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7. 25 pm 4:54
장마도 끝 무렵이다. 간간이 쏟아지고 축축했던 날들도 점점 줄어든다. 땅을 적시던 장마는 물러가는 모양인데 집안은 새롭게 젖어들기 시작했다. 딸아이의 배변연습 때문이다.
두 돌 정도가 지나면 엉덩이를 부풀리며 늘 차고 있던 기저귀를 떼고 변기에 배변하는 방법을 익히기 시작한다. 아이가 말을 하거나 스스로 기저귀를 벗으려고 하면 그때가 된 것이다. 하지만 딸아이는 똥 쌌어, 라며 배변이 끝난 후에야 나에게 알리곤 했다. 아직 기저귀를 벗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몇 개월 전부터 사놓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유아용 변기는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거나, 가끔 내가 볼 일을 볼 때 그 곁에 앉아 흉내를 내며 앉아있는 정도였다. 배변연습을 억지로 시키는 것이 아이의 인격 형성에 좋지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얘기를 들었었고, 딸아이에게 빠른 성장을 기대하는 나도 아니거니와, 예전엔 일찍 배변연습을 시켜서 돌 때는 기저귀를 다 뗐다는 할머니의 육아지론에 찬성하는 입장도 아니었다. 혹시 내가 할머니의 이른 배변연습으로 인격 형성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볼 뿐이었다.
다만, 무더운 날씨와 딸아이의 예민하고 여린 엉덩이 피부 때문에 배변연습을 더 이상 미룰 수가 없게 되었다. 여름의 초입부터 기저귀 속에 손을 넣어 엉덩이를 긁던 것이, 피가 나고 여기저기 흉터를 만들어 놓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집에선 기저귀를 벗기고 면 속옷을 입혀두면서, 딸아이는 어쩌면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배변연습을 시작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 덕에 흉터가 남은 엉덩이는 뽀송해졌지만, 집안은 딸아이의 흔적들로 뽀송해질 수가 없었다.
배변연습 첫날, 바로 변기에 앉아 소변을 눌 때는 왠지 모를 뭉클함에 마음이 뿌듯했었다. 딸아이가 다 컸구나 싶기도 했고 배변연습, 그까짓것 곧 끝나겠구나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런데 변기에 앉아 누는 건 대여섯 번 중에 한번. 끝나기는커녕, 곧 집안 전체가 딸아이의 화장실이 되어버렸다.
물과 과일을 잘 먹는 딸아이는 시간마다 소변을, 그것도 적지 않는 양을 누었고 그때마다 기저귀 대신 입혀놓은 면 속옷을 벗겨 빨고 바닥을 닦아야 했다. 맨바닥에 소변을 누는 일은 드물었다. 늘 딸아이의 주방놀이나 장난감들이 어지럽게 널려진 매트 위에서 놀다가 소변을 누웠으므로 집안 곳곳은 물론 딸아이의 장난감에도 지린내가 뱄다. 그때마다 딸아이에게 태연하고 너그러운 척하며 다음엔 꼭 변기에 싸자,라고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예민한 딸아이에겐 그것이 은근한 스트레스가 되었는지 그렇게 말할 때마다 딴청을 피웠다. 며칠 전까진 기저귀에 마음껏 소변을 누고 대변을 보곤 했는데 갑자기 소변을 눌 때마다 젖어드는 속옷과 장난감들, 걸레를 들고 날렵히 뛰어드는 엄마를 보는 것도 부담이 되었을 터였다. 딸아이의 입장에선 아주 커다란 변화와 갑작스런 반응에 얼마나 당황스러울 노릇이란 말인가. 그래서인지 매일 두 번씩 대변을 보던 딸아이가 오늘은 이틀 만에 대변을 보았다. 응아 쌌니? 응아 마려워? 하고 자꾸 물어보고 변기로 유도하는 내 행동이 여간 부담스러웠던 모양이었다. 하루에 네다섯 번씩 속옷과 걸레를 빨고 바닥을 닦을 땐, 딸아이도 나도 아직 준비가 안 된 것 같아 그냥 기저귀를 채울까 싶다가도 딸아이의 짓무른 엉덩이와 줏대 없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엄마의 태도도 좋지 않겠다는 생각에 다시 마른 속옷을 입힌다. 다행히 해가 짱 하게 뜬 날씨 탓에 빨래가 금세 마른다. 집안도 곧 짱 하게 마르는 날이 오겠지 싶다.
사계절 속에서 보면 장마는 짧고 일상에 불편을 주지만 꼭 필요한 계절인 것처럼 지금 배변연습 중인 이 시기도 딸아이의 인생에서 짧지만 분명 중요한 시기일 것이다. 물론 모든 걸 기억할 순 없겠지만, 딸아이가 크면 일상적으로 변기에 배변을 해온 게 이러한 서툰 과정과 수많은 연습을 통해 배우게 된 것임을 알려줄 것이다. 너는 그냥 나고 자란 게 아니란 걸. 숨 쉬고, 울고, 먹고, 싸는, 지금 네가 무심코 하는 모든 것들이 온몸으로 차근차근 배우고 익힌 성장의 결과물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다. 그러니 잘 배우고 잘 자라줘서 고맙다고. 앞으로 네가 겪을 모든 것들도 네가 지나온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온몸으로 맞닥뜨리고 실패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어느새 늘 그래왔던 것처럼 익숙하게 해내게 될 거라고, 그러니까 힘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