 지역갈등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지역갈등의 발생원인은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데, 첫 번째는 경제적 불평등이다.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수도권과 영남이 집중적으로 개발되면서, 비수도권인 호남지역은 상대적으로 소외되었고, 이 과정 속에서 불만이 쌓이고 혜택을 받은 자와 받지 못한 자들이 갈라서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정치동원론인데,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심화시켰다는 이론이다. 이렇게 한다면 상대적으로 자신의 편에게 더 쉽게 표를 얻게 되기 때문에 갈등을 심화시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지역 이익 추구 현상인데, 유권자들이 자신의 지역 출신 정치인이 당선이 된다면 자신의 지역이 자원 분배에서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에서 비롯되어 갈등을 일부러 일으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지역갈등은 정치인, 지역인들의 이득을 위해서 발생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결론적으로 현재 대한민국은 이익을 위해 서로를 혐오하는 분위기를 조장하는 것이다


지금 현재 정치은 어떤 식으로 혐오하고 있을까

흉기 피습으로 쓰러진 이재명 대표

 현재 대한민국 정치는 대 혐오의 시대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에 대한 예시로 국회에서 욕설과 막말을 하기도 하며, 심지어는 한 당대표가 다른 당을 투표한 유권자를 무시하고 혐오하는 표현을 했는 데, 이 일은 쉽게 생각할 사건이 아니다. 이러한 행위는 다수의 유권자를 대표하는 자가 다른 생각을 가진 유권자의 생각을 폄하하고 깎아내리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대표자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그런 식으로 대하면 안 된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또한 비롯 이 문제는 국회의원 만의 문제는 아니다. 1월경 부산에서 현직 야당 대표가 괴한에 의해서 피습당하는 일이 일어났는 데, 어떠한 개인적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과 생각이 다른 정당이라고 해서 테러를 일으킨 것이다. 원한이 있어도 타인을 찌르면 안 되는 것이지만,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정당이라고 해서 테러를 일으키는 것은 정말로 ‘혐오 정치가 극에 다다랐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러한 복잡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 내가 생각한 해결방안은

 첫 번째, 근본적인 원인이었던 지역갈등을 해결해야 하는데, 이러한 지역갈등은 우리나라 정치사가 빚어낸 산물이지 지역민 간의 직접적인 대립은 아니다. 또한 서로의 이익을 위해 발생한 문제이기에 따라서 해소가 불가능한 문제는 아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소속당 만을 보고 뽑는 것이 아니라 각 후보의 능력, 공약 등을 고루 판단하여 투표하는 것과, 이해관계 갈등 해소를 위해 상호 소통과 합의를 기반으로 약속(원칙, 규칙, 규약)을 정하고 준수하기 등 이러한 다양한 모임과 협력 활동을 통해 서로 간의 생각의 차이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이러한 지역갈등을 해결한 해외의 정책이 있는 데, 바로 벨기에의 연방제이다. 벨기에는 강력한 지방분권제가 채택되어 많은 권한을 가진 지역정부와 그 지역정부 위에 연방정부가 있다. 언어 공동체를 기준으로 선거구를 구성하므로 전국을 세 개의 선거구(프랑스어 공동체, 플란데런어 공동체, 독일어 공동체)로 나눈다. 

 이러한 정책을 통해서 한국의 지역갈등을 해소하게 된다면 한국의 혐오정치는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사회적 혐오의 원인 중 하나였던 교육의 부재인데, 그런데 나는 앞서 [모두가 ‘상대방을 욕하는 것은 나쁜 것이야’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말하는 교육은 나와 상대방의 의견이 다름을 인정하고 인식하는 교육이다. 우리는 상대방을 욕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을 배우지만, 상대의 의견과 내 의견이 다름을 잘 인정하거나 이해하지 못한다. 잘 이해가 안 될 것이다. 모두의 의견을 존중한다라고 생각을 하고 있을 테니까. 그러나 당신은 한 번이라도 나와 의견이 다른 누군가와 말싸움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상대의 의견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사람이었다면 상대의 의견을 바꾸려 하지 않고 타협하려 했을 것이다. 또한 그러한 타협하는 행위를 통해 더욱더 좋은 친구관계가 되었을 것이다. 만약 우리나라의 교육기관들은 상대방의 의견을 인식하게 하고 이해할 수 있는 그러한 교육을 한다면 우리는 근본적인 사회적 혐오를 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인간이며 민주사회에 살고 있다. 이러한 일은 이 사회에서 일어나서는 안 되는 매우 무지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니 모두 함께 우리가 사는 이 사회를  잘 가꾸고 더불어 나를 가꾸길 바란다. 나는 우리 모두가 함께하여 저항한다면 이 정치가 바뀔 것이라 의심하지 않으며, 이 뜻은 내 눈을 감을 때까지도 변치 않을 것이고 눈을 감는 그날에는 누군가 눈을 떠 이 세상을 바라보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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