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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린 Aug 13. 2020

팬들에게 트레이드는 비즈니스가 아니다.

가린의 야구, 다섯 번째.

트레이드는 비즈니스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프로 스포츠, 특히 야구에서 활성화된 이 제도는 단순한 비즈니스에 불과하다. 각 팀의 니즈에 따라, 필요한 선수를 받고 필요할 선수를 내주는 것. 그래서 우승이라는 공동의, 그러나 단 한 팀만이 이룰 수 있는 목표에 이르는 것. 그것이 프로 팀의 숙명이고 사명이다. 그렇기에 트레이드는 팬들이 가장 기뻐할, 정상에 서기 위한 일련의 과정일 뿐이다.


모든 트레이드가 팬들을 납득시킬 수는 없다. 시즌마다 수 차례 있는 트레이드 중 팬들을 완벽히 만족시키는 건은 생각만큼 많지 않다. 그러나 팬들은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저 트레이드 소식을 듣고,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이길 강요받는다. 하루아침에 뛰는 팀이 바뀌는 선수들처럼, 팬들 역시 통보를 받는다.




한 건의 트레이드 발표가 있었다. KIA 팬들에게는 2020년 세 번째 트레이드다. 정들었던 선수를 세 번째 내주는 일이라는 뜻이다. 매 트레이드는 반향이 컸지만 이번에는 유독 후폭풍이 컸다. 지켜보는 제삼자 입장의 타 팀 팬들마저 "왜?"라는 의문을 품을 정도로. 


하루아침에 빨간색 유니폼을 벗게 된 선수들은 이 팀에서 데뷔했다. 한 선수는 데뷔 시즌 선발투수로 쏠쏠한 활약을 하다가 군대에 갔고, 제대 이후 좀처럼 폼을 찾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1군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데뷔 시즌만큼의 임팩트는 아니어도 맡은 역할을 적절히 수행하는, 그래서 올라오는 게 불안하지는 않은 선수였다.


다른 한 선수는 그 의미가 더욱 남달랐다. 우승 감독이 선수들을 갈아 넣으며 불안하게 시작했던 시즌에 혜성처럼 등장한 클로저였다. 평범한 우완투수, 대단히 빠른 직구나 기가 막히는 변화구를 가진 선수는 아니었으나 그 직구로, 과감하게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꽂으며 승리를 향한 마지막 아웃카운트 세 개를 책임지는 선수였다. 이 악물고 기합을 넣으며 타자와 승부하는 모습이 좋았던, 생애 첫 국가대표 승선 후 그 모습을 여실히 보여줬던 선수였다. 새 시즌 시작 후 팀 마무리들이 고전할 때에도 제 모습을 보여줬기에 더욱 기대가 됐다.


두 선수 모두 트레이드 발표 전날 마운드에 올랐다. KIA 타이거즈 소속 선수로, 빨간색 원정 유니폼을 입은 마지막 등판이었다. 공식 발표 후 누군가는 이 등판을 '쇼케이스'라 했다. 쇼케이스든, 쇼케이스가 아니든, 그 등판이 마지막인지 몰랐던 팬들은 그들의 모습에 환호하며 박수를 보냈다. 아쉬운 모습에 탄식하고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당연했다. 이들은 그다음, 또 그다음 경기에도 KIA 유니폼을 입고 뛸 선수들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충격적인 트레이드 중 유독 한 선수에게 관심이 집중됐다. 팀 필승조를 상징하고, 잠시 마무리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든든한 믿을맨인 투수. 나는 그 선수를 참 좋아했다. 지인의 최애 선수라서, 스트라이크를 잘 잡아서, 공격적인 투구를 펼쳐서. 그 모든 이유보다도 팀에 보인 애착이 고마웠다. 연고 하나 없는 수도권 출신 선수가, 지명 때부터 환하게 웃으며 팀을 향한 애정을 보였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팀을 사랑하고 붉은색 유니폼을 자랑스러워하는 그 선수가 좋았다.


마운드에서 씩씩하게 공을 던지던 그 선수는 팬들의 환호에 수줍게 웃었고, 늘 하나하나 신경 써서 팬 서비스를 했다. 팀 유튜브 콘텐츠에서 빼는 모습 한 번 보여준 적 없었다. 트레이드가 발표된 날, 그날 정오에 올라온 팀 유튜브에서 그 선수는 어린이 회원 선수와 통화하며 기쁨을 감추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부진한 모습에 쓴소리를 빙자한 비난을 하는 팬들이 있음에도 그는 늘 팬들에게 잘했다. 팀을 사랑하는 만큼 팬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는 선수여서 더 좋았다.


영영 헤어지는 것도, 던지는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도 아니지만 충격이 가시지는 않는다. 여전히 마운드에 오를 그 선수는 내가 사랑하는, 자신이 사랑하는 팀의 유니폼을 입지 않는다. 제 집처럼 오갔던 구장에 찾아와서도 홈이 아닌 원정 더그아웃에 들어가야 한다. 이미 비슷한 이별을 한 번 겪었지만, 그렇다고 익숙해지는 것은 아니다.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한 헤어짐에 얼마나 담담할 수 있겠는가.




