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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개인 Jul 09. 2023

경품으로 책을 받아 일지를 써본다. 작가는 아니다.

1cm의 다이빙 3호의 일지 프롤로그 | 



3호의 시작을 알리며

경품이라도 타가야겠어



"목감기 합병증으로 급성 축농증이 온 것 같네요" 이 날부터였다. 술을 좋아하는 내가 강제로 금주를 하기 시작했던 날. 목감기가 심해지면 얼마나 고생하는지 아주 잘 알기 때문에 가벼운 따가움도 그냥 넘길 수 없었다. 다음날 아침 출근도장을 찍고 회사 앞 5분 거리에 있는 이비인후과로 향했다. 불과 몇 년 전의 나는 이 정도의 깃털 같은 가벼운 증상으로 병원을 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며칠 정도 버티면 괜찮아질 거라며 버티고 버티다가 증상이 심해지면 그때야 마지못해 병원을 찾곤 했다. 그렇게 처방받은 약도 먹는 둥 마는 둥, 술이 약이라는 멍멍이 소리를 하며 말이다.




[5월의 병원일지]

- 5월 22일 금요일 : 진단명 '목감기'

- 5월 25일 월요일 : 진단명 '목감기 + 급성 축농증' 1단계 항생제 처방

- 5월 28일 목요일 : 진단명 '급성 축농증' 2단계 항생제 처방




6월 2일 현재까지도 축농증 약을 먹고 있다. 끝이 보일 듯 안 보이는 축농증. 이렇게 지독한 병명인지 몰랐고, 축농증 가진 사람들은 정말 일상생활 힘들 것 같다며 친구들에게 하소연을 하고 나서야 알았다. 겨니도 아르몽도 내 주위에 축농증 선배들이었다는 걸. 겨니가 축농증이라고 술 못 먹는다고 했을 때, 우리들이 말했다고 한다. "술 먹으면 다 나아~" 미안하다 몰라봐서.


눈 뜨면 '굿모닝 콧물' 주룩, 눈 감으면 '잘 자요 콧물' 주룩, '꿈에서도 만나요 콧물' 주룩... 그렇게 나의 소중한 24시간은 노란 콧물로 뒤덮여 갔다. 그렇게 몇 날 며칠 코를 풀다 보니 나의 가장 친한 친구 구작가의 생일파티 날이 바로 코 앞에 다가와 있었다. 이때쯤이면 다 나아서 내일 따위는 없는 사람처럼 신나게 소주잔을 부딪히고 있을 줄 알았는데 내가 축농증이란 녀석을 만만하게 본 거지. 이 날 결국 술 한 잔도 먹지 않았다.


생일파티 모임 1일 전, 약사님이 3일 치의 알약들을 고이 접어 봉투에 넣어주시며 말씀하셨다. " 술은 안 드시죠? 술 먹으면 절대 안 나요" 가슴이 철컹했다. 애써 부정하고 있던 현실을 바로 내 두 눈앞에서 아니 두 귀로 마주했기 때문이다. 확인사살 당한 느낌이랄까. 진 게임이었다.


24시 상시 대기 노란 콧물과 삼시세끼 약을 챙겨 먹는 게 지긋지긋했고, 축농증을 빨리 낫고 싶은 간절함이 술을 먹고 싶은 굴뚝같은 마음을 이겨버렸다. 그로 인해 생일파티 당일에도 입에 술 한 방울도 대지 않을 수 있었고, 대신 파티 초입부터 나는 마음먹었다. 오늘 술을 못 먹는 대신 너는 꼭 가져가야겠다고. 너를 꼭 내 손에 넣고 말겠다고.


그 목표물은 바로 구작가가 가지고 온 세 가지의 경품이었다. 이번 파티의 주제였던 '문학의 밤'에 어울리는 양면 포장지였다. 한쪽은 자음과 모음, 다른 한쪽은 웃는 게 제일 쉬워 보이는 하회탈이 잔뜩 그려져 있었다. 포장지부터 마음에 들었는데 그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이 날 경품을 가져갈 사람을 가리기 위해 여러 게임이 진행되었다. '자음 보고 드라마, 출연배우 맞추기', 'OST 듣고 드라마, 출연배우 맞추기' 등 두 눈과 귀를 곤두세워 점수판에 적힌 내 이름 아래 '바를 정'을 만들어 가기에 몰두했다. 열심히 참여한 결과 경품 2가지를 탔다. 한 개는 '타요 자석글자&보드세트' 크기가 제일 컸던 만큼 충격도 딱 그만큼 더 컸다. 경품을 준비한 구작가의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애써 웃어 보였다. 하하하. 그리고 나머지 한 개는 '1cm 다이빙' 책이었다.


우리는 이 날 구작가의 주도하에 다양한 주제로 대화도 많이 나눴다. 구작가가 어떤 단어를 제시하면 그 단어에 대한 각자의 경험이나 생각을 말해보는 시간이었다. 작가가 직업인 구작가 다운 발상이었다고 생각했다. 스케치북에 정성스럽게 적어온 단어와 뜻을 보니 그 취지에 맞게 잘 대답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지만,  막상 입으로 내뱉으려니 정리되는 않은 날것들이 머릿속을 휘저어서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1cm 다이빙' 책을 읽고 보니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구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문학의 밤을 이끌어가고 질문을 던졌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는 것이다. 아쉬움이 남은 채로 책장을 넘기니 그 날 못다 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 책이 잘 읽혔다. 나도 다시 한번 내 머릿속을 휘저었던 생각과 경험들을 꺼내봤고, 책의 저자이자 책에서 칭호 되는 1호(태수님), 2호(문정님)에 이어 제3호가 되어 일지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1cm 다이빙 3호의 일지] 이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3호 : (a.k.a. 설개인)

내 삶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서른 살(그때에는). 

경품으로 책을 받아 일지를 써본다. 작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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