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을 먹고 푸른 싹이 움트던 날의 기억.
대학 동기들과 글쓰기 모임을 하고 있다. 서로 돌아가며 주제를 제시하는데, 한날은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는 나만의 방법"으로 정해졌다. 이 친구들과는 벌써 약 15년 지기이지만 어린 시절의 아픔과 상처에 대해 공유한 적은 없었기에 고민이 됐다. 내가 지닌 삶의 형태를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꺼내어 내뱉어도 괜찮을까.
친구들을 믿지 못하거나 그들에게 말하기 싫어서 긴 세월 이야기를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세상이 두려워서였다. 나를 둘러싼 세계가 안전하지 않다 느끼니 누구에게도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주변의 누군가에게 마음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이 아이들에게야 말로 가장 먼저 알리고 싶었다.
고심 끝에 용기를 내어 당시 운영하던 블로그에 글을 게시했다. 처음으로 한껏 드러내 보는 나의 상처. 글 발행을 누르기 직전까지도 "올려도 될까." 갈피를 잡기 어려웠지만 한편으론 신뢰가 있었다. 이제 와서야 밝힐 수밖에 없는 나를 감싸 안아주리라는, 따스하고 포근한 온기에 대한.
https://blog.naver.com/leesom___/223447741642
글을 읽은 친구들이 찢겨져 있던 상처에 약과 밴드를 조심스레 가져와 발라주기 시작했다. 그 안도감에 꽁꽁 둘러싼 갑옷을 벗은 나를 그제야 아이들에게 온연히 내보인 느낌이 들면서, 용기를 내기 참 잘했다는 생각과 함께 묵직한 마음이 담긴 애틋하고 소중한 위로들을 하나 둘 내 안에 담기 시작했다. 그중 한 친구는 내게 꼭 안아주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리 길지 않은 문장에 담긴 깊고 진한 진심이 물씬 느껴져 마음 한 켠에 그 말을 소중히 담아 두었었지.
썼던 글이 어느덧 잘 기억나지 않을 만큼의 시간이 흐른 뒤, 오랜만에 글쓰기를 하던 친구들과 다 같이 모였다. 이 친구와도 반가운 인사를 하고 함께 식사 준비를 하는데 문득 잠시간 둘이 있을 때 친구가 "아, 맞다!" 하더니 내게 다가와 살풋 나를 꼬옥 안아주는 게 아닌가.
사실 잊고 있었다. 마음속 담아뒀던 문장은 이미 그 자체로 내게 너무나 큰 위로와 지지가 되어 있었기에, 친구가 실제로 그 행동을 하든 그렇지 않든 그건 내게 크게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까. 하여 영문을 모르겠는 표정으로 친구를 보며 되물었다. "응?" 하고. 친구는 답했다. "전에 만날 때마다 안아 주기로 했었잖아."라고.
그날엔 마침 생리 중이었는데, 내게 사실 월경이란 트라우마와 직결되어 있었다. 삶에서 운 없이 벌어졌던 범죄 중 가장 큰 사건이 생긴 날 불행히도 생리 중이었고, 이후로 없던 생리통이 점점 극심해져 갔었다. 하루에 약국약 한 통을 속에 다 들이부어도 매달의 기간은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앓았다. 참다못해 산부인과에 가서 주사를 맞으면 그나마 겨우 조금 견딜만해졌을 뿐. 해가 갈수록 심해져만 가는 증상에 혹여나 몸에 내가 모르는 큰 병이 있을까 싶어 병원에서 검진도 여러 번 받아봤지만 그때마다 자궁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원인 모를 통증에 매번 다가오는 월경이 두려웠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알게 된 생리통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신체화 증상'. 잊고 싶던 그날들을 몸은 선명히 기억했던 거다. 이 관계성을 알게 된 후 매달 돌아오는 월경은 내게 홀로 아픈 마음을 다독이는 시기였는데. 그런 날의 나를 친구가 안아주니, 삽시간에 눈물이 차 오르려 했다. 사실 이날은 다른 친구들의 경사를 축하하러 모인 날이기도 했어서 문득 지금은 울면 안 된다는 생각에 눈물이 날 것 같아 참고 있다고 하니, 친구도 동일한 마음인지 "그래서 나도 지금 네 표정을 못 보겠어서 이러고 있잖아." 하며 애꿎은 아무것 없는 바닥을 내려다본다.
그 순간을 떠올리면 마음에 힘이 생긴다. 고맙고 또 고마운 친구. 네 덕에 살아갈 힘 한 줄기가 진흙 속에서 움틀거리며 피어올랐다. 햇살을 한가득 담은 너의 온기를 먹고 그 자리에 푸르른 잎 하나가 돋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