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흔들리며 날아가자 (2)

불안정한 시기에 서로를 마주한다는 건,

by 리솜

한창 너와 가까워져 가던 어느 날, 어떻게 다시 나에게 연락을 하게 되었는지 물었다. 수능을 친 너는 여느 대학생처럼 학교 생활과 아르바이트로 바삐 지내며 연애도 꽤나 했다고 한다. 어느새 나와의 추억은 기억 속으로 고이 접어둔 채 현실에 충실히 살며 졸업 후엔 회사 생활도 해 나가던 중, 고등학생 때 만들어뒀다 오랫동안 쓰지 않던 카드를 하나 정리할 겸 은행에 갈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은행원이 본인 확인을 위해 카드 비밀번호를 누르라고 했는데 십수 년 전에 설정해 뒀어서 그런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더란다. 여러 번 계속해서 틀리다가 아무래도 혹시 그 시절 의미 있던 숫자로 해뒀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고 한다. 그렇게 고교 시절 기억을 하나하나 더듬어 보던 중 문득 내 존재가 떠올라, 설마 하는 마음으로 잊고 살던 나의 생일 네 글자를 눌러보니 그 번호가 비밀번호였었단다.

그로부터 한두 달 즈음 뒤 이번엔 집 대청소를 하다 고교시절 핸드폰을 발견했다고 한다. 추억 여행을 하던 중 나와 주고받았던 메시지들이 눈에 들어왔고, 때마침 우연찮게 생겼던 얼마 전 은행에서의 일이 함께 떠오르며 나의 근황이 궁금해졌다고 한다. 찾은 휴대폰에 남아있던 내 번호로 연락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찰나의 생각과 함께.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얼마간 연락을 고민하다 결국 내게 첫 문자를 다시 보내게 됐던 날엔 실은 옆에 친구 두 명이 있었단다. 한 명은 고교시절 친구, 다른 한 명은 대학생 시절 아르바이트를 하다 알게 됐던 친구. 절친한 사이라 둘 모두 고등학생 때 나와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보니, 곧 서른이 가까워오던 다 큰 장정 셋이 머리를 모아가며 어떻게 문자를 보낼지 한참을 고민했었다고 한다.


당시의 나는 카카오톡 배경과 프로필 사진에 아무것도 올려두지 않았었다. 하여 번호가 바뀌었을 수도, 혹은 어쩐지 이미 결혼을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말 그대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보내본 건데 진짜로 답이 오더란다. 그렇게 2019년 7월 6일, 십여 년 만에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된 거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때의 너는 사실 연애 생각도 없었고, 하물며 이민을 고민할 때였다고 한다. 하긴 어쩌면 그래서 내게 다시 연락을 할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만약 해외로 가게 된다면 어렸을 때 마음에 담아뒀던 사람 한 번쯤은 마지막으로 보고 가고 싶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가족 중 한 명은 이미 외국에서 자리를 잡아 살고 있었던 데다 어학연수도 그곳으로 갔었으니 마음만 먹는다면 이민은 네게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해외에서 태어나 초등학생이 되어서야 한국 생활을 하기 시작했던 너는 어릴 때부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고 했다. 성인이 되어 떠났던 어학연수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 중 하나였는데 정작 한국으로 돌아와 직장 생활을 하면서는 너무도 우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나였어도 진지하게 이주를 고려해 볼 만한 시기였을 것 같다.


현실적인 고민들로 인해 초반의 너는 사이가 가까워져 갈수록 종종 마음이 꽤나 복잡해 보였다. 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막상 만나니 옛 기억과 함께 좋아하는 마음이 다시 생겨가기 시작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혼란스러운 와중에, 한국에서의 직장생활로는 도저히 네가 원하는 행복을 찾을 수 없다고 여겨 이민을 고민 중이었던 데다 만일 그럼에도 이곳에서 계속 살기를 택한다면 무얼 하며 먹고살아야 할지도 망연하고 막막했다. 그렇다고 당시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상황도 아니었고. 한마디로 삶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잃고 하염없이 헤맬 때에 너는 나를 만났다. 가장 흔들리고 연약하여 가라앉던 시기에.

