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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선택하기

내가 선생님을 선택할 수 있다면?

1) 2017년 4월이었다.

애들 아빠가 헝가리어를 배운 지 반년.

나는 1개월 차 되던 시절이었다.

남편이 집 제일 가까운 학교에 공개수업에 대한 안내가 붙어있다고 했다.

그러니 학원 1교시를 가지 말고 수업 참관을 해보자고 했다.

굿 아이디어!

큰 아이가 한국에서 1학년을 마치고 지금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기에 이번 9월에 무조건 학교에 보내야 했던 나는 학교에  꼭 가보고 싶었다.

아침에 교문을 들어섰더니 교감? 선생님쯤으로 보이는 분이 뭐라고 뭐라고 하시는데

알아들을 길이 없어서 ㅋㅋ 방긋 웃었더니 같이 웃으시면서 쪽지에 반 이름 하나를 적어주셨다.

일단 가보자

이미 수업을 시작한 분위기였다.

뒤에 학부모로 보이는 어른들이 스무 분 가까이에 앉아있었고 나도 그 옆에 자리를 잡았다.

4학년 수학 수업이었고 방위에 대한 수업이었다.

젊은 여자 선생님이 많은 말들로  수업을 진행하셨고 일단 교실의 기기들이 한국에 비해 낙후되어 있는 듯 보였으나 수업에 무리가 되는 느낌은 아니었다. 작은 프로젝트를 켜시고 칠판 옆에 하얀 천 위로 투사하셔서 수업을 진행하시다가 아이들에게 뭐라고 얘기하니 아이들이 수학 익힘책 같은 책을 일제히 펴고 스스로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발표하거나 움직여야 할 때 오른손을 들고 두 손가락을 펴서 선생님께 허락을 받은 후 움직였다.

더 이상 알아들을 수 없을 듯하여 조심조심 교실에서 나와 학원을 향했다.


2) 유치원에 친절해 보이는 어머님 한분께 학교를 언제 결정하냐고 더듬더듬 물었더니 4월에 진행된다고 말해줬다. 다행인지 그 엄마 딸도 내가 지난번에 다녀온 학교(제일 가까운)에 진학할 거라고 하셔서 우리에게도 접수절차를 간단히 알려달라고 했더니 바로 접수일을 알려주셨다. 날짜에 맞춰 아빠와 학교로 갔더니 그때 만났던 교감선생님 같은 분이 종이 한 장을 주셨다.

그 종이에는 4개의 영역이 있었다.

영어, 드라마, 수학 1, 수학 2라고 적혀있는 과목이었다.

우리가 아는 게 무엇이 있겠냐. 영어반에 아들 이름을 적었다. 다행히 유치원에 여자 친구 두 명의 이름도 영어반에 이미 적혀있었다. 교감선생님?으로 보이는 분이 주신 신상에 대해 적는 종이를 겨우 채우고 아직 비자(거주증)가 나오지 않은 상태여서 주소 카드만 보여드리고 거주증은 나오는 대로 보충하겠다고 손짓 발짓하고 돌아왔다.


3) 며칠 후 그 학교에서 예비수업이 있다는 안내가 왔다.

1시에 학교로 오란다. 필통을 가지고 아들을 데리고 갔다. 연세 지긋하신 여자 선생님들 네 분이 아이들 이름을 부르신다. 아들의 이름이 불려지고 쫄래쫄래 그 선생님을 따라 들어간 아들은 100분쯤 후 학교에서 나왔다. 이번 주에 네 번의 수업이 있을 거라고 했다. 아들을 조금씩 수업을 알아들은 듯했고 

운동, 그림 등등의 활동을 했다고 했다. 네 번의 수업이 끝난 마지막 날 아이의 예비 선생님은 아빠를 불렀고 길에서 비를 맞으면서까지 " 아이가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지 미지수예요. 이 학교는 공부량이 많은 학교로 소문나 있어요. 한해를 유예하던지, 아니면 남은 시간 헝가리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아이는 매우 힘들 거예요" 강력한 경고성 충고를 남기고 가셨다.

그러고 나서 알아보니

헝가리는 그 해까지는 유예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입학 시즌인 4월에 유치원에 원장님과 담임선생님이 진학에 대한 의견서를 주시는데 그때 엄마의 요청 또는 유치원 관계자의 의견이 유예로 결정되면 의견서에 그렇게 적으면 된다고 했다. 아니면 조금 보충이 필요하다면 학교 입학을 위한 발달교육센터? 등에 의뢰서를 적어주시는데 그 교육센터에서 집중교육을 받는 조건으로 9월 입학에 대한 의견서를 받기도 한다. 다행인 건지 우리 유치원 선생님은 우리 아들이 학교에서 잘 지낼 거라고 판단하시고 (사실 내가 그렇게 믿고 싶은 거고 ㅎㅎ;;유치원에 더 데리고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셔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학교에 진학 학수 있다고 의견서를 써주셨기에 우리는 입학을 신청할 수 있었다.


4)그런데 동네에 이 학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버스로 세정거장 위에 좀 더 작은 학교가 하나 있었는데 그 학교와 그 옆 동네에 있는 이 세 학교가 나름 명문이라기에 우리는 다른 학교도 다 가보기로 했다. 윗동네 교장선생님은 세상 최고 친절 파셨다.  아이와 남편을 교장실까지 불러 작은 선물을 주시면서 친절하게 상담해주셨다. 아들은 교장선생님과 친절한 경비아저씨께 마음을 뺏겨 학교에서 나오는 길에 이 학교로 오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단 말이지~' 이왕 이렇게 된 거 추천받은 옆동네 학교도 가보았다. 그 학교가 있는 동네는 거주자들이 이동이 없다고 했다 입학관계자는 강경한 태도로 이 학교는 그 동네 사람들로 이미 과밀학급이라는 설명과 혹시라도 빈자리가 있으면 입학할 수 있지만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는 빡빡한 설명을 듣고 나왔다.


