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 에반게리온의 이카리 신지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그리고 실존주의
<신세계 에반게리온>의 ‘이카리 신지’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주의, 신세계 에반게리온에 대한 전반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신세계 에반게리온’의 줄거리
서기 2000년, 인류는 미증유의 대재앙 ‘세컨드 임팩트’에 직면한다. 남극에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소형 운석이 충돌하여 일어난 이 사건은 남극의 얼음을 융해시키고 지구 자전축을 뒤틀었다. 그 결과 기아, 내전, 전쟁 등의 요소까지 겹쳐 세계 인구의 절반이 순식간에 절멸했다. 그로부터 15년의 시간이 흐르고 2015년, 하코네의 지하 요새 도시 제3신동경시에는 ‘사도’라는 정체불명의 적이 습격해온다. 이 ‘사도’라는 정체불명의 적은 ‘세컨드 임팩트’에 이어 ‘서드 임팩트’를 발생시켜 전 인류를 지구 상에서 없애고자 하였다. 기존 재래식 무기로는 사도에게 어떠한 피해를 주지 못했고, 사도의 조직과 유사하게 만들어진 에반게리온만이 사도와 상대할 수 있었다.
네르프로 온 14살 소년 ‘이카리 신지’는 어릴 때 헤어진 자신의 아버지, 네르프 총 사령관 ‘이카리 겐도’를 만난다. 처음엔 에반게리온에 타는 것을 거부했지만, 자기 대신 에바에 타야했던 부상을 입은 ‘아야나미 레이’를 보고 마지못해 에반게리온의 파일럿이 된다. 이후 신지는 새 보금자리에서 여러 사람들을 마주한다. ‘아야나미 레이’, 자존심 강한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 등, 이들과 다양한 사건을 겪으면서 신지는 스스로의 실존적 문제에 대해 고뇌한다. 여러 사도를 동료들과 함께 물리치던 이카리 신지는 자신의 실존적 고통과 기타 복합적인 이유로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이후 모든 인간들을 멸망시키는 ‘써드 임팩트’를 일으키지만, 임팩트 이후 사람들의 내면을 이해하게 된 이카리 신지는 자신이 일으킨 멸망의 세계(?)를 일부 복원한다.
나는 후설하게 될 에반게리온의 복잡한 설정들에도 불구하고 그 메시지는 ‘인간 상호 간 이해에 대한 실존주의적 고뇌와 희망’으로서, 비교적 분명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감독은 어린 시절 아버지에 버림받은 기억과 본인 특유의 성격으로 인해 타인에게 사랑받을 자격도 타인을 사랑할 자격도 없다고 생각하는 주인공 ‘이카리 신지’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결국 ‘이카리 신지’는 ‘써드 임팩트’를 일으켜 모든 인간들을 ‘LCL’로 바꾸어버리는 일종의 멸망의 트리거를 당긴다. 이러한 신지의 세계멸망 욕구는 인간이 타인을 영원히 그리고 완벽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실존적 고민 혹은 절규로부터 비롯된다. 그래서 ‘LCL’이라는 액체로 모든 인간이 합쳐짐으로써 서로가 서로를 숨김없이, 완벽히 이해하여 자신의 실존적 고민을 해소하고자 한다. 하지만 ‘LCL’에서 서로의 생각과 기억을 모두 읽은 신지는 모든 인간을 ‘LCL’이라는 물질로 하나로 만들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내지는 희망)이 생기고, 결국 일부 사람들(영혼)을 육체를 가진 온전한 사람으로 되돌려 놓는다.
이처럼 로봇들이 치열하게 싸우는, 그래서 단순히 ‘로봇 특촬 액션물’처럼 보이기도하는 에반게리온은 그 내용을 잘 살펴보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프로이트)에 기반한 실존주의적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TV판) 에반게리온 총 26화 중 20화의 제목이 “WEAVING A STORY 2: oral stage”인데, ‘oral stage’란 프로이트가 말하고 있는 ‘구강기’에 해당하는 용어이다. 또한 16화의 제목이 실존주의 철학자인 키에르케고르의 저작인 ‘죽음에 이르는 병’이기도 하다.
다음의 내용들을 통해 ‘에반게리온’의 서사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잘못된 승화와 최종적인 극복의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알아보려고 한다.
‘신세계 에반게리온’에서 나타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에반게리온의 기본 설정
에반게리온은 일종의 인조인간으로서 가슴 중앙에 빨간색의 ‘코어’가 들어있다. 하지만 그 자체로 의식을 가진 인간은 아니며, 목 뒤에 있는 ‘엔트리 플러그’에 탑승하여 조종하여야 사도를 물리치는 인조인간으로서 제 기능을 할 수 있게 된다. 엔트리플러그에는 LCL 용액이 들어있다. LCL 용액은 액체 속에서도 호흡이 가능한 자궁의 양수를 상징하고 엔트리 플러그는 페니스와 동시에 양수가 가득 찬 자궁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단순히 엔트리플러그에 조종사가 탑승하여서만 에반게리온을 조종할 수는 없다. 조종사와 에반게리온 간의 ‘싱크로율’이 일정 수준을 넘어야지만 조종이 가능하다.
초호기(1호기)는 ‘이카리 신지’만 조종이 가능하며, 2호기는‘소류 아스카 랑그레이’만이 조종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일련의 설정과 서사는 모두 프로이트의 이론을 통해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프로이트 이론을 통한 <에반게리온> 서사 이해
주인공인 이카리 신지는 어린 시절 (3-5세)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기억이 있다. 작품에서는 <표1> 좌측의 사진을 주기적으로 노출시키는데, 이후 이 기억은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 감정(행동)으로 표출된다. 하지만 이카리 신지는 이러한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 감정과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자하는 양가감정을 가지고 있다.