그럼에도 나는 네가 좋았다. 이미 존재만으로 오래도록 미색이었던 내 삶을 다채롭게 만들어주고 있었기에. 하여 다가오다가도 때로 주춤하는 네가 안쓰러우면서도 오히려 그 모습이 신중해 보여 마음이 가기도, 쓰이기도 했던 것 같다. 과거의 내가 머뭇거렸었다면 이번엔 네게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첫 번째 만남이 얼마 지나지 않아 너는 내게 연극을 좋아하냐 물었다. 혜화역 근처에서 만나 '옥탑방고양이'를 본 후 타이 음식점에 갔다. 이후 낙산 공원에 올라 야경이 보이는 벤치에 나란히 앉아 해가 하늘을 붉게 물들이다 어느새 밤이 내려앉기까지 수많은 대화를 나눴던 것 같다. 어린 시절의 나는 사람과 가까워지는 걸 무서워해 다른 사람들은 물론 너와도 깊은 이야기를 그리 많이 하진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엔,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친한 친구에게조차 상담받는다는 사실을 비밀스럽게 숨기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네게만큼은 말하고 싶었다. 이전의 나였다면 결코 하지 못했을 행동이었을 텐데 어째서 겨우 두 번째 만남에서부터 네겐 내밀한 얘기를 꺼내고 싶어 졌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미숙했던 과거의 모습을 가장 면밀히 마주할 수밖에 없었던 너였기에 용기 내어 현재의 나를 드러내서 이해받고 싶었던 걸까? 떨리는 마음으로 '사실 상담을 다닌 지 꽤 오래되었어'라는 이야기를 전했을 때 너는, "나는 외부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내 나름대로 살아남기 위해 그간 고군분투하고 있었다면 너는 그 시간 동안 내면적으로 전쟁을 하고 있었구나."라고 말해 주었다. 그 한 마디 문장에 위로받으며 퍽 안도했다.


세 번째 만남에서는 그 시절 흥행하던 '알라딘'을 영화관에서 함께 봤다. 사실 그 영화를 난 이미 두 번이나 봤었지만 네가 좋아 처음 보는 척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너도.

영화가 끝난 뒤엔 산책 겸 근처 난지 공원에 잠시 들렀다가 저녁을 먹으려 했던 것 같은데. 웬걸,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누다 보니 해가 떨어진 후로도 한참을 그곳에 있었다. 마치 세상에 둘만 존재하는 양 온전히 서로에게만 감각을 집중하다가 주위가 완전히 어둑해져서야 문득 휴대폰을 켜 시간을 보니 벌써 열 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 뒤로도 한참을 조잘거리다 저녁이라기엔 한참 늦은 야식을 먹고 헤어졌던 것 같다. 이미 막차가 끊겨버린 너는 우리 동네까지 나와 동행한 뒤 택시를 타고 갔고.


만나지 못하는 날엔 거의 매일 새벽 두세 시까지 연락을 주고받았다. 너는 회사 생활로 힘들다가도 나와 이야기할 때만큼은 숨통이 조금 트인다고 했다. 나를 만나면 웃게 된다고 했다. 한주의 무게가 나와 있을 땐 덜어진다고 했다. 점점, 행복의 비중이 늘어간다고 해주었다.


몇 주간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네 직장 생활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게 된 나는 아무래도 상사의 행동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보인다며 그만둘 것을 네게 이따금 권했다. 그곳이 첫 회사였던 너는 웬만한 직장인들은 모두 엇비슷한 삶의 무게를 견디고 버티며 산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보기에 그곳은 사람을 시들어가게 하는 곳이었고, 그저 나는 네가 조금만 더 자주 맑게 웃었으면 했다.


그 상사와 관련된 일로 별 수 없이 네가 지방 출장을 가야 했던 주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늦은 밤까지 연락을 주고받다 왜인지 그날따라 잠이 오지 않던 나는, 괜스레 날씨 탓을 하며 네가 곤히 잠든 새벽에 문자 한 통을 길게 남겨두었다. 불안정한 현실로 인해 내게 다가오길 이따금 주저하던 너는, 이 메시지 후로 그간의 고민들을 단숨에 정리하고선 한동안 애써 스스로 눌러뒀던 마음들을 꺼내어 투명하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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