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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ie Aug 10. 2022

보길도에서 공룡알 해변과 노을을 본 대가로

 - 무위사에서 구례까지, 2017 겨울


  공룡알 해변까지 가는 길도 헤매고 헤매다 겨우 도착했다. 아! 연료도 떨어져 가는데 여긴 주유소도 없고, 엘피지 주유소는 완도까지 가야 한다는데. 연료 걱정을 하며 헤매다가 드디어 공룡알 해변 마을에 들어섰다. 전에 왔을 때 참 인상적이었지... 세연정처럼.


  마을을 지나 해변에 이르렀다. 그런데 사람들이 웬 돌탑들을 그렇게 쌓아 놓았는지, 전에 왔을 때는 아무 데나 막 커다란 알들이 툭툭 떨어져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아름다웠는데.


  왜 사람들은 이런데 오면 자꾸 탑 같은 걸 쌓으려 하고 흔적들을 남기려고 할까? 혼자 여행하는 내가 헤아리기에는 먼 일인 것 같다. 그것은 혼자가 아닌 둘이서, 또는 여럿이 함께 왔을 때, 가까운 사이일수록, 그 시간 그 자리에 함께 했었다는 기억을 남기고 싶은 마음인 것 같다.








  그냥 혼자 가만히 앉아 있는 게 바람이라는 정우에게 내 사진과 바닷소리를 담은 동영상을 보냈다. 사진을 찍다 보니, 어디든 혼자 가도 심심하지 않다. 아래쪽에 파도와 부딪히는 돌들은 거의 투명할 만큼 매끄럽고 둥그렇다. 어떻게 돌들이 이렇게 둥글어질 수 있지?


  더러 함께 온 관광객들은 어디든 휙 하니 둘러보고 금방 자리를 뜬다. 어제 중리 해안에서 유일하게 마주쳤던 커플 관광객도 그랬다. 나도 다른 누구랑 왔으면 그랬을까? 내가 일어설 무렵 처음으로 도착한 네 사람이 그랬다. 그들 빼곤 내내 나 혼자였다.
















  돌들이 말갛게 씻어서 말린 듯이 깨끗했고, 아무도 없이 나 혼자 있고, 나는 그것이 좋았다. 그래도 셀카는 찍어 지인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이런데 앉아서 하루를 놀면 참 좋겠다. 책도 읽고 드러누워 일광욕도 하고. 단, 좀 춥다. 어제보다는 상당히 따뜻해졌지만.


  이제 전망대로 가서 전국 최고라던 그 노을을 보자. 어제 해변에서 추위에 떨어봤던 나는 패딩과 야상을 겹쳐 입고 머플러 두 개에 담요까지 장착해서 차 밖으로 나갔다.


  높은 곳에서 바라다본 탁 트인 바다는 노을을 보기에 참 좋은 곳이었다. 그러나 수평선과 평행으로 길고 두꺼운 구름 띠가 드리워진 오늘의 노을은 하이라이트 없이 싱겁게 마무리되었다. 어쩐지 모네가 그린 ‘해 뜨는 인상’의 실제 배경을 본 것 같은 심심한 느낌이었다.





  사람들이 다 떠난 후 너무 어두워졌다 싶어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음을 아쉬워하며 돌아섰다. 담요와 머플러로 눈 아래까지 둘러싼 채 어기적거리며 차로 돌아오다가 순간 중심을 잃었다. 머플러 때문에 시야가 가려져 주차 턱에 발이 걸린 것이다.


  경사진 주차 면으로 '턱'하고 넘어지는 순간, '아! 안돼! 내 얼굴!'

난 그렇게 온몸의 무게를 얼굴에 실어 정면으로 아스팔트에 부딪혔다. '아파! 어! 이빨도 아파!' 얼른 혀로 쓸어보니 이가 깨진 것 같지는 않았다.


