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싱그럽다.
세상의 모든 사랑스러움이 뭉게뭉게 떠오르는 날씨다.
평소에는 점심을 싸가지고 다니지만 금요일 하루만은 내가 원하는 것을 사 먹어보는 시간을 선물한다. 일주일 동안 수고한 나에게 주는 작은 위로!
평소에 좋아하던 카페에 들른다.
주문을 하려는데 머리에 일시정지가 일어난다.
'휴, 이 중에 도대체 뭐를 먹어보지?'
천천히 고르라고 해주는 친절한 점원 덕분에 심의를 기울여 남편을 위해 하나, 요즘 빵 맛을 알게 된 아들을 위해서도 하나 고르고, 나를 위해서는 빵 하나에 보너스로 라떼까지 사서 거리를 걸어본다. 한 곳에 앉아 있기에는 너무 아까운 날씨다.
매일 걸어 다니는 거리지만 오늘따라 내 눈에 보이는 모든 장면이 한 폭의 그림 같다. 사람들의 작은 움직임과 걸음걸이도 왠지 더 세련되게 느껴진다.
나에게는 마치 누가 꼭 이렇게 해야 한다고 정해준 것처럼 고정된 일정이 있다. 간단히 말하면 일 그리고 바로 집으로 퇴근- 인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강아지 산책을 먼저 시키고 저녁밥을 하고 집에 돌아온 가족을 맞이하고 아이와 놀아주고 씻기고 재우고 나도 뻗는 것이다. 그냥 평범한 시간표 같지만 여기서 조금만 벗어나도 그다음이 무너지고 그럼 일이 밀리고 쉼이 없고 마음에 시험만 가득해진다. 그래서 평소에는 일탈을 잘 꿈꾸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아서 좋다. 일상에서 잠시 여유를 갖는다는 것이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깊은 심호흡을 하듯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 깨닫게 된다. 몸의 모든 긴장과 스트레스가 이완되는 느낌이다.
최근에 새 단장한 나의 플레이리스트도 가벼운 발걸음에 리듬을 맞춰주는 듯하다. 둠칫 두둠칫. 내 노래 취향도 이제야 제대로 알아가는 것 같다. 좋다!
맛집 조사에 돌입한다. 내가 직장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는 어떤 맛집들이 있을까? 일단 가게 이름이 보일 정도로만 대충 사진을 찍는다. 나중에 집에 가서 다 검색해 봐야지. 나의 맛집 기준은 단순하다. 구글 평점 4.0 이상. 그래도 맛이 없다면, 내 취향이 아닌 걸로!
우리 동네는 밤이 되면 캄캄한데 여기는 도시 중심가라 그런지 24시간 운영하는 곳이 많다. 새벽에 출근하는 나에게는 아주 반가운 소식이다. 맥모닝만이 나의 옵션이 아니라는 것에 기쁘다.
다가오는 여름에는 음식점 밖에 자리가 준비된 곳을 찾아갈 계획이다. 그리고 그날은 점심 도시락이 없는 가벼운 출근 가방에 좋아하는 책 한 권을 꼭 챙겨 넣을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누리지 못한 시간을 재개할 생각에 이 모든 것을 처음 하는 사람처럼 설렌다. 마음에 드는 카페를 찾을 때면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 꽃 피울 친구가 곁에 없다는 사실이 좀 아쉽기는 하지만, 나와의 데이트도 썩 나쁘지 않다. 아니 요즘은 더 편하고 좋을 때가 많다.
점심시간이 끝나간다.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이 정도로 만족한다. 뭐든 짧고 달콤해야 그다음이 더 기대되는 법이니까.
오늘도 집에 가서 내가 소화해야 하는 일정표는 달라지지 않겠지만, 평소보다 더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물어볼 수 있을 것 같다.
"아들, 오늘 어린이집 잘 다녀왔어? 엄마도 오늘 일 잘 다녀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