5) 몇 날 며칠 고민후 우리는 집에서 제일 가까운 학교. 이 학교의 이름은 한국어로 옮기면 '축복초등학교'로 결정하게 되었다. 이 학교는 큰 아이가 입학하던 당시 개교 105년이 된 전통 있는 학교였다.

이 학교의 특징은 선생님 중에도 이 학교를 졸업하신 분이 많으시다는 것, 그리고 현재 학부모들 중에도 본교 졸업생이 많다는 것, 그리고 매우 엄격하고 빡빡하게 공부를 시키는 학교로 이름이 나있었고 다른 과목보다는 수학이 우수한 학교로 소문나 있는 학교였다. 우리 윗집에 일흔이 넘으신 노부부가 살고 계셨는데 그분들의 자녀와 손주들도 모두 이 학교를 졸업했다고 하셨다. 

남편은 나에게 말했다.

"한국에서 우리가 방배동, 목동, 강남 팔 학군은 꿈도 못 꿀 텐데, 여기 부다페스트에서 손에 꼽히는 부자동네야. 거기에다가 이 학교 나름 명문이다. 한국에서 제일 좋은 공립학교 보내는 거라고 생각해!"

' 그래, 그렇게 믿어보자.' 그러고 보니 진짜 그렇것 같기도 하다.... 쩝


6) 큰 아이를 학교 1학년에 입학시킬 때 둘째 딸도 사립유치원에서 공립유치원으로 옮겼다. 마찬가지로 주소 카드를 들고 집에서 제일 가까운 두 곳을 찾아가 봤는데 처음 간 곳에서 더 가까운 곳에 먼저 지원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알려주셨다. 주소지 우선인 것이다. 초등학교와 마찬가지로 여러 곳을 신청할 수 있지만 주소지가 가까운 곳에 우선권이 있고 혹시 다른 기관에도 공석이 있으면 갈 수 있는 구조였다. 다행히 둘째 딸도 집 제일 가까운 (큰 애 초등학교에서 50미터 거리) 유치원에서 반갑게 입학시켜주셨고  그간 많은 분들이 공립유치원과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경고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둘째를 학교에 입학시킬 때는 훨씬 수월했다.  다시 4월이 돌아왔다. 


7) 우리의 헝가리어 실력이 향상되고 분위기가 제법 파악되고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작년 4월에 있었던 공개수업은 학생들의 학부모 공개수업이 아니었다. 이곳 공립초등학교의 경우 1학년 담임선생님과 학급 구성이 4학년까지 유지되는 시스템이었기에 4년을 담임한 교사들은 그 이듬해에는 다시 1학년을 담임하며 새로운 4년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매년 4월 입학 신청기간에 각 학교는 4학년 수업을 하루 종일 공개하며 예비 학부모가 각 학급의 특징과 선생님의 수업방식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하는 공개수업이었던 것이다. 둘째 딸이 학급을 정하기 전에 이번에는 혼자서 9시에 학교에 갔다. 작년 그 교감선생님께서 (나중에 알고 보니 진짜 교감선생님이셨다.) 이번에는 시간표로 보이는 종이를 주셨다. 현재 4학년이 3 학급(수학, 영어, 드라마)이었고 그 3 학급의 수업 시간표를 주신 것이다. 내가 3시간 동안 저 모든 학급의 수업을 들어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므로 나는 귀를 쫑긋 열고 눈을 크게 뜨고 세 학급의 수업을 세 시간 동안 열혈 청강했다. 그리고 둘째 딸의 담임선생님과 보조선생님. 그리고 수업 시간표를 결정할 수 있었다.

공개수업 후 작년에 적었던 그 두장의 종이를 작성하고 입학 신청을 마쳤다.


8) 위와 같은 선택권은 불균형을 가져올 수 있다는 나의 염려가 무색하게 세 학급에 아이들은 골고루 나눠졌다. 신기방기 할 노릇이다. 그리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4년이 유지된다. 그렇게 입학한 큰 아이는 벌써 4학년이고 둘째 아이는 3학년이다. 

큰아이는 여기 나이로도 한해를 유예하고(만 7세) 학교에 입학한  경우이고 , 둘째는 만 6세 유예 없이 입학하게 되면서 한국에서는 세 살 터울의 남매는 연년생 남매로 거듭났다는 점이 좀 이상할 수 있지만 여하튼 그렇게 벌써 4년을 보내게 되었고 나는 벌써 첫째 아이의 두 번째 학교를 탐색하기 위해 정보 레이다망을 돌리고 있다.

헝가리의 학제를 이해하는데 꼬박 4년이 걸린 것이 부끄럽지만 이제는 완벽히 이해 완료했으니 되었다! 두 번째 학교를 선택하는 이야기도 적어볼 수 있기를 바란다.


9) 공립의 교육제도 안에서 학교와 교사와 교육과정(학급의 특별과정)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꽤나 신선한 부분이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이런 프로그램이 진행되면 어떨까? 잠시 생각하다가 머리를 털었다. 사실... 나도 공립학교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이 문제는 어려운 이야기가 될 것 같아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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