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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개인 Jul 15. 2023

동태눈깔 헤어디자이너

맵문집 0001 |


헤어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가진 친구가 있다는 것은 참 좋다. (그 친구의 닉네임은 잠시 동태라 칭하겠다.) 나는 미용실 가서 원하는 스타일이나 디테일한 부분들을 비교적 잘 말하고 요구하는 편이지만, 미용실 의자에 앉아서 인사를 나눈 직후부터 카운터에서 계산을 할 때까지 온몸으로 느껴지는 어색함은 참 적응이 되지 않는 사람 중에 한 명이다. 이건 완성된 헤어가 마음에 들고, 안 들고 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동태한테 가면 일단 이런 어색함을 마주하지 않을 수 있어 참 편하다. 오히려 동태의 신성한 일터임을 각인시켜 평소 장난기 많은 스탠스보다 낮게 대응하려 조금 신경을 쓰고 있는 편이다.



생각해 보니 20대 때보다 미용실을 찾는 횟수가 상대적으로 많이 줄었다. 어렸을 때 이 색, 저 색 다양하게 해 본 끝에 나는 검은색이 가장 잘 어울린다는 결론이 섰고, 지금은 더 이상 해보고 싶은 컬러가 없다. 길이도 컷부터 붙임 머리까지 그나마 해보고 싶었던 머리는 다 도전해 봤다. 하고 싶은 머리가 별로 생겨나질 않으니 미용실 가는 횟수가 자연스럽게 줄었고, 머리를 하고자 마음먹었을 때에는 조금 힘든 여정이어도 멀리 있는 동태한테 나의 얇고 소중한 머리털들을 맡기러 간다.




다니 : 사진전송(인터넷에서 찾은 어여쁜 모델 헤어스타일)

다니 : 동태야 저 머리, 저 얼굴로 만들어줘

동태 : 죽빵으로 만들어 드려요? 미용실은 최선을 다할 거예요

다니 : 사진전송(현재 머리 길이)

다니 : 나 지금 머리 길이 이 정도인데

동태 : 느낌 나올 것 같은데, 만나서 봐야 알 것 같아 일단 와




인터넷에 물결펌, 히피펌, 숏컷 등 나한테 어울리는 스타일이 뭘까,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은 뭘까 참고하려고 찾아보면 예쁜 언니들이 예쁜 머리를 한 사진들이 수천 개가 나온다. 마우스가 이끌리는 대로 클릭을 하다 보면 내가 저 언니들의 얼굴을 따라 하고 싶은 건지, 헤어스타일을 따라 하고 싶은 건지 헷갈린다. 소두 언니의 얼굴을 엄지손가락으로 가리고 헤어스타일에만 집중해 본다. 과연 나한테 어울릴까? 동태 앞 의자에 앉아 머리카락이 잘려 나가는 순간에도 머릿속으로 끝없는 시뮬을 돌려 본다. 섬세하고 귀신같은 실력으로 항상 정갈하고 자연스러운 스타일링해주는 동태 덕분에 완성된 스타일에는 항상 문제가 없다. 항상 문제는 내 얼굴에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미용실에 갈 때 되도록 풀 메이크업으로 하고 간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동태는 한결같았던 것 같다. 내가 진로를 고민하기 전부터, 진로를 고민하기 시작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찾고자 했을 때, 적당한 회사를 골라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에도 동태는 헤어 디자이너라는 꿈을 가지고 항상 그 자리에서 서 있었다. 지금과는 달리 무한 체력을 뽐내며 동네 친구들과 해 뜨는 아침까지 술 먹고 집 가는 택시를 잡고 있으면, 건너편에서 익숙한 실루엣과 인사했다. 미용실 막내? 인턴?으로 취직한 동태는 평일, 주말 구분 없이 누구보다 일찍 출근해서 누구보다 늦게 퇴근했다. 아침 일찍 가서는 청소와 회의를 한다고 했고, 마감 후에는 미용 연습을 한다고 했다. 너무 바빠 점점 얼굴 보기도 힘들어진 동태는 가끔 뒤늦은 술자리에 오곤 했는데 그때마다 항상 동태 눈깔을 하고 있다가 술이 좀 된 날에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잠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피곤하고 힘들어 보이긴 했어도, 불평불만에 가득 차 불행해 보이지는 않았다. 말로는 힘들다고, 때려치우고 싶다고도 했지만, 행동으로는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한 곳만 보고 열심히 달리는 그가 신기하고 대단했다. 오히려 이때에는 내가 지금 갖고 있는 존경, 대견보다는 그저 신기했던 것 같다.



동태는 고생 끝에 정식 디자이너가 되고 서울이 아닌 타 지역으로 근무지가 옮겨졌다.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기에 머리 한 번 하러 갈라치면 마음먹기 필수였고, 일부러 동태 퇴근 후 술 한잔할 수 있는 시간에 맞춰 예약을 했다. 한 번은 동태네 집에 가서 2차를 하게 된 날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기겁했다. 문 앞에는 대형 박스에 모발이 빽빽한 연습용 마네킹 머리가 여럿 놓여 있었고, 하필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마네킹이라 적잖이 기겁했던 기억이 난다. 불을 켜고 들어선 작은 원룸 벽면에는 종이 한 장에 여러 숫자들이 적혀 붙어 있었다. 매월 달성하고자 하는 매출 금액을 계획한 그래프 형식의 계획표였고, 이미 지나간 달들은 나름 월 목표를 달성해 나가고 있는 듯해 보였다. 동네 친구들 아무도 없는 낯선 곳에 와서 이런 목표도 세우고 목표를 향해 매일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동태가 멋져 보였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지만, 크고 작은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 좀 더 잘 알게 된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보다 그 행위에 대한 멋짐이 더 크게 와닿는다.



그러한 노력들 덕분일까 동태는 현재 유명한 헤어 브랜드에서 근무하며, 내부에서도 상위 매출자로 끊임없이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의 삶 전부 속속들이 지켜본 건 아니지만, 감히 동태는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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