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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클맘 Mar 01. 2021

엄마, 밀크 셰이크 먹으러 가요

"엄마, 뭐해?"

"응, 저녁 먹고 있어. 너는?"

"난 이제 집에 가는 길이야."

"저녁 먹어야지?"
"난 **리아 들러서 햄버거 사가려고."

"햄버거 말고 밥 먹지."

"오늘은 햄버거가 먹고 싶어서. 엄마 근데 이제 **리아에서 셰이크를 파는 곳이 거의 없어서 너무 아쉬워."

"엄마랑 도서관 다녀오는 길에 먹었던 셰이크 정말 맛있었는데! 생각난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우리 가족은 주말 오후를 도서관에서 보냈다.

어려서부터 엄마표 영어를 하며 영어 동화책과 한글 동화책을 끌어안고 살다 보니 아이들은 자연스레 책 읽기를 좋아했다.


큰아이가 혼자 책을 읽기 시작할 무렵 동네에 시립 도서관이 들어섰다. 새로 생긴 도서관에 재미나고 다양한 책들은 아이들과 나를 주말마다 도서관으로 끌어당겼다.


어느 날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집에 오는 길에 새로 오픈한  '**리아'가 눈에 띄었다.

"얘들아, 저기 가서 맛있는 거 먹고 갈까?"

"저기서 뭐 먹을 수 있는데?"


패스트푸드에 익숙하지 않았던 아이들을 데리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매장으로 들어섰다.

"불고기버거랑 밀크 셰이크 주세요."


오후 내내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낸 아이들은 처음 먹어보는 햄버거와 셰이크를 눈 깜짝할 사이에 먹어 치웠다.

"엄마 이거 맛있어요."

"이거 이름이 뭐예요?"

"밀크 셰이크야"



사실 밀크 셰이크는 내가 좋아하는 음료였다. 고등학교 시절 처음 친구와 햄버거 집에 가서 먹어본 밀크 셰이크의 부드럽고 달달한 맛이 좋았다. 아이들은 그날 이후 밀크 셰이크 맛에 푹 빠졌다. 아이들에게 엄마와 도서관에 다녀오는 날에 먹은  밀크 셰이크 맛은 꽤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엄마, 도서관 가요."

"며칠 전에 다녀왔잖아. 또 가게? 책 읽고 싶어?"

내가 휴가를 받아 집에서 쉬는 날이었다. 주말에 다녀온 도서관을 아이들은 또 가고 싶어 했다.

"그래 도서관 가자."


그날도 우리는 도서관에 다녀오는 길에 **리아에 들러 밀크 셰이크를 먹었다.




그렇게 아이들에게 도서관은 엄마랑 맛있는 밀크 셰이크를 먹으러 갈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도서관은 밀크 셰이크처럼 달달하고 부드러운 추억으로 아이들에게 남은 것이다.


나중에 내가 영문과 공부를 시작했을 때도 아이들은 엄마를 따라 도서관 열람실에 가고 싶어 했다.

"엄마 거기 가서 공부해야 해. 아무 말도 못 하고 책만 봐야 하는데 괜찮겠어?"

나를 따라 도서관 열람실을 가겠다는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괜찮아요. 도서관 가서 엄마 옆에서 책 읽고 있을게."


당시는 엄마표 영어가 생소한 개념이라 도서관에 있는 영어 원서를 찾아 읽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엄마를 따라 도서관에 간 아이들은 도서관에서 자기들이 읽고 싶은 책을 골라 읽었는데, 아무도 손대지 않은 깨끗한 영어 원서를 매일 마음껏 읽을 수 있는 호사도 누리게 되었다.


"엄마 이 책들 너무 재미있어요."

아무도 빌려 읽지 않는 영어 원서들을 내 책 인양 매일 읽으며 아이들은 그렇게 도서관과 친숙해져 갔다.




어제 지인분께서 아이와 책을 읽으면서 영어 단어를 외우게 한다고 하셨다.

"절대 그러지 마세요. 아직은 그러실 때가 아니에요."

"아이가 영어를 즐기고 영어책 읽기의 재미를 찾기 전까지는 절대 단어 외우기나 해석에 너무 신경 쓰시지 마세요. 그보다 아이랑 영어 동화책을 재미있기 읽으세요. 아이에게 영어 단어 하나 알려주는 것보다 영어책의 재미를 느끼게 해 주세요."


유아기의 아이들에게 영어 동화를 접해주면서 단어를 알려주는 교재로 활용하면 영어는 재미없고 엄마랑 공부해야 하는 학습 과목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그런 기억은 유아기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인생 전반에 걸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유아기의 영어동화책은 엄마와 그림을 보고 즐길 수 있는 재미와 소통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엄마와 재미있게 읽은 영어 동화책의 추억은 평상 아이에게 따듯한 기억과 엄마의 사랑이 되어 남는다.



내가 영문과 공부를 하기 시작했을 때 아이들은 겨우 초등학생이었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둘째 아이가 과연 내 옆에 얌전히 앉아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이미 도서관은 공부하러 가는 딱딱하고 재미없는 곳이 아니었다.


엄마랑 마음껏 책을 읽고 밀크 셰이크를 먹을 수 있는 달달하고 부드러운  기억이었던 것이다.


이제 성인이 된 아이는 지금도 그때 기억으로 밀크 셰이크를 좋아한다고 했다. 엄마랑 도서관 다녀오던 길에 먹었던 밀크 셰이크의 기억은 엄마와 도서관에서 한때를 보내던 추억과 엄마의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었다.


작년에 아이를 보러 갔을 때, 아이가 저녁을 먹고 산책을 가자고 했다.

"어디로 갈 건데?"

"여기서 조금 가면 **리아 있거든. 거기 가서 엄마랑 밀크 셰이크 먹고 싶어."


아이가 성장을 하니 이제 친구처럼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 아이와 함께 밀크 쉐이 크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것도 그중 하나이다.

그런데 아이들과 달달한 추억이 있는 밀크 셰이크를 판매하는 곳이 사라져 간다니 왠지 추억을 빼앗기듯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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