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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클맘 May 21. 2021

나도 고슴도치엄마 맞네


'엄마, 할머니 댁에서 자고 일 도와드릴게요'

아침에 일어나 보니 둘째 아이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얼마 전 어머니께서 집안 가구를 옮겨야 하는데 짐을 옮길 사람이 없다고 걱정을 하셨다.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지역 간 이동이 부담스럽다 보니 자식들이 마음대로 와서 집안일을 도와주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올해 대학생이 된 둘째 아이에게 부탁을 했다.

"**야, 할머니 댁에 가구를 옮겨야 하는데 짐을 옮길 사람이 없네. 네가 도와줄 수 있을까?"

"네, 제가 할게요. 근데 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생각해보니 둘째 아이 혼자는 무리였다.

마침 그 날은 남편도 다른 일이 있었다.


"엄마, 제가 친구한테 부탁해서 같이 가서 도와드릴게요."

"그럴 수 있겠어?"

"할머니 댁 일이잖아요."


엊그제 자박자박 걸어 다니던 코 흘리게 꼬마가 벌써 커서 할머니 댁 힘든 일을 도와 드릴 나이가 되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머니댁 일을 도와드리기로 한 전날  둘째 아이는 친구들과 저녁 약속이 있었다.

모임이 길어지는지 올 시간이 되었는데 연락이 없어 전화를 해보니 조금 늦는다고 했다.


요즘 세상이 무서운 데다 다음날 어머니 댁 일도 있는데 늦게까지 귀가하지 않는 아이가 걱정되었다.

'**야, 내일 할머니 댁에 일이 있으니 너무 늦지 않게 와'

그렇게 문자를 남기고 기다리다 나도 잠이 들어버렸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이가 할머니 댁에 가서 자겠다고 연락이 와 있었던 것이다.




나도 그날 바쁜 일이 있어 어머니댁에 가보지 못하고 동생이 대신 어머니댁에 가서 함께 일을 돕기로 했다.

어머니댁 일이 잘 되고 있는지 신경이 쓰이던 참에, 둘째 아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엄마, 방금 할머니 댁 일 다 마무리했어요."

"응, 고생했네. 수고했어."



조금 지나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엄마, 오늘 일은 잘하셨어요?"

"응, **가 어찌나 열심히 하던지 정말 기특하더라."

"그리고 오랜만에 **랑 함께 자면서 얘기도 하고 아주 좋더라."


전날 밤 친구들과 모임을 마치고 할머니 댁에 찾아간 둘째 아이는 할머니 옆에서 함께 자며 단란한 시간을 가졌다고 했다.

"할머니, 내가 할머니랑 같이 잔 게 언제였지?"

"글쎄, 우리 **가 아주 어렸을 때 아닐까?"

"음..... 나 중학교 때 할머니랑 우리 가족 모두 놀러 갔었잖아. 그때 나 할머니 옆에서 잔 거 같아"


어머니가 아이들을 키워주시긴 했지만 내가 퇴근 후에는 어머니는 댁으로 가셨고, 가까이 살다 보니 할머니 댁을 방문해도 당일 방문을 하곤 했다.

아이들이 할머니랑 지내는 시간은 많았지만 함께 잠을 자는 건 아주 오랜만이었던 것 같다.


"할머니~"

"우리 ** 피곤하지 않아? 이제 자야지."

"피곤한데 나 할머니랑 더 얘기하고 자려고."

둘째 아이는 그렇게 할머니 옆에서 이야기 꽃을 피웠다고 한다.


남자아이라 말이 많은 편이 아닌데도 어려서 돌봐주신 할머니에 대한 정이 남다른 아이는 그렇게 할머니께 마음을 표현했다.

"조그마한 발로 걸어 다닐 때가 엊그제 같은데, 우리 **가 벌써 커서 할머니 일을 도와주고 얘기도 다정히 들어주니 어찌나 기특한지 모르겠더라."


자식들이 장성하고 결혼을 해 다들 가정을 이루니 이제 부모님만 계시는 집이 허전하다고 말씀하셨는데, 둘째 아이의 자상함으로 어머니는 마음이 많이 따뜻해지신 것 같다.


그날 일을 마치고 집에 와 보니 아이는 자기 방에서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20살이 되어 이제 성인이 되었건만, 여전히 내 눈에는 어릴 적 모습 그대로다.


늦은 모임으로 피곤하고 휴일이라 친구들과 놀고 싶었을 텐데, 할머니를 찾아가 시간을 보내고 일을 도와준 둘째 아이가 마냥 기특하고 예뻐 보이는 걸 보면 난 어쩔 수 없는 고슴도치 엄마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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