  급히 차의 사이드 미러를 당겨보니, 아뿔싸! 광대뼈 위로 눈 바로 아래까지 시뻘겋게 상처가 나 있다. 몇 분도 안 되어 순식간에 다친 곳이 부어오르고 입술도 부어 있었다. 이게 뭔 일이람! 정신없이 차에 타서 다시 거울을 본다. 겹겹이 둘러싸고 설레발을 치더니...


  사진을 찍어 정우에게, 그리고 직전에 카톡을 보내온 케이에게도 보냈다. 흉터 생기면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정우가 괜찮을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이도 깨지지 않았으면, 내일쯤은 괜찮아질 거라고. 그가 다 괜찮을 거라고 하니 정말 괜찮을 것처럼 안심이 됐다.


  민박을 찾아가려는데 날은 어둡고 내비는 먹통이다. 휴대폰 내비도 소리가 안 들리고 눈으로 확인할 수도 없다. 뒤에서 트럭이 따라와 마냥 머뭇거릴 수도 없는데 휴대폰까지 발밑으로 굴러 떨어지고. 이러다 길이라도 잘못 들면 어쩌나?


  그렇게 경사진 커브 길을 내려오면서 생각했다. 넘어져서 얼굴에 상처 좀 난 것 갖고도 이렇게 무섭고 눈앞이 캄캄한데, 교통사고라도 나서 크게 다친다는 건 어떤 걸까? 이보다 몇 배나 되는 상처와 부상, 흐르는 피, 험하게 붓고 멍든 몸 등... 그런 생각까지 들어 참 무섭고 긴박한 순간이었다.


  민박집주인과 통화할 때 세연정에서 200미터쯤 된다고 했는데 갑자기 컴컴한 길이 나오면서 인가가 끊겼다. 외딴집이 한 채 보이는데 순간 무섭다. 200미터로는 너무 짧은 길인 것 같아 지나쳤더니 길은 계속 어둡다.


  그때 민박집주인의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나와 있는데 방금 내가 지나쳐 간 것 같다고 했다. 차를 돌려 드디어 그 집에 이르렀다. 집에 들어서면서, “넘어져서 다쳤어요!” 어리광 부리듯 말하며 얼굴을 보여주었더니, 아주머니는 ‘아고~ 어쩌까’ 하면서 마데카솔을 갖고 나와 발라준다.


  아! 다행이다! 이 밤에 약도 없었으면 이 상처를 어떡할 뻔했는가? 흉 질 확률이 배는 높아지는 것이다. 아주머니는 ‘밥 안 묵었제?’하면서 함께 먹자고 한다.

  "바로 들어온 것 보니 나한테 밥 주라 할라고 그랬구만." 나는 어리광 피우듯 “네”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함께 웃음을 터뜨렸고 편안한 분위기였다.


  우리가 밥을 먹고 있을 때 그 집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제부가 집에 돌아왔다. 밥을 먹고 나서 난 설거지를 하겠다고 우겼고 아주머니는 과일을 내왔다. 우리는 그 집 아저씨들이랑 과일을 먹으면서 잠시 티비를 봤다.

  내 상처를 보고 아저씨가 말했다.

  “아이고, 흉지겄는디. 남자들 술 먹고 오토바이 타다가 넘어져서 얼굴 쓸리면, 그 자리가 시커메지거든.”


  꼴난 여행하다가 얼굴에 흉터 남게 생겼다 싶어 걱정이 되었다. 잘 시간이 되어 방에 들어와 보니 아들이 쓰는 방이라고 하는데 뭐 괜찮았다. 욕실에 가보니 음, 하룻밤일망정 도저히 이렇게는 못쓰겠다 싶어 간단히 청소를 했다. 청소를 하고 나니, ‘그래, 좋아.’ 만족스러웠다.


  아주머니 제부가 안방을 쓰는지 아주머니 부부는 거실에 자리를 폈다. 뒤척이는 소리가 날까 조심하느라 힘들었지만 마음은 한없이 편했다. 다친 후 이곳에 와서 자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무섭고 약해졌던 마음이 푸근해지고 힘을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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