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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inko Oct 23. 2021

못생긴 집이 싫어

A.D. 64년, 로마는 로마 역사상 가장 참혹한 대재앙으로 불리는 대화재에 무너진다. 거의 일주일간이나 계속된 화재로 로마 시민들은 보금자리와 일터를 잃고 사람들은 모든 것을 앗아간 화재의 원인을 찾는데 혈안이 되었다. 이 끔찍한 재앙이 도시를 뒤덮을 당시 로마는 저 유명한 네로의 치하 아래 있었고 화살은 네로에게 향했다. 시민들은 대체 왜, 절대 권력을 가진 황제 네로를 방화범으로 지목했을까? 


고상하고 세련된 아름다움을 사랑하던 네로는 로마의 구불구불하고 좁은 거리를 매우 싫어했다. 그는 로마를 모두 헐고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재건하고 싶어 했고 그런 소망을 공공연히 드러내왔었다. 그 와중에 화재로 로마의 행정구역 14개중 3개는 완전히 전소되고 7개가 피해를 입으면서 로마가 정돈된 모습으로 새롭게 재건되었으니 그의 소행으로 여기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백성들이 보내는 찬사를 갈구하고 인기를 먹고 살던 네로는 자신에게 등을 돌리는 로마시민들의 마음을 하루빨리 돌려야했다. 하루빨리 다른 이에게 방화범 누명을 덮어씌워야 했다. 이번엔 화살이 기독교인들에게로 향한다. 이로써 네로의 악명 높은 기독교 박해가 시작된다. 화재는 우연히 일어났다는 게 현 역사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아무 관련 없는 기독교인들만 괜히 희생당한 사건이다. 로마 대화재 사건은 영화 <쿼바디스>에 생생히 묘사되어 있다. 


(당연히) 네로 정도는 아니지만 나도 못생긴 거리와 도시를 싫어한다. 못생겼다는 말은 예쁘거나 잘생겼다는 말의 반대가 아니다. 아름다움과 매력, 개성이 결여되었다는 말이다. 아무리 서울 한복판 노른자 땅에 있다 해도 나무 한 그루 없고 다닥다닥 붙어서 해도 들지 않는 집은 못생겼다. 똑같은 외장재에 똑같은 인테리어 디자인으로 구분조차 되지 않는 집도 못생겼다. 간판공화국답게 건물에 덕지덕지 붙은 간판도 건물과 거리를 못생기게 하는 데 일등공신이다. 


주택 이름은 어떻게 그렇게 천편일률적인지 죄다 OO팰리스, OO쉐르빌, OO리치빌이다. 눈에 잘 띄게 굵게 쓴 글씨체도 비슷, 역시 눈에 잘 띄게 금색으로 화려하게 빛나는 모습도 비슷하다. 금빛 빌라 이름의 폰트 사이즈는 날이 갈수록 커지는 중이다. 적당한 크기의 심플한 간판이 훨씬 더 효과적이고 매력적이라는 걸 왜 모를까. 왜 건물주들은 모두 비슷한 취향을 가진 걸까. 건물주가 아니라 시공사와 디자인 업체가 비슷한 취향을 가진 게 더 맞는 말일 수도 있겠다. 


우후죽순으로 개발된 교외지역을 보면 마음이 쓰라리다. 이제 막 개발이 시작되어 집값이 본격적으로 오르기 직전, 경기도의 한 지역에서 2년간 살게 되었다. 분당생활권이라는 슬로건을 야심차게 내세운 그곳은 분당으로 가려면 20분에 한 대오는 마을버스를 타고 막힐 땐 40분을 나가야 하는 곳이었다. 모든 불편을 차치하고서라도 아파트 자체는 매우 마음에 들었다. 신축 아파트에는 처음 살아봤는데 왜 사람들이 아파트, 아파트 외치는지 물씬 느낄 수 있었다. 깨끗하고 편리한 시설은 말할 것도 없고 거실에 붙은 작은 테라스에서 산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고 밤에는 산 공기를 맡았다. 완벽한 환경이다. 


문제는 동네였다. 산책하거나 걸어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2면은 막다른 길이었고 한쪽 길은 복잡한 바깥세상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길이었기에 미지의 나머지 한 길이 나의 희망이었다. 그 희망의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궁금했다. 언덕이 꽤 높아서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큰맘 먹고 언덕을 넘어가보기로 했다. 경사가 높아 허벅지가 불끈불끈 해졌다. 언덕을 넘어서자 다행히 또 다른 막다른 길이 아닌 이웃 동네가 나왔다. 공기 좋고 한적한 마을을 기대하던 나는 단번에 실망했다. 사방이 공사 중이었고 거리는 먼지 투성이였다. 주변 건물과의 조화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건물들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 빽빽한 건물만큼 자동차도 많았고 그만큼 매연도 많았다. 큰맘 먹고 나선 산책길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오는 것으로 끝났다. 


1년 전 떠나온 그 동네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얼마 전 뉴스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내가 살던 곳과 아주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 일이다. 준공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빌라 바로 앞에 다른 건물의 공사가 시작되면서 큰 문제가 생겼다. 얼마나 부실하게 공사를 했는지 지반이 침하되어 기존 빌라가 기울었고 주민들은 두 달째 임시 거처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대체 이런 일이 생기도록 시청에서는 뭘 하고 있던 건지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온다. 얼마나 공사를 날림으로 하면 이런 일이 생길까. 두 달 동안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지내고 있는 주민들에게는 그 어떤 보상도 없다고 한다. 

교통문제는 전혀 해결될 기미가 안 보이는데 아파트와 빌라는 매일 새로 지어진다. 시간, 예산, 환경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경우도 많겠지만 허가 내주는 데에 어떤 규칙이 있기나 한 건지 알 길이 없다. 


요즘엔 중학생 때부터 공무원 준비를 한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연금에 어마어마한 보너스까지 군침 도는 직업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공무원'이라는 것이 ‘국가 또는 지방공공단체의 사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라는 말인데 시험을 위해 공부하고 준비하는 기간 내내 책상 앞에 붙어만 있으면서 어떻게 국가나 지방에서 돌아가는 사정을 알 수 있을지가 미지수다. 개발허가를 내줄 때 주변 환경을 고려해 외관이나 높이 등을 규제하는 건 책상에 앉아서 펜대만 굴리는 이들에게 너무 큰 기대인가. 직접 돌아다니면서 지역 사정이 어떤지 살피고 몸소 확인하는 공무원이 있긴 있을까(있다면 사과한다). 탁상행정이라는 프레임이 억울하다고 생각한다면 행동으로 보여주면 된다. 제발 내가 위에 구구절절 나열한 말들이 억측이며 누명이기를 나도 바란다. 


미적으로 감각 있는 도시의 재건을 말하며 네로를 예로 들다니 좀 과격하게 들릴 수 있겠다. 하지만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사람 사는 동네는 점점 더 못생겨질 것이기 때문에(부자 동네는 점점 더 예뻐지는데) 입을 닫고 있을 수 없었다! 네로가 꿈꿨던 것처럼 도시의 재건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아직 기회는 있다. 이미 지은 건 어찌할 도리가 없지만 앞으로 어떤 건물을 지을 지는 정할 수 있다. 


네로는 불타는 로마를 보며 트로이가 멸망하는 모습에 대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확인되지 않은 루머일 뿐이지만 우리나라가 못생겨지고 더 못생겨지면 이런 모습을 상상하게 될지도 모른다. 비싸지 않은 집도, 비싸지 않은 동네도, 새로 개발되는 지역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 미를 아는 우리는 아름답고 매력적이며 개성 있는 집과 동네에 살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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