객관적으로 KIA는 이번 시즌 대권에 도전하는 팀이 아니다. 가을야구 경험이 없는 선수들이 다수 포진됐고, 내외야에 적잖은 변화가 생겼다. 지금은 순위를 유지하고,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선수들의 경험을 쌓고, 어린 선수들을 육성해 몇 년 후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이 모든 트레이드의 원인인 비어있는 3루는, 그래도 어떻게든 버텨왔다. 현금 트레이드로 데려온 선수가 부진했을 때도, 또 한 번의 트레이드로 데려온 선수가 부상으로 이탈했을 때도, 빈 구멍이 휑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잘 지켰다. 빈자리를 막아준 선수가 체력 저하로 흔들리는 지금도 플랜 B가 없는 게 아니었다. 싹이 보이는 루키 선수를 올렸고 지켜봐야 할 상황이었다. 당장 하루 이틀 경기만 보고 선수를 내줄 상황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적어도 팬들 눈에는 그랬다.


불펜을 책임지는 두 투수의 이탈로 야수가 아닌 투수진에 더 큰 구멍이 생겼다. 필승조 중 가장 믿음직했던 선수는 부상으로 이탈했고, 남은 한 선수는 마무리 역할을 맡기에 추가적인 이닝을 소화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대승, 혹은 대패 중일 때 가비지 이닝을 먹을 선수도 부재하다. 새로 이 팀 유니폼을 입게 된 선수는 선발 자원이라 하는데, 그렇다면 이 빈자리는 누가 채울 것인가. 선발 자원은 1-2년 차 투수 중에서 가능성을 보인 이들이 많은데.


선수에 대한 애정을 떠나 전력을 따졌을 때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트레이드다. 팬들이 전문가인 단장과 프런트의 뜻을 전부 이해하지 못한 걸 수도 있지만, 그렇기에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했다. 말도 안 되는 이별을 안겨줄 거였다면.




KIA 팬들은 시즌 전 충격적인 이별을 한 차례 경험했다. 당연히 영구결번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선수의 이적은 쉽게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없는 사안이었다. 많은 팬들이 등을 돌렸다. 경기장에 오는 팬들의 유니폼에 마킹한 8번은 그런 의미였기 때문이다. 반드시 잡겠다며 단언하던 단장은 계약이 어그러진 후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때는 선수의 선택이었으니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직접 손으로 쓴 편지로 전한 마지막 인사와, 시즌 개막 전까지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있었기에 이제야 겨우 담담해졌다.


트레이드는 결이 다르다. 만약이라는 가능성을 생각하기 어렵다.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여유도 없이 그저 통보받는다. 팬들은 그때부터 이별을 실감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당일까지 같은 유니폼을 입고 같은 더그아웃에 앉아있던 선수를 하루아침에 떠나보내야 한다. 그렇게 정했으니까. 그렇게 발표 났으니까.


팀을 상징하던 프랜차이즈 선수를 놓쳤고, 팀에 남다른 애착을 가지던 주축 선수를 보냈다. 그 과정에서 이 팀이 이룬 전력 보강은 과연 무엇인가. FA는 어쩔 수 없었다 넘어가더라도, 그 선수를 보내면서까지 이 트레이드를 통해 얻는 것이 정말 큰 것인가. 팬도, 선수도, 모두 마음 다쳐가면서 진행해야 했나. 


팀 스포츠라 해도 그 팀을 이루는 근간은 결국 선수다. 팀을 사랑하다 보면 선수에 정을 붙이고 지켜보게 된다.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팀을 지켜보는 시간이 길어지면 한 선수의 데뷔부터 오랜 시간을 함께하게 되기 때문이다. 팬들은 경기 결과에 함께 울고 웃고, 때로는 화내며 선수들과 시간을 쌓아간다. 그 과정에서 더욱 정이 가고, 제 역할을 하면서 자리 잡은 선수들의 백넘버를 마킹한다. 그런 선수들을 시즌 전에, 그리고 시즌 중에 보냈다. 팬들이 더 이상 마음 놓고 선수에게 정을 붙일 수 있을까. 팀 차기 프랜차이즈도, 전력의 주축도 쉽게 보내는 팀인데. 어느 누구 백넘버를 등에 새길 수 있겠는가.


누군가는 이를 통해 성적을 올리면 떠나간 팬들이 돌아온다고 말할 것이다. 그것도 돌아올 팬이 있어야 가능한 말이다. 팬들이 사랑하는 플레이를 만드는 것도 선수의 역할이다. 팀을 상징하는 선수란, 그 팀이 추구하는 야구를 가장 잘 보여준 사람이다. 그런 선수를 떠나보낸 상처를 다른 선수로 치료하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말이 아니다. 이제 팬들은 어렵게 정을 붙이고도 걱정하게 될 것이다. 이 선수가 아무리 프랜차이즈라 불려도, 팀의 주축이어도, 조금만 기량이 떨어지는 기색이 보이면 언제든 타 팀과 댈 수 있는 카드가 될지도 모른다는.




팬들에게 트레이드는 비즈니스가 아니다. 비즈니스일 수 없다. 선수와 프런트에게는 업일지 몰라도, 팬들에게는 애착을 가지고 사랑하는 취미 생활의 일부다.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을 무작정 안고 버텨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일방적으로 통보받고, 단 하루 만에 달라진 환경을 받아들여야 한다. 반복되는 과정에 지치면 결국 등을 돌리게 된다. 당장 오늘 경기, 잠실 3루에 갑작스럽게 늘어난 빈자리들이 이를 증명한다. 경기 당일임에도 예매 창에 수없이 남아있는 3루 자리는 구단을 향해 말한다. 팬들은 지쳤다고.


전력보다, 승리보다, 우승보다 중요한 선수가 있다. 시즌을 함께 보내며 희로애락을 나눈 어떤 선수는 당장의 승리와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부디 구단은 이를 생각해주길 바란다. 모두에게 상처가 되고, 이해하기 어려운 이별을 더 받아들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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