이 지점부터 <에반게리온>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이 적용되고 있다. 3-5세 남근기의 아동이 겪는 경험에 기초하고 있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아이가 최초로 품었던 부모에 대한 사랑과 미움의 감정을 억압, 극복하면서 가족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깨닫는 과정이다. 작품에서는 이카리 신지라는 주인공을 통해 3-5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단계에서 발생한 아버지에 대한 원망 감정과 그것이 극복되지 못하고 청소년기까지 이어지는 모습,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양가감정 또한 프로이트의 이론이 적용된 지점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앞서 정리한 기본 설정에서도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적용되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에반게리온인 초호기 안(코어)에는 신지의 엄마이지 이카리 사령관의 아내인 ‘이카리 유이’의 육체와 영혼이 들어있다. 이것이 바로 이카리 신지만이 에반게리온을 조종할 수 있는 이유이다. 페니스 모양의 엔트리 플러그와 그것을 삽입하여 자신의 어머니와 하나가 되는 모습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단계에서 아이가 품는 어머니에 대한 근친상간적 에로스를 상징한다.
어머니에 대한 근친상간적 욕망은 다른 주인공인 ‘아야나미 레이’를 통해서도 나타난다. ‘레이’는 모종의 이유로 이카리 신지의 어머니(이카리 유이)의 어린 모습을 토대로 만든 일종의 더미(dummy) 인간이다. <에반게리온>에서 아야나미 레이의 성적인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것 또한 이카리 신지가 가지고 있는 어머니에 대한 에로스가 투영된 것으로 해석해볼 수 있다. 더불어서 신지는 아야나미 레이를 교제할 수 있는 이성으로 사모하고 있음이 작품에서 자주 드러난다. 또한 앞서 줄거리에서 언급한 ‘써드 임팩트’ 씬에서도 어머니의 복제품인 ‘레이’에 대한 성적인 묘사가 직접적으로 등장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잘못된 승화와 극복으로서의 ‘써드 임팩트
<에반게리온>의 엔딩에 해당하는 ‘써드 임팩트’ 장면은 <에반게리온>에서 보여주었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잘못된 승화와 이후의 극복을 작품의 결말로 보여주고 있다. 그만큼 ‘써드 임팩트’ 장면은 <에반게리온>의 결말로서, 그리고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극복으로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아래의 링크를 통해 시청하신다면 더욱 이해가 잘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머니를 성적 대상으로 삼으면서, 어머니를 독차지하기 위해 아버지를 경쟁자 또는 적으로 간주한다는 프로이트의 이론은 <표3>와 같은 이카리 신지의 모습 속에서 드러나고 있다.
이처럼‘써드 임팩트’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프로이트 이론에서 등장하고 있는 부친살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써드 임팩트’는 주인공인 이카리 신지가 가지고 있는 죽음충동이 확대 증폭되어 일어난 것이다. 프로이트 이론에서 중요한 개념인 성충동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앞서 설명하였고, 죽음충동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간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맺음말
이처럼 <에반게리온>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온전히 극복하지 못한 이카리 신지의 성충동과 죽음충동을 중심으로 그의 실존적 고민과 해결과정을 그 내용으로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의 엔딩이자 중심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써드 임팩트’는 이카리 신지의 죽음충동으로 인해 일어난 사건이다. 이러한 이카리 신지의 죽음충동에는 프로이트의 핵심 주장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자리잡고 있다. 3-5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단계의 어린 시절 의 아버지로부터 버림 받은 기억과 아버지에 대한 원망, 타인에 대한 불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렇게 3-5세의 기억의 영향으로 이카리 신지는 자신이 사랑받을 자격도 타인을 사랑할 자격도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 타인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자신도 타인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 등의 실존적 고민과 고통을 죽음충동으로 승화하여 모든 사람들의 형태와 물질적 구분(육체)을 없애고 즉 인류 전체를 죽이고 LCL로 환원시켜버린다.
이와 같은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다양한 상징으로서, 수단으로서 기능한다. 인조인간 에반게리온 초호기(코어)에 들어가 있는 이카리 유이(이카리 신지의 친모)와 페니스 형태의 (아들이 타고 있는) 엔트리 플러그가 삽입되어야 작동한다는 설정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유아가 느끼는 어머니에 대한 근친상간적 욕망을 나타낸다. 또한 어머니의 어린 모습을 복제한 아야나미 레이에게 느끼는 보다 직접적인 에로스 또한 프로이트의 이론이 적용된 작품 내용이라 할 수 있겠다.
최종적인 결말으로서, 이카리 신지는 환원된 LCL 속에서 다른 영혼들의 지평을 만나게되면서 자신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온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하면서 자신이 타인을 이해하고 타인이 자신을 이해해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기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해소된다. 콤플렉스를 극복한 이카리 신지는 프로이트의 이론(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마지막 단계인 가족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깨닫고 온전한 나를 마침내 정립하게 된다. 위의 사진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면서 어머니와 아버지와의 정상적인 관계를 정립한 장면이다.
나는 <신세계 에반게리온>이 위와 같이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일련의 극복과정을 서사구조로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 보았을 때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감독이 이러한 단서들을 흩뿌려두기도 하였다.) 장면들이 프로이트의 주장을 배운 이후, 그의 이론들이 이야기 곳곳에 스며들어 있고 전체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활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나의 해석이 감독의 의도와는 세부적으로 다를 수는 있겠으나 감독이 <에반게리온>을 제작할 때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그 극복을 전체적인 서사구조로 활용하였음을 틀림없다고 확신한다. 프로이트의 이론을 통해, 프로이트가 제공하는 구조적 틀을 통해 <에반게리온>이 던지고자하는 실존주의적 메시지가 깊은 의미와 호소력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