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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in Jun 05. 2020

From_ Sophie

in Wellington




자고 있었니? 막 잠에 들던 참이라고. 뭐 한다고 지금까지 깨어있었어? 여기가 새벽3시를 향해가고 있으니 그곳은 막 자정을 넘겼겠구나. 사실 아까 전부터 전화를 걸까 말까 고민했었는데 선뜻 손이 가질 않더라. 늘 내가 필요할 때만 찾는 것 같아서 약간은 죄책감이 들었어. 통화 조금 할 수 있니? 사실 오늘 하루 종일 너무나 아무 생각 없이 떠들고 싶었는데 영어로는 아직 하고 싶은 말의 70프로도 전달할 수가 없다. 감정이 솟아나는 속도를 언어가 따라가지 못해. 짜증이 났다가도 분노의 말을 마칠 때쯤에는 마음에 안정이 오고난 후인데 그러고 나면 쏟아낸 단어들에 후회가 밀려오더라. 이곳 언어에 익숙해지겠다고 한국인을 피해 다녔더니 이렇게 가끔은 섬처럼 고독함이 밀려오곤 한다. 그럴 때마다 시내 중앙 도서관 2층에 있는 한국 서가에서 해가질 때까지 소설을 읽고 나오곤 했는데 이제는 그 마저도 힘들게 됐어. 지진 때문에 건물 내부에 문제가 생겼다고 도서관이 문을 닫았거든. 1년 전 있었던 큰 지진이 만들어낸 균열을 이제야 찾아낸 것도 신기한데 작은 균열을 문제로 시티의 중앙 도서관이 문을 닫으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니. 덕분에 출근 전에 도서관 2층 카페에 들러 영어공부를 하고 퇴근 후에는 창밖으로 보이는 워터프론트를 바라보며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 던 내 생활에 큰 구멍이 생겼지 뭐야. 이제 봄이 오고 있어서 공원으로 나갈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려나. 도서관에서 보내던 시간들을 바닷가에 앉아 맥주를 먹거나 유명한 카페를 찾아다니는 일로 채워 보려고 해. 충분한 공지도 없이 그렇게 갑작스럽게 문을 닫은 뒤로 보수에 2억 정도 들 것 같다는 기사가 났던 것 같더라. 얼마 전엔 보수보다 다시 짓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며 2년 정도 걸릴 거라던데 그때는 내가 이 도시를 떠난 뒤 일 테니 새로 지어진 도서관의 모습을 다시보긴 힘들겠지. 그나저나 늘 그 곳으로 출근하던 수많은 사람들은 지금쯤 어디서 시간을 보내고 있으려나.


 시티 중앙 도서관 2층과 1층 사이 공간에는 한 카페가 있었어. 가게에서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적어도 한번, 가끔은 두 번 그 곳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어. 카페 후문으로 나가면 잔디가 깔린 시티갤러리 광장이 나왔고 그 곳을 지나면 바다가 펼쳐지지. 또 벽 전체가 유리로 된 덕분에 반대편 입구에서는 내가 일하는 가게의 모습을 볼 수 있었어. 상상이 가니? 출근 한 시간 전부터 직장이 보이는 카페에 앉아 영어 표현을 외우고 영어 자막을 읽고 빠른 속도로 영어 대화들을 듣고 나서야 겨우 동료들 틈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몇 개월 전의 내 모습을. 그렇게 하루하루가 살얼음 걷는 것 같은 때가 있었단다. 이력서를 돌리러 다녔을 때는 직장만 구해지면 모든 게 다 술술 풀릴 것 같더니 내 영어 실력으론 주문하나 받지 못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니. 너도 알다시피 내가 좀 완벽주의자잖아. 사방에는 원어민들 밖에 없는데 내가 서툰 영어로 더듬더듬 말하는 것을 걔들이 듣고 있다고 생각하니 스스로가 바보 같아서 못 견디겠더라. 서로를 알아가라고 마련한 스텝미팅에서 한마디 말도 없이 꾹 입을 닫고 앉아 있다가 나왔다. 오죽 긴장 했으면 잠깐 온 지진에 테이블이 흔들리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을까. 여행 다니면서야 뭐, 토플 공부할 때 쓰던 영어로 충분했지. 그런데 웬걸 나는 ‘줄까?’와 ‘드릴까요?’를 구분해서 말하지도 못하는 수준이더라. 


 한국을 떠나 온지도 벌써 5개월이 넘어가는구나. 언제 돌아올 거냐고? 글쎄다. 지난해 베트남으로 한 달반 여행을 하고 돌아오니 한국이 더욱 답답하게 느껴진다며 적어도 외국에서 1,2년을 살아봐야 후회가 남지 않을 것 같다고 이야기 했었던가. 아직도 그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이러다가 훌쩍 돌아가 ‘다녀왔어.’하고 너희 앞에 나타날지도 모를 일이지. 내일의 일조차 예측하지 못하는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니. 그래도 오랜 친구들이란 그런 거라 생각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로 우리가 걷는 길들에 하나도 접점이 없었는데도 아직도 여전히 뭉쳐 있잖아. 생각해보면 참 신기하지. 고등학교 때는 그렇게 각별한 사이들도 아니었는데 무엇이 우리를 지금까지 이렇게 한 대 모아 놓았을까. 교복을 벗고 사회로 나오고 나니 사실을 우리가 잘 맞는 사람들이란 걸 알게 된 것 일까. 그냥 카카오톡 덕분이 아니겠냐고? 그것도 맞다. 각자가 살기 바빠서 일 년에 한 번도 얼굴 보기 힘들 때도 그 단체 채팅방 안에서는 늘 함께 있는 것 같았지. 누가 시작이라고 할 것도 없이 아침부터 잠들기 전까지 일과를 공유하는 터에 우리는 만난 적도 없는 서로의 직장 동료들 이름까지 다 알고 있었어. 그 시간들이 모이니 화면 속에 타이핑되는 글자들에는 표정이 하나 보이지 않는데도 미묘한 변화를 누군가는 꼭 알아채게 되더라. 내가 뉴질랜드로 간다는 말을 꺼냈을 때도 예외가 아니었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갑작스럽게 ‘3개월 뒤 다시 떠난다. 이번에는 영영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너희들 모두 놀라는 눈치가 아니었어. 그저 통보하듯 이별을 말하는 나에게 서운한 내색을 감추지 않았지. 이런 일은 상의라도 해 줬으면 좀 좋았겠느냐는 친구들 사이에서 너만은 그랬던가? ‘네가 행복하면 다 괜찮다.’고. 그 한마디가 이 곳 생활에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From_ Sohpie

0601.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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