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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inko Oct 22. 2021

집과 함께 사라지다

낮엔 한여름만큼 뜨겁고 해가 지면 으슬으슬할 정도로 공기가 차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가로등으로 훤히 밝혀져야 하는 거리는 계절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해 아직 어둠이 가득하다. 환절기다. 

이때가 되면 옷장 뒤지는 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삶의 많은 부분이 비대면으로 바뀐지라 옷 갈아입을 일이 별로 없지만 이런 계절엔 언제든 쌀쌀해질 수 있는 날씨를 대비해 늘 여분의 옷을 챙겨서 다녀야 한다. 그런데 옷장을 아무리 뒤져도 입을 옷이 없다. 옷걸이를 하나하나 확인하고 서랍장 속까지 샅샅이 뒤져봐도 맘에 드는 옷이 없다. 이런 상황이 닥치면 이사 오면서 의류함에 겨우겨우 쑤셔 넣었던 한 무더기 옷이 떠오른다. ‘후드 티는 버리지 말걸 그랬나’, ‘이 날씨엔 그 청자켓이 딱인데’와 같은 후회가 버려진 옷의 빈자리를 차지한다. 


조금이라도 이삿짐 차에 들어갈 물건을 줄이기 위해 매번 이사 갈 때마다 수많은 물건들이 가차 없이 쓰레기봉지와 재활용 박스 안으로 처박힌다. 이사 다니는 횟수가 늘 때마다 버려지는 물건의 개수는 비례한다. 그런데 어째 물리적인 집 크기는 늘어나도 공간은 늘 좁기만 하고 이사 온 물건들이 새 보금자리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물건을 하나 살 때에도 고민을 오래 하게 된다. 신발을 한 켤레 사도 신발장에 들어갈 공간이 있는지부터 생각하고 책을 살 때에도 이사 갈 때 이 많은 책을 어떻게 또 옮기나 걱정부터 된다. 


이사 다닌 횟수로 치면 나보다 한수 위인 엄마 아빠에게도 소유물을 갈아 치우는 행위는 연례행사다. 아빠는 못 버리게 하고 엄마는 버리라고 하고 매번 실랑이를 벌인다. 난 엄마가 입던 옷을 물려 입고 부모님이 쓰던 가구를 물려받는 사람들이 참 부러웠다. 부모님이 살아온 세월이 묻어난 물건은 다른 어떤 물건과도 비교할 수 없다. 하지만 내 부모님의 추억이 깃든 물건들은 반복되는 이사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딱 3040 세대의 부모님 세대까지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즈음에 내 집 마련이 가능했던 것 같다. 주변 친구들만 봐도 부모님이 한곳에 자리를 잡고 몇 십 년이고 사는 경우가 꽤 있다. 태어나서부터 독립할 때까지 한 집에서 쭉 사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그저 신기했다. 평생 살아온 집이 있다는 말은 곧 출가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서도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집, 돌아가면 나의 어린 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집이 있다는 말이다. 그게 얼마나 큰 복인지 가진 사람들은 잘 느끼지 못한다. 어릴 때 쓰던 방안엔 어린 시절을 가득 채운 일기장과 직접 그린 그림이 그대로 있고 아끼던 장난감과 추억의 물건들이 가득 남아 있다. 침대도 그대로, 책상도 그대로, 낡았지만 온전히 보관되어 있다.


이사를 많이 다니는 사람들에게 늘 그 자리에 남아 있는 부모님 집은 짐을 보관해주는 기특한 곳이기도 하다. 짐은 왜 버려도, 버려도 늘어나기만 하는 건지 요상한 일이다. 이삿짐을 싸면서 1차로 옷을 한 트럭 버려도 이사 간 집에 도착한 옷 보따리는 여전히 한 트럭이다. 짐을 정리하며 옷을 한차례 더 솎아내고 나면 옷장에 여유 공간은 생기지만 계절이 바뀔 때마다 괜히 버렸다고 후회되는 옷들이 자꾸만 떠오른다. 결국 비슷한 옷을 또 사게 되고 다시 이사 갈 때가 되면 옷을 무더기로 버리는 과정이 반복된다. 


