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린의 야구, 네 번째.
마침내 지난 7월 26일부터 프로야구의 관중 입장이 시작됐다. 지난 8월 4일부터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의 관중 입장까지 시작되어 마침내 전 구장이 관중을 맞이하기 시작했고, 오는 8월 11일부터 입장 가능한 관중의 수를 구장 좌석의 10%에서 30%로 늘어날 예정이다. 여전히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소란스러운 세상에서, 그 나름대로 일상의 한 부분을 영위하는 방법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토록 오래 기다린 야구장을 나 역시 다녀왔다. 지난 8일과 9일, 광주에서 열린 KIA와 NC의 경기가 시즌 첫 직관이었다. 퍼펙트 수모 앞에서 만들어낸 극적인 역전승, 득점권을 허망하게 날리는 답답한 패배 등 경기 내용으로도 할 말이 많지만, 오늘은 코로나 시대가 만든 야구장 직관 풍경을 이야기하려 한다.
1년여 만에 도착한 챔피언스필드 바깥 풍경은 무척이나 낯설었다. 건널목부터 보이던 치킨을 비롯한 음식을 파는 가판이 없어 다소 휑하고 조용하기까지 했다. 각종 치킨 브랜드의 호객행위를 뚫고 매표소로 향하는 게 상당히 귀찮았기 때문에 이 점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물론 구장이 조용한 것은 단순히 가판이 없어서만은 아니었다. 전체의 10%밖에 관중을 받지 않기 때문에 구장 주변을 오가는 팬들의 모습도 현저히 적었다. 유니폼을 입고 단무지 응원봉을 들고 오가는 팬들이 없는 풍경은 확실히 낯설었다.
구장 가까이 진입하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매표소였다. 현재 챔피언스필드에는 외야석, 1루, 3루에 총 세 개의 매표소가 있고, 외야 매표소에서 운영하는 무인발권기와 3루 외야측의 무인 발권기에서 예매한 표를 받을 수 있다. 현장 판매를 진행하지 않는 지금은 세 곳의 매표소 모두 닫은 상태이기 때문에, 실물 티켓을 발권할 경우 반드시 외야 매표소에서 발권한 후 출입구로 이동해야 한다. 실물 티켓을 발권하지 않으려면 모바일 티켓을 통해 빠르게 입장할 수 있지만, 실물 티켓을 모아야 하는 나는 무인발권기에서 티켓을 뽑았다. 무려 이 시국에 드디어 이뤄낸 시즌 첫 직관인데, 실물 티켓이 없으면 아쉽지 않은가.
관중을 받지 않는 외야 게이트를 제외한 전 게이트가 모두 오픈된 가운데, 입장시에 네이버/카카오톡 QR 코드 체크인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서울에서 전시회를 보러 갔을 때 미리 경험했던 나는 네이버 QR 체크인을 통해 입장했다. 체온 체크는 기본이고, 늘상 하던 소지품 검사도 그대로 진행했다. 관중 수가 적어서인지, 그만큼 직원이 배치돼서인지, 혹은 경기 한 시간 전 즈음 입장한 내가 빨랐던 건지, 입장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아마 경기장에 빨리 가는 습관이 한 몫 했으리라 생각한다.
지난 시즌 처음으로 SK행복드림구장에 갔을 때 가장 부러웠던 것 중 하나가 바로 포토카드였다. (시리즈마다 각기 다른 선수의 포토카드를 만드는 덕에 SK 팬들은 꽤나 고통스러워했던 거 같지만.) 마침내 이번 시즌부터 KIA도 포토카드 기계를 들였으나, 공식 SNS를 통해 제대로 홍보하지 않은 덕에 놓칠 뻔했다. 지인이 말해주지 않았다면 이 귀한 포토카드를 뽑지도 못하고 날릴 뻔했다.
포토카드는 중앙지정석 뒤쪽 통로에 총 네 대의 기계에서 뽑을 수 있다. 사진 속 양현종 포토카드가 기본이고, 매 시리즈 한정 수량으로 나오는 스페셜 카드가 있다. 스페셜 카드는 경품 추첨을 별도로 할 뿐만 아니라, 시즌 종료 후 수집한 카드로 따로 추첨을 한다더라. 그러나 스페셜 포토카드를 뽑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투자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한 장만 뽑고 순순히 포기했다. 어쨌든, 챔피언스필드 개막 시리즈인 LG전에는 윌리엄스 감독이었고, 이번 NC전은 양현종이었다. 기본 포토카드로 고를 경우 4,000원이며 티머니 교통카드로 뽑을 경우 7,000원이다. (사실 티머니 교통카드로 뽑을 수 있다는 건 전광판 광고를 보고 나서야 알았다.)
