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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클맘 Mar 09. 2021

가끔 시간 밖에서 살아보는 건 어떨까?

"엄마, 이 책 다 가져가도 돼요?"

"너무 많지 않을까? 그중에 네가 제일 좋아하는 책 몇 권만 골라보면 어때?"

"아, 이 책들 제가 다 좋아하는 책이란 말이에요."

"안 되겠다. 그럼 박스에 다 담아가자."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하지만 직장 생활을 하며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쉽게 여행을 떠나기 어렵다. 이런 내게 소중한 여행의 시간은 바로 여름휴가철이다. 특히 산과 들을 좋아하는 나는 여름휴가 여행지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자연 휴양림을 좋아한다.


큰 아이가 글을 읽기 시작하고 영어책 읽기에 푹 빠질 때쯤, 여름휴가를 보내기로 한 휴양림에 각자 읽고 싶은 책을 박스에 담아 가기로 했다.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일상의 짜인 생활 속에서 아이들은 항상 책 읽기에 목말라했고 나도 오랜만에 여유롭게 책을 읽고 싶었다.


그렇게 각자 좋아하는 책을 담다 보니 책은 점점 많아졌고 결국은 가져가고 싶은 만큼 박스에 담기로 한 것이다. 큰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한글 책과 영어 책을 박스에 꼭꼭 채워 넣었고, 작은 아이는 공룡 책, 자동차 책, 그리고 엄마한테 읽어달라고 할 책들을 한 가득 박스에 채워 넣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남편과 나도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들을 찾아 박스에 채우고 여름휴가를 떠났다.

예약한 휴양림은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차를 타고 4~5시간을 가야 했지만 책 4박스를 차에 싣고 떠나는 여행은 그동안의 휴가와 다른 설렘과 기대를 가지게 했다.


아침 일찍 출발해 도착한 휴양림에 텐트를 치고 각자의 책 박스를 풀어놓았다. 새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산속 깊은 곳, 나무 그늘 아래서 책을 읽는 기쁨이은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신선함과 여유로움으로 이어졌다.


지금은 캠핑이 대중화되어 접근성도 좋고 캠핑장 부대시설도 깔끔하고 편리해졌지만, 당시만 해도 캠핑이 보편화되기 전이라 휴양림의 캠핑장은 고불고불 산길을 거쳐 산속 깊은 곳까지 올라가야만 했다. 화장실도 불편하고 취사 시설도 부족했다. 밥을 지을 물을 받기 위해 10분 이상 산길을 내려가야 했지만 일상에서 벗어나 우리 가족만 있는 듯한 산속 조용한 캠핑장은 더없이 좋은 나를 찾는 휴식의 장소였다.



시간에 대한 관념에서 벗어나 시곗바늘에 의존하지 않으면, 순간순간을 보다 알차게 보낼 수 있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초초해하지도 말고 시간밖에 있는 무한한 세계에 눈을 돌리면 그 어떤 시간에 건 여유를 지니고 의젓해질 수 있다는 소리이다. -법정 스님의 《오두막 편지》-


직장을 다니며 육아를 하다 보니 항상 시간에 쫓겼다. 하루 종일 정신없이 일하다 집에 오면 밀린 집안일에 육아까지 하루하루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게 시간을 보냈다. 매일 바쁘게 살다 보니 내가 시간을 관리하는 게 아니라 시간에 쫓겨 살게 되었다.


그런 생활 속에 살다 책을 싣고 떠나는 여름휴가는 시곗바늘의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맛집이나 전국의 유명한 관광지는 없었지만 조용한 산속에서 나무들이 뿜어 내는 신선함을 맡으며 읽는 책은 꿀맛 같은 휴식의 기쁨을 주었다.


나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책을 읽으며 보내는 산속에서의 시간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TV도 스마트폰도 없이 자연과 책을 벗 삼아 보내는 며칠 동안 우리 가족에게 시간은 멎은 것 같았다.


'아이들이 원래 책을 좋아하니까 가능한 거겠지'

'어떻게 하루 종일 책만 읽으며 하루를 보낼까?'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태어나면서부터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엄마표 영어를 하며 책 육아는 나의 일상이 되었다. 매일 읽어준 책 읽어 주기의 힘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일상에서 벗어난 시간 밖으로의 여행이 또한 큰 도움이 되었다.





휴양림에서의 시간 밖 책 읽기 추억은 바쁜 일상 속에서 벗어나 재충전의 시간이 되어주었다. 뿐만 아니라 엄마표 영어를 하며 아이들과 만든 또 다른 추억이 되어주었다.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돌듯 집과 직장을 오가는 생활 속에서 알람도 없고 시계도 필요 없는 숲 속에서의 시간은 책의 소중함과 가치를 새삼 깨닫게 해 준 시간이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집에 시계가 필요 없게 되었다. 언제든 손에 닿는 곳에 스마트폰이 있고 스마트폰에 온갖 시간 관련  다양한 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해진 시간을 맞추기 위해 기다리고 버려지는 '남은 몇 분의 시간들'이 얼마나 많을까?


인생에 성공한 사람들은 남들과 똑같은 하루 24시간을 살면서도 자투리 시간을 유용하게 쓸 줄을 안 것이다. 시곗바늘이 가리키는 시간에 팔리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그 순간순간을 알차게 사는 사람이야말로 시간 밖에서 살 수 있다. - 법정 스님의 《오두막 편지》-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학교 일정으로 길게 여행 가는 시간이 줄었다. 함께 책을 가지고 떠나는 여행시간 역시 언젠가부터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사라져 버린 시간 속에 나의 여유와 힐링이 시간도 함께 사라져 버린 건 아닌지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올해 휴가는 책을 가지고 떠나는 여행을 아이들과 상의해봐야겠다.

가끔은 시간 밖으로의 여행이 내일을 살아가는 여유와 에너지를 재 충천해줄 수 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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