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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inko Oct 22. 2021

부러워서 그런다

‘사람이나 동물이 추위, 더위, 비바람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 살기 위하여 지은 건물’

‘가정을 이루고 생활하는 집안’


국어사전이 정의하는 집이다. 이제 집의 정의도 바꿔야할 때가 온 것 같다. 


‘불로소득을 위해 개발호재가 있는 곳을 미리 매입해 개발이 이루어진 후 매도하는 것’ 

‘피터지게 싸워서 가질 수 있지만 가지지 못한 자는 도태되게 만드는 것’


이 세태가 집의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그동안 나를 거쳐 간 수많은 공간을 되새겨보게 만들었다. 잠시나마 나를 품어주었던 그 집, 그 모든 공간을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을의 입장을 강조하고 을의 입장만 대변하다보니 의도치 않게 집을 소유한 이들이 아무런 걱정도 없이 편히 사는 사람들, 집이 주는 안락함보다 돈을 좇는 사람들로 비춰질까 걱정된다. 하지만 인간사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니 그런 의도가 아니라는 걸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글 솜씨가 부족한 난 아직까진 내가 경험한 것만 쓸 수 있다. 다주택자도 여러모로 애환과 우환이 많다 들었지만 직접 경험해본 적이 없기에 아직까진 그들을 대변할 수 없다. 다주택자의 입장에서도 글을 쓰는 날이 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다주택자와 무주택자, 정반대의 이익집단이 서로 죽겠다고 난리니 이거 뭔가 단단히 잘못되긴 잘못되었다. 부동산 관련 뉴스는 잠잠할 날이 없고 관련 비리 역시 득시글하다. 정치인들은 자신을 뽑아주면 부동산 시장을 안정화하겠다고 큰소리를 뻥뻥 친다. 큰소리 쳐놓고 지킨 사람이 역사상 몇 명이나 되는지는 모르겠다. 


집의 몸값이 치솟고 있다. 그 안에 사는 인간의 몸값보다 집의 몸값이 더 비싼 것 같다. 부동산에서 집을 광고할 때 내세우는 형용사는 집이 가진 개성과 특성이 아닌 개발호재, 투자가치가 되었다. 부동산을 잘 공부해서 평범한 노동으로는 만져보질 못할 돈을 만질 수 있다면 물론 아주 성공적인 투자다. 이제 다달이 받는 급여만으로는 중산층에도 못 낀다고 하니 너도나도 주식과 부동산에 몰려드는 건 당연한 현상이다. 지하철 역 하나 생기면 몇 억씩 오르고 사고팔고 매달리고 지지고 볶고 집 때문에 온 나라가 난리다.


태어날 때부터 집이 각 사람에게 착 달라붙어 태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달콤하고도 위험한 포퓰리즘의 유혹이다. 소확행은 싫다면서 포퓰리즘에 넘어가려고 하고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얼마나 나약한지. 하지만 나는 안다. 세상에 공짜는 ‘절대’ 없다는 것을. 설마 선량한 국민들을 포퓰리즘으로 미혹하려고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게 만든 건가?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니 음모론에까지 혹한다. 보이지 않는 검은 손이 조종하는 부동산 세계가 보이는 것만 같다. 


황금알 낳는 거위보다 더 비싸고 더 튼튼한 알을 쑥쑥 낳는 집이 손 틈 사이 모래처럼 자꾸만 멀어진다. 평생 내 집 없이 살아온 나에게 집은 아늑한 쉼을 제공하는 곳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그런 소망마저 사치인가 싶다. 정말 내 집이 있다면 나만의 온전한 공간을 제공해주는 것만도 고마운 일인데 그런 집이 돈까지 벌어다주는 건 아직은 꿈도 못 꿀 일이다. 물론 벌어다주면 마다하진 않겠지만. 






와인바 매니저인 친구의 일터는 일일 연속극 뺨치는 다이내믹한 무대다. 술이 들어가면 목소리가 두 배는 더 커지는 손님들 때문에 의도하지 않고 원하지 않아도 그들의 대화가 어쩔 수 없이 귀에 들어와서 온갖 사람 사는 이야기를 다 듣는다. 


하루는 직장인 네 명이 회식을 하러 왔다. 그 중 한 남성이 취해서 그런 건지, 취한 척을 하고 그러는 건지 집 자랑과 돈 자랑을 시작한다. ‘내가 도곡동 T 팰리스에 사는데...’부터 시작해 아내 선물로 얼마를 썼는지 등등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 이야기를 속사포로 꺼내놓는다. 

잠잠히 듣고 있던 나머지 세 명 중 한명이 역시 취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취한 척을 한 건지 갑자기 탁자를 탕 치고 일어선다. 그리고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친다. “진짜 적당히 좀 합시다!” 주변 테이블에 앉아 있던 손님들도 고개를 돌리고 분위기는 순식간에 어두워진다. “돈이 그렇게 많으면 뭐하냐 쓰질 않는데!” 남자는 작정한 듯 쌓아뒀던 말을 쏟아냈다. 상사의 얼굴이 점점 굳어지고 그 역시 지금 뭐하는 거냐며 언성을 높이기 시작한다. 

화가 난 남자가 잠시 숨을 고르고 말투가 조금 누그러지더니 자신이 왜 이러는 줄 아냐고 묻는다. 모두의 시선이 서 있는 남자에게 향한다. 여기까지 들었을 땐 나도 왜 그랬는지 궁금했다.

“내가 부러워서 그래요!”

돈 많은 것, 좋은 집 사는 게 너무 부러워서 그러는 거라고 했다. 굳어있던 상사의 얼굴이 부드러워지고 둘의 언쟁은 훈훈하게 마무리 된다. 계산은 그렇게 돈 많다고 자랑하던 상사 대신 그가 너무 부러워서 공공장소에서 언성까지 높인 직원이 하고, 넷은 화기애애하게 와인바를 떠난다. 


나도 부러워서 그런다. 부동산 투자에 눈이 밝아 일반적인 노동으로는 벌 수 없는 금액을 손에 쥐어본 사람들이 부럽다. 그 돈을 씨앗으로 삼아 커다랗고 몸통이 굵은 나무를 무럭무럭 자라게 한 사람들이 부럽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물리적으로 이해될 정도로 부럽다. 그래서 이렇게 글이라도 써서 속을 풀어보려고 하는 거다. 술취해 공공장소에서 목소리 높일 용기가 아직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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