난 분명 버리지 않았는데 물건이 감쪽같이 사라질 때도 많다. 이사를 다닐 때마다 엄마와 가장 많이 싸운 이유는 사라진 방과 함께 사라지는 물건들 때문이다. 즐겨 들고 다니던 가방도 사라지고, 고이 모셔놨던 책도 사라진다. 사라지는 물건이 늘어날 때마다 엄마와 싸우는 횟수도 늘어나고 엄마에게 고함치는 내 목소리도 커진다. 엄마는 계속 안 버렸다고 하는데 그러면 이삿짐 아저씨들이 버린 것도 아니고 대체 왜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만 모두 사라지는 건지. 몇 번 이런 일이 반복되고부터 나는 내 짐은 확실하게 내가 챙긴다. 그리고 짐이 모두 안전하게 도착했는지도 확인한다. 이렇게 해도 없어지는 게 종종 있지만. 


행방불명된 소지품 중 나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던 건 나의 중학교 시절을 함께해준 카세트테이프들이다. 방과 후 방바닥에 엎드려 음악을 들을 땐 무채색인 내 삶이 알록달록해졌다. 영어도 할 줄 모르면서 팝송을 가사지가 찢어져서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반복해 들으며 가사도 모조리 외웠다. 그런데 그 소중한 카세트테이프들이 몽땅 자취를 감췄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쯤이었다. 또 이사를 한 직후였고 다섯 식구의 살림이 뒤엉켜 정리하는 중이었다. 문득 카세트테이프 생각이 났다. 몇 년 전부터 눈에 안 보이길래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다용도실이나 보일러실 박스 더미 아래쪽에 묻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그런데 짐을 하나하나 정리하다보니 정말 없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 곁에서 사라진지 이미 몇 년은 된 것 같았다. 눈이 뒤집어졌다. 너무 슬펐고 너무 화가 났다. 나도 모르게 또 엄마에게 소리를 질렀다. 엄마는 계속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엄마의 마음도 이해는 된다. 온 가족이 자기 물건을 움켜쥐려고만 하니 집은 좁고 놓을 자리는 없다. 엄마가 욕먹을 각오를 하고 과감하게 버려야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집안은 난장판이 될 테니까. 그렇게 늘 우리는 엄마만 탓했고 엄마만 잘못한 사람이 되었다. 


아끼는 가구와 음악 장비도 반복되는 이사 끝에 상처를 많이 입었다. 단지 디자인 때문에 구입했던 눈부시게 하얗던 모니터 스피커는 청담, 성수 1, 성수 2, 성수3, 경기 광주, 옥수동까지 거처를 옮기면서 곳곳에 스크래치가 생기고 모서리가 떨어져 나가며 만신창이가 되었다. 거금을 주고 맞춤제작한 원목책상도 이삿짐센터 아저씨들의 거친 손길에 몸 곳곳 긴 흉터를 입었다. 


내 인생에 있어서 앞으로 이사를 최소 다섯 번은 더할 것 같은데 그때마다 사라지는 추억과 기억을 어떻게 붙잡아둘 수 있을지 고민한다. 당장 몇 달 뒤에 또 이사를 가야하는데 얼마나 많은 추억을 버리고 가야할까. 어린 시절의 추억과 기억은 집과 함께 바람처럼 사라졌다. 이제부터라도 새로운 추억을 쌓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다행히 산 날보다 살날이 더 많으니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 짧은 시간에도 큰 추억은 만들 수 있으니까. 컴퓨터 휴지통도 틈날 때마다 비워줘야 하듯 한번쯤은 과거를 탈탈 비워주는 것도 좋다. 과거를 추억하는 것도 좋지만 미래에 있을 날들을 기대하고 소망하며 사는 것도 좋다. 


이 집에서 보내는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이 가을을 어떻게 하면 더 크고 풍성하게 보낼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겠다. 집과 짐은 사라져도 내 마음속에는 깊이 남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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