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승준
대한민국 국민은 모두 국방의 의무를 지고, 그중 남성은 병역의 의무를 진다. 뭇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20대의 창창한 나이에 군대에 가서 1년 반을 국가에 헌신하고 오는 것이 도리임에 틀림이 없다. 군대라는 조직은 기본적으로 고취된 애국심을 바탕으로 나라를 지키겠다는 그 사명감으로 유지되는데, 요즘 군대는 그러한 사명감을 거세시키는 데 있어 일가견이 있는 듯하다. 2023년 기준 5년간 자살한 군인의 수는 320명, 과장하면 하루에 한 명씩 스스로 목숨을 끊은 꼴이다. 적을 격퇴하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군대의 병사가 자멸한다니, 당나라 군대와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지난 5월 채 상병 사건이 나라를 뜨겁게 다루던 시절, 강원특별자치도 인제군에 위치한 제12보병사단에서 훈련병이 고문을 받고 사망하였다. PD수첩에 의하면 가해자 강유진은 생활관에서 떠들다가 적발되었다는 이유로 입소 11일 차인 훈련병에게 책 70권을 추가로 넣은 42kg짜리 완전군장을 메게 하였다고 한다. 훈련된 운동선수가 아니라면 입소 11일 차 이등병이 그러한 가혹행위를 감당할 수 있을 리는 만무하고, 그렇게 2002년생의 청춘은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피해자 박태인 훈련병의 공식 사인은 열사병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부전이다. 가해자 여중대장은 거품을 물고 쓰러진 피해자에게 일어나라고 욕설을 퍼부었으며 다른
군인들이 군장을 벗기려고 하자 의식이 없는 피해자가 자기 혼자 벗게 하라고 지시하였다. 군 의무반에 실려간 피해자의 체온은 41도가 넘었다.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자 피해자는 속초의료원으로 이송되었으나 더 큰 병원으로 이송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의료원 측에서는 전원을 문의했으나 2번 거절당하고 결국 차로 40분 걸리는 강릉아산병원으로 옮겨졌다. 응급실에 도착했으나 57/34mmHg로 극도의 저혈압 상태였던 박 훈련병은 결국 2024년 5월 25일 사망하였다.
이 자체로도 안타까운 사건이지만 이 사건이 기괴한 점은 따로 있다.
언론 보도 하루 뒤인 5월 27일, 가해자 중대장은 연가를 내서 같은 가해자인 부중대장과 함께 귀성길에 올랐다. 예비역 대장 출신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이 국방부에 문의한 결과 군은 사건 발생 후 중대장이 너무 불안해해서 부모님과 함께 있으라고 휴가를 보냈다고 답변했다. 그것도 모자라 군에서는 여중대장의 멘탈 회복을 위해 멘탈 회복 상담까지 붙여주었다고 한다. 사람을 죽인 사람치고는 아주 극진한 대접을 받는 셈이다. 6월 10일 가해 중대장과 부중대장이 정식 입건되었다. 사건이 발생한 지 18일 만이다.
첫 재판은 이례적으로 늦은 사건 발생 86일 뒤인 8월 16일에 시작되었는데, 그동안 군과 인권센터의 이해할 수 없는 행보가 언론을 통해 많이 드러났다. 인권위는 현장조사를 하고도 입장발표를 뭉갰고, 국방부는 '아직 군인으로서 완전히 성숙하지 못한 훈련병들의 입장에 맞는 교육을 내보내야 한다는 브리핑이나 하고 있다. 퍽 군인들이 나라에 충성하게 만드는 대처들이다.
2023년 사망한 채수근 상병 사건은 1년이 넘게 정국의 뜨거운 감자이다. 김건희 여사가 어쨌니 임성근 사단장이 저쨌니 하면서 이루어지는 진상규명은 아주 바람직하다. 하지만, 왜 채 상병과 같이 꽃다운 나이에 군대에 끌려와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하고 개죽음하고, 진상조차 제대로 규명되지 않고 은폐되는 이 사건은 왜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할까?
채 상병 사건은 야당이 여당을 공격할 여지가 충분한 사건이다. 무려 영부인이 엮여 있는 사건이니 충분히 그럴 만하고 또 그래야만 한다. 국가의 책임의 소지가 명확하며 그 후 후속조치도 워낙 수상한 점이 많다. 그에 반해 이 얼차려 사건은 어떤가? 정치적인 소재로 써먹을 여지가 없다. 그리고 개인의 일탈로 치부할 소지가 다분하며 가해자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사회 통념상 거침없는 조사를 하기가 쉽지 않다.
같은 군인이 가혹한 처우를 받고 사망한 사건인데 한쪽은 특별법까지 발의되고 한쪽은 피의자 소환과 수사마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째서 죽음의 경중이 따져져야 하는가 사회적으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최근 남북관계가 악화됨에 따라 전운이 확산되고, 오물로 가득 찬 풍선들이 대통령 청사로 날아들며, 참전용사들은 무관심 속에 생을 마감한다. 이런 식으로 국군을 옆집 강아지 뽀삐만도 못하게 대우한다면 누가 전시 징집에 응하려고 하겠는가? 반만년 역사 동안 우리 조상들은 위에서는 오랑캐, 옆에서는 왜의 침입을 막으며 나라를 지켜 왔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국군을 스스로 당나라 군대화시키는 현재의 대한민국에게는 파국만이 뒤따를 것이라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