포토카드를 뽑고 좌석으로 내려가기 전 티켓 확인을 받을 때 직원이 물었다. "혹시 가방에 음식물이 있나요?" 라고. 관중석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고 음식물 섭취를 금지하기 때문에 한 번 더 묻는 것 같았다. 음료수만 있다는 내 말에 직원은 음료수는 괜찮다며 안내했다. 실제로 PT병에 든 음료뿐만 아니라 테이크아웃 커피잔도 편하게 들고 갈 수 있었다. 다만 음료 중 맥주가 포함되지 않아서, 맥주는 관중석 입장 전 마시고 들어와야 한다는 점이 아쉬웠다.
육성 응원을 할 수 없다는 점, 관중석에서 음식물을 섭취할 수 없다는 점을 제외한 직관 환경은 무척이나 쾌적했다. 좌우로 네 좌석, 상하로 두 줄의 간격을 두고 관중들이 앉기 때문에 가방을 둘 여유가 있다는 게 좋았다. 어딜 가든 보부상인 나는 커다란 가방을 안고 보거나 발 아래에 내려두는데, 가방을 안고 있으면 경기 상황에 따라 나도 모르게 기립하기가 상당히 어정쩡했고, 발 아래에 내려두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들이 가방을 적시는 경우가 허다해서 상당히 불편했다. 그 덕에 필요에 따라 가방용 자리를 따로 예매하기도 했으니까. 지금은 소지품만 많지만, 한창 사진까지 찍을 때는 카메라 장비까지 더해져 가방 자리가 절실했다. 지금은 정부 방침에 따라 관중간 거리 확보를 해야 해서, 그 덕에 생긴 자리를 가방 자리로 활용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시국에만 누릴 수 있는 소소한 편리함이다.
응원가를 부르고 신나게 환호할 수 없다는 점은 정말 아쉽고 강제 묵언수행하는 기분이었으나, 고요한 관중석은 생각보다 쾌적했다. 나는 현장에서 상당히 격하게 욕을 섞어가며 야구를 보는 편인데, 그렇게 하지 않으니 스스로 화를 누르기에도 제법 좋았다. 동시에 그간 내가 주변 관중들이 불편할 정도로 욕을 했던 건 아닐까 돌아보기도 했다. 9일 직관 당시 좌측으로 앉은 웬 아저씨가 뜻대로 풀리지 않는 경기에 화를 표현하고, 환호하는 상대 덕아웃을 향해 조용히 하라며 소리지르는 것을 보니 더더욱 그랬다. 앞으로는 얌전히 야구 봐야지. 반성한다.
하지만 환호할 수 없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KIA는 8일 경기에서 7회 1사까지 출루 한 번 하지 못해 퍼펙트를 당하고 있었는데, 팀 첫 안타이자 첫 득점인 터커의 솔로 홈런이 터질 때는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환호를 억누르느라 애를 먹었다. 이어지는 역전 상황에서는 오죽했을까. 그저 입을 틀어막고 온몸으로 좋아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것처럼 9일 경기는 아주 죽을 쒔지만.)
관중석에 음식물 반입이 안 되기 때문에, 경기가 안 풀리는 틈을 타 잠시 허기진 배를 채우기로 했다. 챔피언스필드에는 음식을 파는 구역 사이사이 취식 코너가 마련돼 있어서 그곳에서 음식을 먹으며 야구를 볼 수 있다. 현재는 유동인구가 많은 구역의 취식 코너를 막고, 운영하는 취식 코너는 칸막이를 만들어 한 칸씩 간격을 두고 음식을 먹을 수 있게 세팅해놨다. 덕분에 음식을 먹으며 야구를 볼 수는 없어졌다.
감염을 막기 위해 시행되는 조치들은 의외의 쾌적함을 만들었다. 이는 관중수가 한참 적다는 것도 한 몫 했지만, 생각과 달리 직관에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요소는 없었다. 비록 서너 시간 이상 야외에서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점이 답답했으나 이는 코로나 시대에 어디에서든 이뤄지는 행위이기 때문에 충분히 감안할 수 있었다. 지금 당장 야구장에 갈 수 있으니 그걸로 충분했다. 아마 이번 시즌이 끝날 때까지, 혹은 다음 시즌 초반까지 이와 같은 풍경 속에서 야구를 봐야 할 테니 적응해야겠지. (이틀 연속 직관했더니 어느 정도 적응을 한 거 같지만.) 쾌적한 환경도 좋지만, 하루 빨리 시국이 종료돼 마음껏 환호하고 응원가 부르며 직관하고 싶다. 당연했던 야구장의 풍경을 다시 마주하기까지 얼마나 걸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